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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왜 기훈을 멀리하는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데렐라 언니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왜 기훈을 멀리하는가?

빛무리~ 2010. 4. 23.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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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천정명)은 아무래도 왕자님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다크 프린스라도 왕자님이긴 한 줄 알았는데, 왕자라면 갖추지 말았어야 할 치명적 요소들을 너무 많이 끌어안고 있군요. 8회에서 기훈이 보여준 우유부단하면서도 유치찬란한 행동들을 목격하고 나서야 어찌 그를 계속 왕자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으로 봐서는 오히려 최악의 악역이 아닐까 생각조차 될 지경입니다.


그와 헤어져 있던 8년 동안, 은조(문근영)는 그를 잊지 않고 그리워했습니다. 화랑에서 마주친 효선(서우)이가 기훈을 만나고 있다는 말에 흔들리던 은조의 눈빛이며, 효선의 통화 내용에서 어떤 '오빠'가 버스터미널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없이 자전거를 달려 터미널로 향하던 은조의 모습에서는 아직도 그녀가 기훈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기훈을 맞이하는 은조의 태도는 시종일관 싸늘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팔짱을 끼고 찰싹 달라붙어 있는 효선이 때문인가 했습니다. 말도 없이 떠나버렸던 것에 대한 상처와 배신감도 아직 생생한데다가, 워낙 효선이와 친근해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어딘가 미심쩍었지요. 다만 질투심 때문에, 8년 동안 그리워하던 사람을 냉대한다는 것은 정말 은조답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효선이나 할만한 행동이지요.


은조는 효선이와 아주 많이 다릅니다. 효선이는 아직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온실 속의 화초입니다. 스스로 어린애가 아니라고 발악하듯 소리치지만, 아무리 봐도 어린애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은조는, 순진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송강숙(이미숙)에게 끌려다니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인간의 온갖 추하고 악한 꼴은 다 보며 자랐습니다. 비록 어미와 달리 순수함과 올곧은 심성은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코 순진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의붓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을 만나 사랑과 믿음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은조의 눈은 더욱 밝아졌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을 보는 정확한 눈이 생겼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었으나, 이제는 사람을 가려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어도 될만한 사람 앞에서는 웃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정우(택연)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정우가 아직 어린 꼬마였을 때에도, 은조는 그를 보며 웃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녀의 마음에 여유가 없었지요. 그녀에게 세상 모든 인간의 존재는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구대성으로 인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건장한 청년이 되어 나타난 한정우에게서, 여전히 변함없는 옛날 그 소년의 맑은 눈빛을 발견한 그녀는, 별로 어렵지 않게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자기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장난치는 정우의 모습을 보며 주저없이 환하게 웃기도 하고, 그가 정성껏 싸온 도시락을 기꺼이 받아서 맛있게 먹기도 합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정우가 내미는 통장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 넣으며 "불려 두었다가 너 장가갈 때 줄게" 라고 농담 비슷한 말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한정우를 대할 때면, 그녀 마음속의 예민한 촉수가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안심해도 될 사람이야. 마음 놓고 웃어라."


그런데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와서 다시 만난 홍기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은조는 직감으로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람의 어두운 눈빛에 익숙합니다. 그녀는 순수하지 못한 눈빛, 무언가 속에 감추고 있는 음험한 눈빛,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운 공격성을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이 보아 왔으니까요. 그녀에게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어머니의 눈빛이 그러했고, 구대성을 만나기 전에 겪었던 백만 명이나 되는 의붓아버지의 눈빛이 그러했습니다.

기훈과 눈이 마주치며 흠칫하는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강한 경계심을 느끼고 가시를 곤두세웠습니다. 유치한 질투심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기훈이도 한때는 순수한 청년이었지요. 8년 전에는 아마도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지난 세월 동안 때가 묻을대로 묻어 버렸네요. 그래서 사람을 보는 눈도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밝고 예민한 은조의 눈이 벌써 자기의 정체를 절반 이상이나 알아차렸을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군요.


기훈은 지금 노골적으로 효선과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에는 감싸안아 보호해 주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대성도가를 장악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자기에게 푹 빠져있는 순진한 효선이를 이용하는 것임을, 바보가 아닌 이상 기훈이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시커먼 늑대 앞에서, 아직도 사춘기 소녀적인 사랑과 질투에 몸살을 앓는 효선은 징징거리며 외칩니다. "나는 은조가 아니니까!"

"내 이름 들먹거리지 마, 구효선" 은조의 단호한 목소리가 그 답답한 상황에 시원스레 물을 끼얹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었든, 함께 비를 맞았든, 나한테 아무리 잘해줬어도 나, 그 사람 버리기가 하나도 어렵지 않아. 그거... 세상에서 제일 쉬워." 이렇게 은조는 이미 자신의 마음이 기훈에게서 완전히 떠났음을 담담히 밝힌 후 곧장 술창고로 들어갑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차가운 거짓말로 자기 마음을 숨겼다면, 그 다음에는 혼자서 몰래 괴로워해야 맞겠지요. 그러나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돌아서는 순간, 기훈의 존재는 그녀의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새로 개발하는 술이 담긴 항아리만 끌어안고 "잘 익어 줘, 부탁이야" 하고 간절히 되뇌일 뿐입니다.

