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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천정명의 끔찍한 나레이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데렐라 언니

'신데렐라 언니' 천정명의 끔찍한 나레이션

빛무리~ 2010. 4. 2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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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못된 계집애가 독하디 독한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잡아 달라는 내 간절함을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줄은 정말 몰랐다."


'신데렐라 언니' 9회에서는 또 화자가 바뀌었습니다. 초반에 흐르던 은조(문근영)의 나레이션은 드라마의 몰입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대단히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에 나레이션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별로 찬성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괜찮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화자가 효선(서우)으로 바뀌게 되면서, 꼭 저런 것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바뀌더군요. 그래도 뭐 아주 나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훈(천정명)의 나레이션이 흐르기 시작하니, 이것은 차라리 드라마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나레이션 기법 사용을 제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드라마에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야 하는 작품의 주제 및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줄즐이 설명하는 식으로 흘러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본을 쓰기야 물론 쉽겠지만 드라마는 완전히 맥이 빠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극도의 자제력과 섬세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함정에 빠지게 되거든요.


은조의 나레이션이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던 이유는 첫째, 초반이라 모든 등장인물이 매우 낯설었는데 은조의 텔링으로 인해 그들의 특징을 좀 더 쉽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며 둘째, 은조라는 인물 자체가 워낙 말이 없고 내성적이다 보니 대사와 행동만으로는 그녀의 내면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에, 나레이션이 없었다면 지나치게 신비주의로 머물렀을 주인공의 캐릭터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와서 그녀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효선의 나레이션이 등장한 시점에는 이미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충분히 소개된 후였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매우 강한 개성을 갖고 있기에, 굳이 나레이션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들의 대사를 듣고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내면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레이션 자체가 불필요한 사족이 된 셈이었지요. 굳이 효선의 독백으로 "얄미운 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묻기만 하면, 뭐든지 대답해줄텐데..." 이런 말을 끼워넣지 않아도, 우리는 효선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있으나 마나 수준이었을 뿐, 악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텔러가 홍기훈으로 바뀌게 되자, 이것은 끔찍한 수준이군요. 홍기훈의 캐릭터는 섣불리 건드리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불투명한 인물입니다. 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진정한 의도는 과연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나레이션이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속을 알기 어렵고 복잡해 보였던 인물이지만, 그 내면을 다루는 독백에서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방식 자체가 단순한 텔링이다보니 완전히 단순하고 유치해져 버릴 가능성이 높거든요.

불행히도 기훈의 나레이션은 이 함정에 제대로 빠져 버렸습니다. 차라리 듣지 않느니만 못하더군요. 지금까지도 홍기훈이라는 캐릭터는 그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받지 못해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우선, 은조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만나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던 행동부터가 설득력이 없었지요. 효선은 만날 수 있는데 은조는 만날 수 없던 이유라고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기훈이 떠나던 시간에는 두 소녀가 모두 집에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굳이 효선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이유도 알 수 없고, 효선이가 그 편지를 반드시 전해주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은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은조가 붙잡아 준다면 여기서 멈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제발 자기를 붙잡아 달라고 편지로 부탁했던 기훈의 행동도, 역시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멈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미는 단순히 군대에 가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 홍회장의 손발이 되어 원치 않는 길로 걸어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멈추고 싶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군요. 그런데 그 길로 들어서는 자신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존재가 은조라면... 은조에 대한 사랑으로 멈출 수 있다고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닙니까? 자기가 은조를 사랑하니까, 그녀의 곁에서 지켜주고 싶으니까 스스로 남겠다고 결정하면 되는 게 아닙니까? 어디까지나 결정의 주체는 기훈, 자신이어야 했습니다.

작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려 있던 소녀가, 자리를 박차고 헐레벌떡 뛰어나와 기차역으로 달려와서 자기 팔에 매달려 주어야만, 그래야만 붙잡는 것입니까? 그래서 결국, 그녀가 붙잡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원치 않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지금 그녀 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인 일에 대해서,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입니다. 은조의 사랑을 시험한 것이라면... 은조가 달려나와서 붙잡아 줄 만큼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멈추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무슨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니고, 너무나 유치하지 않습니까?


