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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 이경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승승장구' 이경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

빛무리~ 2011. 1. 1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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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걸쳐 방송된 '승승장구 - 이경규' 편은 온통 명언의 향연이었습니다. 책을 외워서 준비해 온 명언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 속에서 깨우쳐 온 것을 그 자리에서 즉흥적인 말로 표현하는 명언들이었지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옮기기 어렵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널 만나서 잘 됐다는 말은 사탕발림이죠. 널 만나지 않아도 잘 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말은 하죠. '널 만나서 행복하다.'" 잘 되는 것은 본인의 능력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것은 본인의 능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를 만나서 행복하다"는 것은 상대방의 가치를 알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기는 새벽의 성에와 같다. 아침이 지나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군요. 게다가 굉장히 시적(詩的)이라서 허무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전해집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쏟아내는 멋진 말의 향연 속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경규가 괜히 영화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남을 웃기는 코미디언으로서 30년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예술혼이 불타고 있군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이 들어 주름도 생겼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좋다. 이젠 욕심도 욕망도 내려놓고 세월에 씻겨 둥그렇게 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니까." 저 담담한 말 속에 인생의 진리가 그대로 담겨 있으니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가 없겠습니다.

자신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경규야, 참 고생이 많구나. 주인 잘못 만나서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미안하단 생각이 문득 드는데, 몇 년만 더 하자. 그 때 놓아줄거야. 경규야, 멋쟁이!" 자기의 육체를 객관화시켜서 표현한 점이 새로웠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긍정적 마인드가 느껴지는군요. 


이경규 본인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몰래 온 손님'으로 등장한 김태원과 이윤석에 의해 그 사람의 진가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실 저는 '남자의 자격'이 출범할 당시부터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대체 이경규와 김태원은 언제부터 친분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활동하는 분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이제껏 그들이 친하다는 얘기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경규가 자신의 부활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남자의 자격'에 김태원이 합류한 것은 정말 생뚱맞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 보니 '남격' 초반의 김태원은 지금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국민시체'라는 캐릭터가 저절로 잡혔을 만큼 언제나 맥없이 늘어져 있었고, 각종 미션에도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힘든 걸 왜 해?" 라고 중얼거리며, 다른 멤버들이 힘들게 달릴 때 혼자서 주저앉아 쉬곤 했지요. 게으르고 불성실한 컨셉을 잡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때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컨셉이 아니라 그 당시 김태원의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였더군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입니다. '남격 - 카메라 여행' 편에서 김국진과 함께 다닐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 전까지도 전혀 몰랐었지요.

이경규와 김태원의 친분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더군요. 이경규가 깊은 침체를 겪으며 겸손해졌을 무렵이라고 하니 '남격'이 출범하기 직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당시 김태원은 꿀통에 젓가락을 꽂아 놓고 틈틈이 그것을 빨아먹으며 수개월을 연명하고 있었을 만큼 폐인에 가까운 상태였다지요. 그 정도였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불과 2년 전의 김태원이었군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경규의 결단이었습니다. 오랜 친분을 쌓은 사이도 아니고, 심신의 건강이 그토록 미약해져 있는 사람을, 더구나 예능의 경험도 전혀 없으니 성공 예측은 커녕 적응이 가능할지의 여부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어떻게 자기가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하는 프로그램에 끌어들일 생각을 했을까요? 그 인품과 결단력은 보통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이윤석의 입으로 전해 준 이경규의 또 다른 명언이 있었습니다.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지 않은 것은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자연의 바람이 시원한 것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코미디언으로서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해 왔던 이경규의 철학이 저 말 안에 담겨 있군요. "30년 동안 가장 두려웠던 것은 식상한 자신이었다.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목소리로 항상 새로운 웃음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이경규의 말은 모든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중요한 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김태원의 손을 잡는 정도의 과감성은 누구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처참히 무너져 있는 김태원의 내부에서 이경규는 심상치 않은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을 끄집어내 주었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드러난 김태원의 빛은 이경규에게 등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경규가 사람을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김태원은 '남격' 멤버들을 가리켜 '내 목숨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들'이라 했고, 이경규를 가리켜 '내 인생의 우회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평생 직진만 할 줄 알았던 자신이 절망의 문턱에서 옆을 돌아보니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가니 이경규를 만났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새로운 인생을 찾은 김태원은 지금 또 다른 많은 인생들에 등대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새삼 이경규라는 사람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군요.


이윤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윤석은 거의 이경규의 '시종'이라고 온 세상에 다 인식되어 있는 판이지요. 그것은 카메라가 돌아갈 때의 설정이 아니라, 김태원이 두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이런 인간관계가 가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실제 일상이라고 합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이경규가 비인간적이게도 후배를 지나치게 부려먹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관계를 더욱 끝까지 지속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바로 이윤석이었습니다. "형님이 버리시지 않으면, 제가 먼저 형님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은 이경규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과, 이윤석이 이경규로부터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아직도 '남격'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마라톤' 미션을 기억합니다. 51세의 이경규는 원래 중도에 포기하려고 했는데, 무리하면서 끝까지 달린 이유는 이윤석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허약한 체력으로 인해 거의 모든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이윤석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달리겠다 고집했고, 이경규는 그런 후배의 뜻을 존중했으며 그가 홀로 외롭지 않도록 함께 달려 주었습니다. 그 장면은 이경규가 사람을 얻는 방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경규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남자의 자격'을 성공시킴으로써 그 자신이 부활했을 뿐 아니라,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에게도 모두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이경규는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매의 눈을 지녔을 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까지 갖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이경규의 손을 잡고 부활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마침 김태원의 분신과도 같은 록그룹의 이름이 '부활'이라는 것도 매우 신기한 일치로군요.

"30년 동안 행복했습니다. 30년 더 부탁합니다." 연말 시상식장에서 이경규의 팬들이 높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의 내용은, 저를 비롯한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전히 긍정적 마인드와 뜨거운 열정으로 오래오래 달리고 싶어하는 이경규가 고맙지 않을 수 없네요. 아마 우리는 그 사람 덕분에 앞으로도 수십년은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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