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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VS '나는 가수다' 그 새로운 기획들의 공통점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VS '나는 가수다' 그 새로운 기획들의 공통점

빛무리~ 2011. 3. 8.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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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려 온 새 멤버 엄태웅이 성공적인 예능 신고식을 치르면서 '1박2일'은 재도약의 발판을 다졌고, 이에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나는 가수다' 역시 최근 TV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명품 중견가수들을 대거 등장시키며 결코 만만치 않은 출발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로써 당분간 일요일 저녁 예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쟁터가 될 듯 싶군요.


새로운 기획에는 언제나 두 가지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식상하거나, 또는 재미없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에 해당되기 쉽다는 것이지요. 이제껏 다른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 없는 모험적인 아이템을 선택한다면 물론 신선하기는 하겠지만, 검증된 바가 없다 보니 제작진의 예상과 달리 대중의 기호에 맞지 않아 '재미없다'는 냉정한 평가와 더불어 조기 폐지될 수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다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들을 가져다가 조금씩 변형시켜서 사용할 경우는 '식상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1박2일'과 '나는 가수다'에서 이번에 시도한 기획은 신선함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매우 보기 드물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합니다. '나는 가수다'의 경우는 귀히 아껴서 들어도 모자랄 명품 가수들의 노래를 중간에 싹둑싹둑 가위질했다는 이유로 발편집의 오명을 쓴 채로 시작하긴 했지만, 첫방송이 나간 후에 제작진이 조금만 신경써서 대중의 반응을 모니터링했다면 금세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이니 근본적인 문제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오랫동안 위기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박2일'은 제6의 멤버 엄태웅의 합류를 계기로 드디어 탈출구를 찾았습니다. 새 멤버를 맞이하는 방식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엄태웅이라는 존재 자체가 신선함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태웅은 명실상부한 주연급 탤런트이며, 예능에서는 거의 얼굴을 볼 수 없던 진중한 이미지의 배우였습니다. 그런 그가 리얼 버라이어티에 단발성 게스트도 아닌 고정 멤버로 합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선합니다.


가수들은 예능에 고정 출연을 하는 사람이 무척 많지만, 상대적으로 배우들은 그런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요. 굳이 기존의 예를 든다면 '1박2일'의 이승기와 '런닝맨'의 송중기 정도가 있겠으나, 그들은 나이도 어릴 뿐 아니라 음악 프로그램의 MC라든가 시트콤 출연 등의 경력을 갖고 있어서 나름대로 예능과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지요. 하지만 불혹에 가까운 중견배우 엄태웅의 경력은 온통 진중할 뿐 전혀 웃음기를 발견할 수가 없는데, 그런 그가 예능 중에서도 최강의 생고생 버라이어티에 갑작스레 몸을 풍덩 빠뜨리게 되었으니, 그의 말 한 마디와 몸짓 하나까지 모두 신기하고 새로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엄태웅이 기존의 이미지를 고수하려 했다면 '1박2일'의 합류 자체를 끝까지 거부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과감히 변화를 선택했고, 자신의 결심이 얼마나 탄탄한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첫 출연부터 아낌없이 망가져 주었습니다. 집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새벽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한당(?)들로부터 팬티 바람으로 끌어 일으켜졌으니, 놀라움과 수치심에 조금은 불편한 표정을 드러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당황한 기색은 역력했어도 엄태웅은 그저 사람 좋게 웃기만 했습니다.


'1박2일' 멤버들이 급히 아침을 먹인답시고 콘프레이크며 떡이며 계란프라이까지 좀 무리하게 떠넣었지만, 아직 한쪽 볼이 불룩할 만큼 입에 음식이 잔뜩 들어있는 상태에서도 거부하지 않고 열심히 받아 먹는 모습을 보니 좀 안스럽기도 했습니다. 급히 세수를 한답시고 머리카락에 물조차 축이지 못해서 방송 내내 뒤통수에 까치집이 져 있는 모습을 보니 좀 더 안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는 있었습니다. 중후한 명품 배우가 그렇게까지 망가져 주는데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겠어요? 엄태웅은 이번 선택으로 인해 무척 힘은 들겠지만,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확실히 많을 것 같습니다.

