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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대상, 이경실을 보며 미실이 떠오른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연예대상, 이경실을 보며 미실이 떠오른 이유

빛무리~ 2009. 12. 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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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9일 방송된 MBC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여자 최우수상은 이경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수상 소감은 그야말로 역동적이었습니다. 강력한 웃음과 강렬한 눈물이 어우러졌거든요.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도 할 말 다 하고, 그 말들의 내용은 재치로 흘러넘쳐, 보는 사람들은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와 친분을 나누고 있는 동료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더군요. 이경실의 수상 소감이 끝나고, 시상자였던 박미선이 했던 멘트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울면서 웃기는...... 우리 개그맨들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경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선덕여왕'의 미실이 떠올랐습니다.

이경실은 국내의 개그우먼들 중, 가장 드센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혜련 등의 다른 줌마테이너들도 만만치 않은 드센 기운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들의 경우는 골룸 분장과도 같은 굴욕의 이미지가 겹쳐서 떠오르기 때문에 가학적이기보다는 피학적인 느낌을 줍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학적 이미지보다는 피학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더 호감을 사기 쉽지요. 그런 면에서 이경실은 상당히 불리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개그맨들이 방송중에 보여주는 모습은 90% 이상이 설정이라고 봐야 하는데, 남들 위에 군림하고 때로는 구박하고 괴롭히는 가학적 캐릭터를 잡았으니 말입니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들은 상당수 그런 컨셉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얼마 전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서도 그녀의 컨셉은 계속되었습니다. 이경실은 개그맨 후배 유재석을 감싸주기 위해 고정 출연자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가수들을 구박하고, 그로 인해 안방마님 이효리가 대표적 희생자(?)가 되는 설정이었거든요. 이경실의 독한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그 앞에 '미실 경실' 이라고 커다랗게 자막을 띄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는 제 머릿속에 미실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드세다, 군림한다, 강한 여성의 이미지다, 라는 것들만으로는 미실과 연결되지 않더라구요. 그러나 어제 그녀의 눈물을 보며, 그녀가 좀처럼 보이지 않던, 조금은 약한 모습을 보며 저는 미실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4~5년쯤 전인 것 같네요. '해피투게더'가 아직은 '쟁반노래방'이었던 시절입니다. 당시 진행자는 유재석과 김제동이었습니다. 같은 여걸5의 멤버였던 조혜련, 옥주현과 함께 이경실이 출연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그녀의 인생에 큰 아픔이 지나간 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경실은 여전히 활기차고 강인하면서도 차분했습니다.

유재석이 "요즈음 점점 더 아름다워지신다"고 찬사를 건네자, 진지한 얼굴로 자기 코를 가리키며 "얼마 전에 새로 했는데, 이만하면 잘 나왔죠?" 하고 태연히 응대를 하더군요. 거기까지는 모두 함께 웃을만 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한발 앞서 나가는 그녀의 멘트는 모두를 당황시켰습니다.

"그리고 말이지, 사실은... 음... 이거 편집 안해도 돼. 그냥 방송에 내보내도 돼... 사실은 나... 이혼하고 나서 예뻐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 착한 MC의 대표격인 유재석과 김제동이 당황하던 표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왜...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까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그녀의 성격대로, 그녀의 속까지 너무 쿨해서, 정말 괜찮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볼 줄 모르는 저는 바보같이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흐른 후, 어제 그녀의 눈물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결코 괜찮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간절히 괜찮아지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거였습니다. 남들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했으나,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던 겁니다.

이경실은 대학시절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의 연애를 거쳐서 결혼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닥친 불행한 소식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연애기간과 결혼기간을 합쳐서 그렇게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서로를 잘 알고 있었을 법한 두 사람이,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큰 상처를 받으며 돌아서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경실에게 있어 그 헤어짐은, 어쩌면 그녀가 지나온 인생의 대부분을 부정해야만 하는 아픔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덕여왕'에서 초반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던 미실(고현정), 좀처럼 충격받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가, 무려 사흘씩이나 쿨쿨 잠만 자게 만들 정도로 충격을 주었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 그녀가 자기 인생 모두를 바쳐서 이루려했던 꿈, 황후가 되겠다는 그 꿈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부정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어제까지도 자기의 모든 것이었던 그 소중한 꿈이 초라해져 버렸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으니 그 허탈감이 오죽했을까요? 진작에 다른 곳을 쳐다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와 후회한다 해도 소용없고, 이미 청춘은 지나가 버렸고...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앞날은 보이지 않고...


그러나 미실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경실도 힘차게 다시 일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부정당해 버린 과거이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정하며 그것을 밟고 일어섰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쟁반노래방'에서 보여주었던, 조금은 과하다 싶었던 그녀의 발언은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달려가기 위한 도움닫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녀의 눈물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그저 강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내면에 쌓여 있던 아픔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아, 물론 미실에게 설원랑이 있었던 것처럼, 이경실에게도 그토록 사이좋은 현재의 남편이 있으니 그 역할을 해주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남편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시청자들이 그녀의 설원랑이 되어, 그녀의 눈물을 마음으로 닦아 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아픔 속에 놓여 있다면, 결코 타인들 앞에서 그것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그토록 진솔한 모습으로, 지나간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녀가 아픔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 주어진 상은 단순한 포상의 의미가 아니라, 그녀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던 어두운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버리게 해준 의미가 있다고 보였습니다.

언제나 쉽지 않은 악역을 맡아, 고통을 감수하며 동료들을 뒷받침 해주는, 쿨하고 멋진 그녀 이경실이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어제처럼 우리에게 웃음과 눈물을 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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