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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악마를 보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맞았다!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악마를 보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맞았다!

빛무리~ 2010. 8.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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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하러 들어갈 때만 해도 은근히 자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자이긴 하지만 그리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다가, 공포영화 등에는 거의 무감각할 정도로 센 편입니다. 어차피 만들어진 영상이라는 것을 알고 보는 거니까요. 충격적일 만큼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소문을 벌써 귀에 못박히도록 듣고 갔지만, 속으로는 "잔인해봐야 그냥 영화지, 뭐" 이렇게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역시 겪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예측하면 안 돼요.

생각지도 않은 충격이 처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국정원 요원인 김수현(이병헌)의 약혼녀 장주연은 눈 덮인 한적한 지방도로를 혼자서 차를 몰고 달리다가 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발이 묶이게 됩니다. 견인차를 불러 놓고 기다리는 동안, 김수현과 통화하며 사랑을 속삭이지요. 그런데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처럼 장경철(최민식)이 다가옵니다.

주연은 차창을 2cm 정도만 살짝 내리고 장경철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 밤중에 눈까지 쌓였는데 견인차 기다리려면 오래 걸릴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장주연은 괜찮다고 사양합니다. 통화중이던 김수현에게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괜찮다는데도 자꾸만 도와주겠다고 그러네." 김수현이 대답합니다. "그냥 견인차 기다리는 게 좋겠어. 좀 이상하잖아? 문 열어주지 말고 그냥 견인차 올 때까지 기다려."

주연은 흔들림 없이 장경철에게 "정말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하고는 창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혼잣말을 합니다. "왜 안 가고 그냥 있는 거지?" 그 혼잣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경철이 눈빛을 번뜩이며 성큼성큼 걸어 옵니다. 자기의 차량에서 둔기(도끼?)를 가져온 것이었지요. 사정없이 내리치는 둔기에 차창은 금세 산산조각이 나고, 주연은 속절없이 질질 끌려나갔습니다.

유리창이 부서지는 순간부터 생생한 공포는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이 영화는, 영화 같지가 않고 현실 같은 느낌을 줍니다. 막연히 차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한 안도감은 그 유리창처럼 삽시간에 깨어지고, 얇은 보호막 한 겹도 없이,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이, 한적한 시골 길에서 질질 끌려가는 주연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군요.

장경철의 다음 번 희생자는, 집에 가는 막차를 놓쳐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아가씨였습니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가 멀지도 않으니 태워 주겠다는 장경철의 제안을 몇 번 사양하다가 결국 차에 올라탄 것 자체가 비극이었죠. 장경철이 몰고 다니는 차량은 학원에서 운영하는 학생수송차량이었기 때문에 경계심을 쉽게 풀었던 모양입니다. 그녀의 경우도 전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 사람없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 본 적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녀가 차에 스스로 올라타지 않았다 해도, 곁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니 장경철의 마수를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연쇄 살인범을 다루었던 영화는 몇 편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그 살해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폭력 영화는 남자들끼리 치고 받고 찌르면서 싸우는 것인데, 그런 장면은 별로 무섭거나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아저씨'도 아무렇지 않게 덤덤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항할 힘이 전혀 없는 여자를 일방적으로 요리(?)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그 충격은 뭐라 형언할 수 없더군요. 실제로 눈앞에서 여자가, 아니, 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영시간이 장장 144분인데, 초반 20분 가량이 경과하자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제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을 하면 신경성 편두통이 일어나곤 하거든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머리가 지끈거려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중간에 일어나서 나오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그것을 보아 낸 끈기는 대체 무엇인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시크릿'을 아시지요? 우리의 생각 자체가 우주의 힘에 영향을 미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의 삶에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주제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자기의 소망이 벌써 이루어졌다고 진심으로 믿으면 실제로도 그 소망이 이루어질 확률은 엄청나게 높아진다는 것이지요.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긍정적 마인드 컨트롤을 이용해 기적적인 성공과 치유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들어 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시크릿'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본 후, 남아있는 것은 온통 부정적인 감정들 뿐입니다. 세상에 대한 공포와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다란 기둥처럼 가슴 속에 박혀지고, 그 주변에 슬픔의 강물이 흘러내립니다.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덮쳐 옵니다. 제가 최근 2년 동안 '시크릿'의 내용을 본받기 위해 끊임없이 긍정적 마인드 컨트롤을 연습해 오지 않았다면, 이 충격은 최소 일주일 가량은 저를 괴롭혔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충격적인 이유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고 너무나 현실처럼 느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3년 전, 초등학교의 소방훈련 도중에 학부모 3명이 공중에서 추락하여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지요. 그 당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아이들 중 상당수가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훗날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하지요. 이 영화는 너무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이 정도라면, 저보다 훨씬 더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여자분들의 경우에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사람들의 심성에 끼칠 부정적 영향이 매우 염려됩니다.

144분 내내 꽉 채운 공포와 절망 끝에라도 무슨 희망이 보였다면 다행인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대로 막다른 골목입니다. 끔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할 뿐,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습니다. 복수의 방법과 정당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지만, 이병헌이 선택한 복수의 방법은 다수의 선량한 피해자를 추가로 배출해 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기에 논란의 여지가 될 것도 없습니다. 복수의 대상만이 아니라 복수의 주체도 비뚤어져 있기에, 그 어디에도 정의는 없습니다. 결국 둘 다 패배자라고 볼 수도 있고, 좀 나아가서는 악(惡)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력이야 인정하겠지만,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희망보다 절망을 불러오고, 긍정보다 부정에 휩싸이게 하는 예술이라면, 아무리 멋지게 만들어졌어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악마를 눈으로 본 사람들의 의식이 각성되어, 사회적 방어기제를 강화한다든가 하는 방면에서의 긍정적 효과를 약간 기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추측은 막연한 것이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인데 반해,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악영향을 즉각적으로 끼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제한상영가' 등급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과 제작진의 피땀은 안타깝지만... 제 주변의 누군가 본다고 하면 결사반대하겠습니다. (聖戰)

*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제작사인 페퍼민트앤컴퍼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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