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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 왕지혜, 껍데기뿐인 그녀의 인생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개인의 취향

'개인의 취향' 왕지혜, 껍데기뿐인 그녀의 인생

빛무리~ 2010. 4.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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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놓아버렸던 드라마인데, 우연히 재방송을 힐끗거리다가 덜컥 낚여버린 '개인의 취향' 입니다. 지극히 유치하고 얄팍한 듯 하면서도, 그 안에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들을 원색적으로 대비시켜 놓은 구도가 자못 흥미롭더군요. 이민호가 연기하는 전진호라는 캐릭터가 적잖이 매력적이기도 하구요. 감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정성화와 조은지의 연기가 또한 볼만합니다.

요즈음 드라마는 온전히 미워할 수 있는 악역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특징인 듯 합니다. 초반에는 그럴 수 없이 뻔뻔한 밉상으로 여겨졌던 김인희(왕지혜)와 한창렬(김지석)이, 6회까지 방송된 지금은 나름대로 가엾고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제가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김인희의 캐릭터지만, 우선은 한창렬에 대해 조금만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한창렬의 아버지(안석환)는 재벌 회장으로서 많은 여인을 거느렸습니다. 자기 아버지와 잠시 살았던 여인들을 창렬은 모두 엄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머니가 무려 일곱명이나 됩니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의 인품이 결코 차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인희가 '그 여자들'이라고 말하면 창렬은 화를 냅니다. "그 여자들이라고 부르지 마. 나에게는 모두 소중한 어머니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마음 약하고 착한 녀석인 것은 분명한 듯 싶습니다.

그런 한창렬이 박개인(손예진)을 버리고 김인희를 택한 이유는, 그의 말에 따르면 오직 하나입니다. 자기를 욕구가 넘치는 열정적인 남자로 보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가 자기에게 모두를 걸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니, 참으로 어리고 어리석은 사내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자기에게 접근한 인희가 쉽게 몸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녀야말로 자기에게 모두를 걸었다고 생각했다니... 그렇게 여자 보는 눈이 없어서야 큰일이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두 남녀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필연인 듯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여자가 말하지요. "어렸을 때 우리는 참 순수하게 서로를 좋아했는데, 당신과 헤어지고 만났던 남자아이들은 모두 여자아이의 스커트 밑에 손을 넣는 것 외에는 생각할 줄 모르더군요. 나는 언제나 당신이 그리웠어요." 그러자 남자가 대답합니다. "당신과 헤어져 있는 동안, 열 몇 살의 소년이었을 때는 나 역시 그런 것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남자아이였소."

한창렬의 나이는 이미 30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정신적 수준은 딱 10여 세의 소년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엄마가 일곱 명이나 되다보니 오히려 정상적인 모성이 결핍되어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창렬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문제의 그녀, 김인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인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무엇이든 나눠 쓰고 도와준 친구가 개인이였습니다. 그런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고마운 마음보다 상한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인희는 의도적인 배은망덕을 결심합니다. “너무 착한 척하니까, 자신의 것을 뺏으면 나쁘게 되지 않을까... 나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인희는 어리석게도 자기 인생의 초점을 스스로에게 맞추지 않고 박개인에게 맞추어 버렸습니다. 그녀의 진짜 불행은 거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이가 착하거나 못됐거나 그 사실은 김인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건만, 그녀는 친구의 모습을 너무 집중해서 바라보느라고 정작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너무 개인이한테 집중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사태마저 발생한 것이지요.


"나는 개인이가 사랑하는 창렬씨가 궁금했어. 개인이가 그렇게 사랑하는 창렬씨는 어떤 사람일까... 개인이는 집에 오면 항상 '우리 창렬씨, 우리 창렬씨' 이야기 밖에 할 줄 몰랐지. 개인이 말만 들으면 창렬씨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완벽한 남자였어.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나는 창렬씨를 사랑한 게 아니었어. 개인이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창렬씨를 사랑했던 거야."

자기 자신을 버리고 박개인에게 집중하면서부터 김인희는 껍데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속이 텅 빈 껍데기라서 그녀는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속마음까지도 박개인에게 묶여서 끌려다니며, 개인이가 사랑하는 남자를 자기도 사랑하려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인희는 지독히 불쌍한 컴플렉스 덩어리입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속은 실한 알맹이로 가득 채워져 있는 개인이가 훨씬 행복한 캐릭터군요.


박개인(손예진)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력이 흘러넘치는 여주인공은 아니지만, 사람을 진짜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이나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이 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이 든든히 채워져 있으니까, 괴로워 울다가도 금방 다시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랑에 배신당하고도 얼마든지 다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참 대책없는 푼수 같지만, 그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은 차라리 부러울 지경입니다.

더구나 이제 그녀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정말 좋은 사람이 그녀의 곁에 있기까지 하니까요. "인생이 상쾌한 내 친구, 박개인!" 더러운 세상에 상처받은 전진호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개인이와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습니다. 눈물 젖은 얼굴로 그녀에게 입술을 내밀어 키스하는 순간, 그는 언제부터인가 물이 스미듯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그녀의 존재를 깨달았겠지요. 정말 잘 어울리는 두 사람입니다.


여전히 박개인의 그림자로서 껍데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김인희는, 창렬을 버리고 다시 개인의 곁에 있는 남자, 전진호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창렬에게 그랬던 것처럼, 상처받은 남자의 약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유혹합니다. "술 한 잔 하실래요?" 그녀의 속보이는 유혹에 한창렬은 너무 쉽게 넘어갔지만, 전진호는 달랐습니다. 그녀의 모든 제안을 정중히, 그러나 단호히 거절하고는 홀로 술잔을 기울입니다.

상처받은 상태에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법인데, 그 순간 다가오는 예쁜 여자를 거절할 줄 아는 전진호는 참으로 강한 사내입니다. 어리고 줏대가 약한 창렬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말 멋진 남자군요. 개인이는 완전히 닭 놓치고 봉황 잡았습니다.


이제 김인희는 더욱 비워져 버렸습니다. 집안 좋은 창렬과 결혼하려고 무리해서 혼수를 장만하느라 그 동안 모아 두었던 재산마저 날려 버렸으니까요. 그녀는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고 돈도 잃고 홀로 남았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그녀의 공허한 속이 채워질 수 있을까요? 유쾌한 터치로 그려지는 '개인의 취향'에서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 김인희가 어떻게 변해갈지, 저는 개인과 진호의 사랑보다도 그게 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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