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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장미희에게 차츰 빠져드는 김상중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 장미희에게 차츰 빠져드는 김상중

빛무리~ 2010.06.28 07:00

월드컵으로 인해 오랫동안 결방했던 SBS 드라마들이 다시 방송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도 참 오랜만에 볼 수가 있었네요. 지금 '인생은 아름다워'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커플이 너무 많아서 산만하다 싶을 지경이네요.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커플을 꼽는다면 단연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의 동성애 커플이겠는데, 태섭의 커밍아웃이라는 큰 산을 넘어서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일단락된 느낌입니다.

청춘 남녀들의 풋풋한 사랑 틈바구니에서 이제 또 한 커플이 독특한 사랑을 시작하려 합니다. 조아라(장미희)와 양병준(김상중) 커플입니다. 이번에 방송된 25회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군요. 그 동안 조아라가 일방적으로 호기심과 호감을 표현해 오던 것에 비해, 이제는 양병준도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반응하기 시작했거든요.


극중 나이가 조아라는 48세, 양병준은 47세로 설정되어 있으니 두 사람은 거의 50세에 가까운 싱글남녀입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점은 오랫동안 이성과의 사랑에 마음을 닫고 살아 온, 그런 면에서는 거의 박제 수준의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풋풋한 청춘 남녀 커플들보다도 오히려 이들의 사랑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응원하게 됩니다.

조아라는 재일교포 재력가의 딸로서 한 번의 이혼 경험이 있습니다. 남자의 혼전, 혼후, 끊임없는 바람기에 이혼을 한 후, 두 번 다시는 남자와 사랑이니 결혼이니를 도모할 뜻이 없었던 그녀입니다. 미모와 학력과 재력 등 빠질 것 없는 조건을 갖춘 그녀이기에 다가오는 남자들은 많았으나, 돈을 보고 접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과 더불어 또는 여자관계가 복잡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곁들여지니, 한 번 닫혀진 그녀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설정상으로는 냉랭하고 오만한 여자가 아닐까 싶지만, 정작 그녀의 캐릭터는 매우 따뜻하고 순수합니다. 수십년간 유리궁전 속에 갇혀서 지내 온 공주라고나 할까요? 나이답지 않게 소녀적인 감수성이며, 시도때도 없이 깔깔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들이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볼수록 매력이 느껴집니다. 든든한 배경 덕분에 보호받고 살아서 그런지, 자기를 '여자'로 바라보면서 접근하는 '남자'들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사람을 의심할 줄도 모르고 격의없이 소탈하게 대합니다.

이런 캐릭터의 조아라가 양병준에게 먼저 호감을 갖게 된 이유는, 의심할래야 의심할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는 양병준의 뻣뻣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아라는 의심병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정결핍 증세가 있어서 사람을 그리워하고 치대는 면이 있는데, 그런 자기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병준에게 처음에는 호기심이 일었겠지요. 이제껏 그녀가 접해왔던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부류의 남자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양병준은 어찌 보면 조아라보다 더욱 특이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첫사랑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초식남(?)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조아라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제주 모 골프장과 타운하우스의 간부로 근무하는데, 업무에 빈틈없이 철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생활까지 지나치게 깔끔하여 약간의 결벽증이 있습니다. 쉬는 날이면 낚시를 다니거나 오토바이를 타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제주 풍광의 사진을 찍으러 다닙니다. 그냥 그렇게 취미를 즐기면서 혼자 살아가는 삶에 그는 조금도 불편이나 결핍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그의 앞에 천둥번개라도 치듯이 요란하게 조아라가 나타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교포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경영에 참여하게 된 그녀는, 삽시간에 골칫덩이 상사가 되어 양병준을 수시로 곤경에 빠뜨리기 시작합니다. 엄연한 직장 상사이면서도 그녀는 처음부터 병준의 사무적인 태도가 인간적이지 못해서 마음에 안든다며 좀 더 친밀하게 대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딱딱한 병준의 태도가 변하지 않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벼락을 떨어뜨립니다. 교포 회장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경영을 맡기려고 내려보낸 딸이 한 달도 못 버티고 돌아오겠다 하니, 그녀를 보좌하는 간부들을 탓할 수밖에 없지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조아라 때문에 양병준은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그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치대는 조아라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양병준에게는 무척 낯설고 힘든 일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병준의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싶지만 내면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고, 언제나 계산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어른들만 보아 오다가 아무런 격의 없이 모든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조아라의 어린애같은 순수함에 빠져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체질상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하는 병준은, 언젠가 아라가 권하는 와인을 굳이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몇 잔이나 마시고는 그녀 앞에서 기절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가 술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라가 의아해하며 "왜 못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말했으면 권하지 않았을텐데요?" 라고 묻자, 병준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병준의 가족들은 짐작하기를, 상사가 권하는 술이니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마신 거라고들 생각했으나, 병준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그녀의 비위를 맞추느라 친한 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어느 정도는 친해진 상태였기에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어려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말하지 않고 술을 받아 마신 이유는, 어느 사이엔가 그녀를 '여자'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좋아하는 여자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고, 그녀 앞에서 술도 못하는 약한 남자라는 인상을 주기 싫었을 수도 있겠지요.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휴일에조차 병준은 아라가 전화만 하면 즉시 그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대놓고 물었다면 "오너를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했겠으나, 그녀가 "굳이 나올 필요 없어요, 양전무. 그냥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좋은 길을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예요. 나 혼자 갈 거예요" 라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닙니다. 제가 지금 모시러 가겠습니다" 하면서 급히 달려나가는 모습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지요.