그런데 은조의 뒤를 따라온 기훈의 태도는, 그래도 왕자님으로 남을 수 있었던 마지막 가능성마저 와장창 깨뜨렸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 따위... 간단해" (극도의 유치함-_-;;) "하지만 넌 아니야. 너는 거짓말을 했어. 나를 미워하지 마. 나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도, 간단하게 잊었다고 억지쓰는 것도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날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돼."


기훈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의도적으로 효선이를 가까이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조를 잊지 못해서, 정우와 함께 웃고 있는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는 식으로, 그렇게 우유부단한 사랑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은조 역시 자기를 잊지 못하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의 복잡하고 어두운 눈빛을 알아차리는 순간, 은조의 마음은 정말로 기훈을 떠났습니다.

어리석은 기훈에게 다시 은조는 시원스레 한 방을 날려 줍니다. "나 이 집에 빚 엄청 많은 사람이야. 이 집에 해 끼치려는 사람 있으면 다 죽여버릴 거야" 자기 마음을 꿰뚫고 있는 은조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 있는 기훈에게 그녀는 확인사살까지 해주고 자리를 뜹니다. "효선이한테 나쁘게 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지금 은조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비록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아버지라 부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구대성입니다. 그녀가 온 정성을 다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의 기업인 대성도가입니다. 자기 엄마 송강숙이 행여나 구대성을 배신하고 그에게 상처를 입힐까봐, 그녀는 자기 목숨까지 거론하면서 엄마에게 눈물로 애원합니다.

"이 집에 해를 끼치려는 사람, 다 죽여버릴 거야" 라는 말은 그녀의 진심이었습니다. 이런 그녀의 눈에, 대성도가를 자기 손에 넣으려고 돌아온 기훈이 곱게 보일리가 없습니다. 아직은 짐작일 뿐이라 막연한 경계심만을 보이고 있으나, 기훈이 작은 빈틈이라도 드러내서 자기 속내를 들키면, 은조는 즉시 칼을 내리칠 기세입니다.


만약에라도 '확실한 반전'이 존재한다면 모를까, 이제 홍기훈의 캐릭터가 왕자님이 되기는 글렀습니다. 아니, 반전이 있다 한들, 얼마나 이미지 회복에 성공할지는 의문이군요. 은조와 효선 자매를 도와서 자기 이복형의 홍주가와 맞서 싸우고, 대성도가를 재건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그녀들 중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하면, 그때는 다시 왕자님이 될 수 있을까요? 글쎄... 이미 금이 가 버린 유리잔이라, 아무래도 기훈의 캐릭터가 되살아날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악역이었으면 나았을 텐데, 처음에는 왕자님이고 흑기사이고 키다리아저씨였다가, 나중에는 배신자에 침입자에 약탈자가 되어 버리다니... 게다가 사랑을 이용하려 하고, 유치한 자뻑에 집착까지 내보이다니... 천정명의 연기도 안습에 가까운 수준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캐릭터가 너무 안좋아서 오히려 천정명이 딱할 지경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 드라마의 최고 수혜자는 택연이 될 것 같군요.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연기하기가 어렵지 않고 비중은 적으면서도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게다가 티끌 한 점도 없는 완벽한 호감형 캐릭터입니다.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팍 주저앉아 버렸으니 상대적으로 그가 더욱 빛날 수밖에 없지요. '신언니'는 천정명을 죽이고 택연을 살리는 드라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기자에겐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운도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덧붙이기 : 오해하는 분들이 계신 듯하여 덧붙입니다. 기훈의 의도가 선량한 쪽에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제 글이 생뚱맞게 느껴지시겠지요. 저 또한 그런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약소기업인 대성도가를 위해 차라리 우호적 합병을 진행하려 한다든지, 아니면 자기의 정체를 숨긴 채 이복형 기정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주려 한다든지... 기훈이 수행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아직도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 견해로 볼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해도, 우호적 합병이든, 방패막이든 무엇을 해준다 해도, 옳지 않습니다. 구대성이 원하지 않는 우호적 합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방패가 되어준다 해도 그런 의도였다면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구대성에게 밝혔어야 합니다. 자기 정체를 숨긴 채, 그가 쓰러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해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저의 사고방식을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악한 의도로 왔든 선한 의도로 왔든... 이미 대성도가의 자매에게 있어 기훈의 존재는 은인이 아니라 원수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제 뜻을 충분히 알고도 동의하실 수 없는 분들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충분치 못한 설명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인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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