한편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엄태웅은 드라마를 통해 꾸준히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추었지만, 이 중견 가수들은 거의 TV에서 볼 수 없던 인물들이기에 그 신선함이 한층 더합니다. 거의 음원으로만 들을 수 있던 그들의 노랫소리를, 비록 화면을 통해서지만 생생히 얼굴과 표정과 제스처를 보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짜릿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소라, 정엽, 김범수, 윤도현, 백지영, 박정현, 김건모... 이들은 모두 데뷔 10년 이상의 베테랑 가수들이며, 무엇보다 가창력 면에서 절대 다수의 인정을 받는 뮤지션들입니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어디에서나 귀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인물들인데, '나는 가수다'에서는 마치 오디션을 보는 가수지망생들처럼 타인에게서 평가를 받고 충격적인 탈락마저 경험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큰 굴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예기치 않은 속옷 바람의 나체쇼를 연출한 엄태웅보다 나을 것도 없어 보일 정도로 말이죠. 소름끼치는 가창력으로 멋진 노래를 선사하고도, 혹시라도 자신이 꼴찌를 하면 어쩌나 가슴 졸이는 중견 가수들의 모습은 퍽이나 안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연예인이고, 그들의 삶이나 음악을 대중의 인기와 분리시켜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가수다'의 컨셉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가수의 노래를 평가할 자격은 전문가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청중에게 주어진 것이 맞습니다. 특별히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논리로 무장하지 않았어도, 대중문화의 소비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느낌과 기호만으로 '좋다' '싫다'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기존의 모든 가요 프로그램들에서도 그 순위를 정하는 것은 대중에게서 얻은 인기의 척도지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별로 안스러울 것도 없고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한동안 지속해 올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신비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좀처럼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볼 수 없다 보니 마치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신비롭게 느껴지고, 각종 예능에서 마음껏 망가지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왠지 이 사람들은 망가뜨리면 안 될 것 같고, 좀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는 저는 2AM의 조권을 예능에서 처음 보았고 그저 끼가 철철 넘치는 요즘 아이돌 중 한 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차분히 피아노를 치면서 발라드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생각지도 않은 깊은 감성과 놀라운 가창력에 깜짝 놀라며 감탄했었지요. 그 이후로는 시트콤이나 예능에서 아무리 깝을 떨어도 저는 조권을 실력있는 젊은 뮤지션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연예 활동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나는 가수다' 역시 분명한 예능의 일종인데, 여기서 꼴찌를 하고 탈락을 경험한다 해서 뭐 그리 굴욕일 것도 없습니다. 탈락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망가진다 해도 진짜 실력이 있는 한, 대중은 변함없이 그들을 인정하고 사랑할 거예요. 아니, 오히려 더욱 큰 사랑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1박2일'에 출연한 배우 엄태웅과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 7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미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 놓은 대중 예술인들이지만, 스스로 폼잡기를 거부하고 망가지는 쪽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동안 유지해 오던 자신의 껍데기를 부수는 모험이자 용기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좀 더 먼저 이들과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이라면, '부활'의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예능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태원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결과적으로 김태원의 '남자의 자격' 출연은 그 자신과 부활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원했던 대로 '부활'의 음악은 훨씬 더 대중과 가까워졌고, 김태원 본인은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와중에 심신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그로써 또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대박 중의 대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제 나이도 들고 그러니까) 너무 뭘 가리면 노래를 많이 할 수가 없더라고요. 혼자 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제 노래를 듣고 어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내 마음이 또 움직이고... 노래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소라의 저 발언은, 일요 예능의 판도를 크게 뒤흔든 이번 기획들의 의도를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대중문화의 특성상, 학처럼 고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자세가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 선택만으로도 저는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흘렀을 때는 그들 자신을 위해 무엇보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부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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