두 사람의 관계가 상사와 부하인데다가 조아라의 캐릭터가 워낙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인물이므로, 양병준의 그러한 태도가 과연 남자로서 여자를 대하는 것인지, 부하로서 상사를 모시는 것인지가 좀처럼 쉽게 구분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이 더욱 그들의 사랑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도 아라는 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자기 집을 방문한 병준을 소파에 앉혀 놓고, 자기 마음속의 뼈저린 외로움을 털어놓습니다. "나는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어요. 이제 파파가 돌아가시면 나는 혼자예요. 입술 없는 입이 되겠지요. 얼마나 춥고 시려울까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죠. 양전무는 행복한가요?" 그녀의 넋두리를 조용히 들어주던 병준은 대답합니다. "행복은 그런 거 아닌가요? 어느 순간 갑자기 와서, 아주 잠깐 머물렀다 가버리는 거... 저도 예전에는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매일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러자 아라는 멈추지 않고 묻습니다. "언제, 행복을 느꼈었나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스물여섯 생일에 떠났습니다. 3개월 시한부 받고 58일만에요." 그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일생 일대의 상처로 남아있던 사건을 그는 담담하게 아라에게 털어놓습니다. 약간 당황하며 미안해하던 아라는 다시 묻습니다. "양전무는 그런 이야기도 그렇게 사무적으로 하나요?" 그러자 병준이 대답합니다. "그 이야기를 제 입밖으로 꺼낸 게 거의 20년만입니다... 무슨 일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병준은 모르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술을 못 마시는 그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하는 여자... 첫사랑의 상처를 가슴에 묻어두고 입밖에 내지 않던 그로 하여금 담담한 어조로 그 추억을 털어놓게 하는 여자... 양병준에게 있어 조아라는 이미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녀가 바닷가에 벗어두고 온 구두를 찾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온 병준은 묻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구요?" 아라가 대답합니다. "신발을 잘 벗거든요. 발이 답답한 것을 못 참아요. 신발 벗은 것을 잊고 있다가 신는 것도 잊어버리죠" 그러자 병준이 말합니다. "앞으로는 긴 끈을 하나 갖고 다니십시오. 구두 두 짝을 묶어서 목에 걸고 있다가 신게요" 어느 새 오너인 아라에게 이렇게 농담도 건네게 된 병준입니다.

그러자 아라는 매우 즐거워하며 대답합니다. "파파도 그랬어요! 양전무, 어쩜 우리 파파랑 똑같아요?" 조아라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단 하나뿐인 혈육이며 그녀의 보호막입니다. 아버지와 똑같다는 말은 아라의 마음속에 이미 병준의 존재가 더할 수 없이 커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제가 되어버렸던 두 사람의 영혼은 이렇게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예고편을 보니 다음주에는 드디어 그들의 키스신이 등장하는 모양이더군요. 중년의 사랑이지만 눈살 찌푸려지는 불륜이 아니라서 너무 좋고, 오랫동안 외로웠던 두 사람이 진정한 동반자를 만나서 손잡게 될 것 같으니 더욱 좋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꿈쩍도 안할 것 같은 철벽남 양병준과 소녀적 감수성을 지닌 순수한 조아라의 캐릭터는 김상중과 장미희라는 훌륭한 연기자에 의해 완벽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랑 앞에 차츰 다른 사람처럼 변모해가는 철벽남의 모습이 특히 매력적이군요. 벌써 다음 주가 많이 기대됩니다.


* 제가 쓴 '인생은 아름다워' 리뷰가 '월간 마음수련' 7월호에 실렸습니다. 6월호에 실렸던 '추노'와 '신데렐라 언니' 리뷰에 이어서 두번째로군요..^^ 지나간 6월호의 대략적인 내용은 http://webzine.maum.org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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