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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퀴' 손헌수가 불쌍했던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세바퀴' 손헌수가 불쌍했던 이유

빛무리~ 2011. 1. 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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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퀴'에 개그맨 손헌수가 출연했습니다. 평소에 정통 개그 프로그램을 즐기는 편이 아닌 저에게는 차라리 생소한 얼굴에 가까웠습니다. 개그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현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보기 어려운, 다소 외면받는 연예인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대중의 사랑에 목마른 연예인은 정말 많습니다. 기타등등의 요소를 일단 배제하고 원칙만을 말한다면, 가수는 노래로 어필하고 배우는 연기로 어필하고 개그맨은 웃음으로 어필합니다. 그런데 웃음이라는 소재는 자칫하면 무리수로 흐르기가 쉽지요. 물론 꼭 개그맨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확고히 인식시키려는 욕심에 무리수를 던지는 연예인은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연예인보다 개그맨들의 무리수가 더 자주 눈에 띄는 이유는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가수 황보가 재벌가의 아들로부터 청혼을 받은 적이 있다는 토크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식상하다 싶었는지 조혜련이 나서서 자기가 23살 때 작은 공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훨씬 더 큰 공장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었다는 말로 웃음을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손헌수가 2004년도에 유명한 재벌가의 딸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은 적이 있다며 나섰습니다. MC들을 비롯해서 다들 못 믿는 기색으로 "그래서 만나봤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손헌수는 "만나지는 않고 사진만 봤는데, 너무 못생겼어요. 적당해야 하는데 너무 못생겨서 일언지하에 거절했지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들 박장대소를 했고, 그 와중에 김구라는 "그 말을 들으니까 이해가 가네."라고 맞장구쳤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첫째는 진실성이 없어 보였고, 둘째는 타인의, 그것도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그룹의 딸이, 아무리 못생긴 얼굴로 타고났다 해도 남들 보기에 혐오스런 외모를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부터가 전혀 공감되지 않더군요. 그 많은 돈은 두었다 어디 쓰려고, 그런 모습으로 살겠어요? 평범한 얼굴이라면 그냥 만족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혐오스런 외모라면 무엇 때문에 성형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자리에서 급조해낸 이야기 같더군요. 그리고 다른 이유는 전혀 없이, 사진만 보고 너무 못생겼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여성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그토록 당당하게 할 말인가요? 그런 말을 듣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 그 동료 개그맨들의 반응도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솔직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고 흐뭇하지도 않은 그 짧은 토크가 '세바퀴'에 출연한 손헌수의 방송 분량 전부였습니다. 함께 출연한 개그맨 황제성은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각 나라 영화 속의 죽음을 소재로 구성한 '다이(Die) 개그'를 선보여서 갈채를 받았는데, 손헌수는 준비성조차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 순간에는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인기에 목마른 개그맨이 모처럼 인기 버라이어티에 출연 기회를 잡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웃겨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겠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활용해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 자체가 엄청난 어려움일 것입니다. 미리 짜여진 대본대로 동료들과 수많은 연습을 거쳐서 무대에 올라가는 개그 프로그램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송이니까요. 누구에게 의지할 수도 없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하는데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리수를 던졌겠지요.


개그맨들에게 있어 소재 고갈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김현철과 박성호는 손헌수에 비해 상당한 연륜과 경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소재를 수차례 우려먹는 치명적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지요. 김현철의 '부조금' 레파토리와 박성호의 '후배 아이디어 빼앗기' 레파토리는 그 자체가 워낙 자극적이기 때문에 한두번 정도는 청중을 기막히게 만들어서 웃음을 자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들은 여러 예능에 출연해서 같은 이야기를 지겹도록 계속했고, 결국 인기를 얻기는 커녕 비호감만 키우고 말았습니다. 웃음이라고 다 같은 웃음이 아닌데, 어이없어서 웃는 것을 재미있어서 웃는다고 착각한 비극이었습니다. (관련글 : 김현철과 박성호, 일부 개그맨들의 어두운 현주소)



성실한 준비 과정 외에는 답이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성껏 아이디어를 짜내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도 달라질 것입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건전한 개그로 웃긴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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