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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 봉구의 재도약이 특히 기대되는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공부의 신

'공부의 신' 봉구의 재도약이 특히 기대되는 이유

빛무리~ 2010. 2. 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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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에 등장하는 천하대 특별반 아이들은 하나같이 조금씩은 특별합니다. 그 특별함을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결코 행복한 방향으로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나현정(지연)은 비록 경제적 어려움은 없으나 부모가 이혼하면서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살고 있는 외로운 아이이며, 홍찬두(이현우)는 부와 명예를 겸비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고 있지만 항상 너무 잘난 형, 누나들과 비교되며 자기를 향한 부모님의 과분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헉헉대는 아이입니다.


황백현(유승호)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다가 너무 가난해서 강석호 변호사(김수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몸을 누일 방 한 칸도 얻을 수 없을 상황이었으며, 길풀잎(고아성)은 술과 웃음을 파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었는데 그나마 최근에 그 어머니가 딸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면서 혼자 남았습니다. 경제적 상황 역시 집세조차 내지 못할 만큼 열악하여 고3인데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봉구(이찬호)는 좀 다른 경우입니다. 다른 네 명이 집안 사정이나 가족들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오봉구는 집안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자기 자신의 능력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언제나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경제적 형편도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만 비교적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천근만근으로 내리감기는 눈꺼풀을 치켜올릴만한 힘이 봉구에게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계속 잠이 와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요" 하며 서럽게 우는 봉구의 눈물이, 저에게는 엄마가 도망친 빈 술집에서 울고 있던 풀잎이의 눈물보다 더 진하게 와닿았습니다. 아마도 풀잎이의 상황은 다분히 드라마적인데 반해서, 봉구의 상황은 너무도 현실적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제 13회에서는 봉구의 슬픔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이제껏 그렇게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부했건만 성적이 더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말 뜻밖이었어요. 그 잠꾸러기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보고 그의 부모님도 "우리 아들 맞아?" 하고 놀라셨을 뿐 아니라, 선생님까지도 "현재 특별반 5명 중에서 오봉구가 제일 빠른 성적 향상을 이루고 있다" 고 칭찬까지 하셨었는데 말이죠.


봉구가 그 지긋지긋한 잠귀신을 물리치게 된 원인은 바로 여름 합숙 훈련에서 독방 생활을 하는 중 발견한, 자기 내면 깊숙히 숨어 있던 강렬한 꿈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사랑하던 강아지가 병들어 죽은 후 착한 봉구 어린이는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주기 위해 나중에 꼭 수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었지요. 그러나 마음이 너무 약했던 봉구는 자기 눈앞에서 가엾게도 숨을 거두어버린 강아지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마음을 무디게 해버렸던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점점 잊게 되었고 아픔은 무디어졌지만, 그가 잊은 것은 아픔만이 아니라 꿈도 함께였습니다.

독방에서 자기의 옛날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죽은 강아지의 사진을 발견한 봉구는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잊었던 꿈을 기억해 냅니다. 꿈을 되찾은 봉구의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꿈이 잠귀신을 쫓아버렸던 것이지요. 비록 미물이지만 그 강아지에 대한 봉구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수의사가 되어서 너처럼 아픈 강아지들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으면서,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까맣게 잊고 살았던 자신이 봉구는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공부에 푹 빠져들게 되자, 봉구에게서 의외의 일면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풀잎이를 위해 특별반의 다른 아이들은 일을 나누어서 해주기로 하는데, 봉구는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는 혼자 빠져서 집에 돌아와 공부에 전념합니다. 예전의 봉구라면 그럴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누구보다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이 깊던 착한 봉구가 갑자기 이기적인 아이가 된 것처럼 보여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되찾은 꿈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공부를 잘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그리 되었다고 일단 이해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공부에 전념했건만, 모의고사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은 모두 성적이 대폭 향상되었다면서 얼싸안고 기뻐하는데 봉구는 혼자 한쪽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다가와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며 그의 가채점 시험지를 잡아당기는데, 거기에 쓰여진 점수는 거짓이었습니다. 차마 자기의 실체를 내보일 수 없었던 봉구는 무의식중에 그랬는지, 자기가 채점한 시험지에 거짓 점수를 써 놓았던 것이지요. 그의 멍한 표정을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착각했던 저는, 봉구가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도 시험을 잘 봤다고 말한 후, 자기 방에 혼자 앉아서 처절하게 울음을 터뜨릴 때에야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봉구의 캐릭터는 특별반의 다섯명 학생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하면서도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다른 네 명과 달리 빼어난 외모를 가지지도 않았고, 드라마틱한 극적 상황에 놓여 있지도 않습니다. 길풀잎, 나현정, 홍찬두, 황백현이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아이들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오봉구는 학창시절, 반에 서너명 쯤은 꼭 있었던 친구 같기도 하고, 동네를 거닐다 보면 한두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친구 같기도 합니다. 제가 오봉구의 캐릭터를 가장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봉구가 혼자 서럽게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너는 참 행복한 아이다. 네가 가장 행복한 아이야."