기훈이 술창고에서 은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나도 예전에는 너 같았어. 하지만 여기 와서 달라졌어. 지금은 나, 꽤 멋있지 않냐? 여기 와서 멋있어진 거야." 그 대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천정명의 연기는 불만스러웠지만 기훈의 캐릭터는 나름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멋지고 성숙한 청년이, 마음속으로는 저토록 계산적인, 유치한 사랑을 하고 있었군요.

게다가 홍기훈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 때문에 은조에게 꽁해 있었습니다. 그녀가 몰랐을 수도 있고, 알았다 해도 나오지 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은 아예 봉인해 두고, 그저 자기를 붙잡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만 가득해서, 그야말로 삐쳐 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때가 훨씬 나았습니다. 이제 나레이션을 통해 그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너무 유치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가 은조에게 "편지 못 받았어?" 라고 물었을 때, 은조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편지를 받았다고, 하지만 찢어버렸는지 태워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아주 독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효선이를 위해서, 아니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서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굳이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기훈과의 관계를 예전으로 돌이키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지요. (은조는 왜 기훈을 멀리하는가?)


효선과의 대화중에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묵음: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어) 라고 말하던 모습은, 현재도 그를 사랑하는데 포기해야 하는 아픔 때문이라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꽃을 피워보기는 커녕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도 못하고, 그토록 허무하게 빛바래고 스러져버린 자신의 간절했던 첫사랑이 스스로 너무 가엾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저는, 은조의 독한 거짓말이 처음으로 매우 통쾌했습니다. 기훈이 대성도가로 다시 돌아왔을 때부터, 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요. 기훈으로 인해서 구대성(김갑수)이 쓰러지게 될 것을 말입니다. (은조와 기훈, 칼을 겨누다) 물론 기훈이 100% 악한 의도만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존재가 운명적으로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임을 예감했기에,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어두운 눈빛과 딱딱한 표정을 보면 볼수록 마음속에서는 거부감만 커져 갔습니다.


이제 와서 "내가 하루아침에 저 어여쁜 여자아이들의 아버지를 빼앗았다. 맹세코,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라고 독백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 해도, 그에게 면죄부가 주어지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해도, 그가 저지른 엄청난 죗값을 치르기에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조차 들 지경입니다.

홍기훈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감히 구대성의 면전에서 그를 속이고 엎드려 있지 않았더라면, 비록 기정의 공격을 받아 대성도가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해도 구대성이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를 쓰러뜨린 것은 기업에 닥친 위기보다도, 아들처럼 아끼던 기훈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이었습니다.


이제 구대성의 딸들은 홍기훈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어리석은 효선이는 아버지의 죽음이 누구 때문에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고, 한동안 기훈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훈은 절대 그녀의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은조는 말할 것도 없구요.

홍기훈은 캐릭터 자체가 지독한 비호감인데다가, 불필요한 나레이션은 그나마 남아있던 어둠 속의 신비감마저 무너뜨리고 그를 유치한 꽁생원으로 전락시켰습니다. 9회 초반에 웅얼웅얼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기훈의 텔링을 한동안 참고 듣던 저는 솔직히 '개인의 취향' 쪽으로 채널을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이쪽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잠시 후에 되돌아오긴 했지만요.


그렇지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왕자님이 될 수 없는 남자주인공 기훈입니다. '신언니'에는 신데렐라도 있고, 신데렐라 언니도 있는데, 그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왕자님은 부재 상태입니다. 한정우(택연)의 캐릭터도 왕자님보다는 호위무사에 가까우니까요. 마음 바쳐 사랑할 왕자님도 없으니, 아버지를 잃은 두 자매의 앞날이 더욱 가엾고 눈물겨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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