*******

어린시절, 톨스토이의 '부활'을 문고판으로 읽던 당시, 저의 뇌리에 깊은 인상으로 박힌 부분이 있었습니다. 카츄샤의 재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한 젊은 검사(檢事)를 소개하는 부분이었지요. 물론 읽은지 오래 되어서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불행히도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검사로 임용될 때에도 역시 그의 성적은 수석이었으며, 검사가 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패소(敗訴)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불행한 일이었다."


아직 어렸던 저는 위의 인물소개가 '반어법'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흠잡을 데 없이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오히려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일종의 풍자 효과를 내고자 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정작 그게 아니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위의 문장들은 결코 반어법이 아니라 직설법으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부활'은 톨스토이가 만년에 써내려간 작품이지요. 실패를 모르는 삶, 패배를 모르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감에 가득찬 그 젊은 검사가 완벽한 법적 논리와 근거로 카츄샤에게 유형(流刑)을 구형하고 결국 승리할 것임을, 그래서 그의 영혼은 더욱 각박하고 오만해질 것임을, 죄없이 형을 살아야 하는 카츄샤보다 오히려 카츄샤의 죄없음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그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만한 자아가 더욱 불행한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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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결코, 겪어보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진리이니, 천하대 특별반의 귀염둥이들이 진심으로 깨달으려면 최소한 십수년은 지나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저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이, 또는 자기의 한계가 버겁고 원망스럽기만 하겠지요. 하지만 이 아이들은 모두 행복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봉구가 가장 행복한 이유는, 오직 그 아이만이 자기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은 그 기회를 얻었으나 봉구 만큼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은 어딘가 외부적 요인에 떠밀려서 여기까지 온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들을 괴롭히는 원인도 모두 그들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미국으로 유학가기 싫었던 찬두는 도피처로 특별반을 선택했고, 황백현은 할머니와 함께 길거리에 나앉게 된 자기를 구해 주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강석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지요. 풀잎이는 빨리 능력을 키워 독립함으로써 더 이상 어머니의 문란한 생활을 눈앞에서 보지 않아도 되기를 원했으며, 현정이는 그저 백현이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따라왔을 뿐입니다.


그에 비해 봉구는 철저히 자기 자신의 선택으로 특별반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천하대에 가겠다고 해도 심드렁하게 "천하대가 그렇게 좋은 것인지... 그렇게 하면서까지 거길 꼭 가야 하는 것인지..."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일단 그가 결심을 하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는, 편안하고 좋은 부모님이셨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아무것도 극복해야 할 장애 요인이 없으니, 그는 철저히 자기 자신의 한계 극복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적이 떨어진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고, 그 어떤 핑계도 댈 수가 없어요. 오직 봉구 혼자만이 책임져야 할 일이죠.

다른 아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마음속으로는 남의 탓을 할 수가 있습니다. 풀잎이는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엄마를, 현정이도 역시 자기를 버린 부모님을, 찬두는 끊임없이 자기를 압박하고 부담을 주시는 아버지를 원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원망할 수 없는 봉구는 어쩔 수 없이 가장 마주하기 힘들고 껄끄러운 자기 자신과 마주 대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장 고통스런 일이지만,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룩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도 특별반 내에서 혼자 성적이 떨어져 버린 오봉구, 그 눈물에서 13회는 마무리되었지만 저는 그가 꼭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평범하고 잘난 것 없는 그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해야만, 그를 닮은 현실의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잡은 봉구가 결국은 가장 성숙한 모습으로 깨어나, 우리에게 이 드라마의 주제를 몸소 멋지게 전달해 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 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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