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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와 연극

영화 '집행자', 배우 윤계상을 재발견하다

빛무리~ 2009. 10. 2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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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한 논란은 꾸준히 계속되어 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주장과, 갈수록 세상이 험해지는데 법을 약화시켜서는 더욱 강력범죄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사형제도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라도 유지시키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양쪽 다 일리가 있기에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집행자'는 어찌보면 식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접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사형수의 입장이나 피해자의 입장, 또는 성직자의 입장이나 우연히 사형수를 알게 된 일반인의 입장에서 다루어진 소설이나 영화는 본 적이 있습니다만, 바로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사형집행관'들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리버리한 햇병아리 교도관 오재경(윤계상), 경력 10년차의 냉혹한 교도관 배종호(조재현), 그리고 인심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정겹지만 과거에 수십명을 사형집행시킨 경험을 갖고 있는 고참 교도관 김교위(박인환), 이렇게 세 사람이 '집행자'의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사회 리뷰이므로 기본적 단서만 제공하고 상세한 내용은 전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12년만에 법무부로부터 사형수 3명에 대한 사형집행명령서가 전달되자 교도소에는 일대 파란이 일게 됩니다. 저는 한 번도 교도관들의 입장이 되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계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기에, 사형집행을 앞두고 한숨의 잠도 이루지 못하며 스스로 남의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절망적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형수 이성환은 1989년에 저지른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벌써 20년을 복역한 육순의 노인입니다. 이미 기독교에 귀의하여 회개한지 오래이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노인으로 변하여 매일 김교위(박인환)와 장기를 두며 놀던 친구사이입니다. 그에 반해 사형수 장용두는 최근에 잡혀들어온 연쇄살인범으로서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끝까지 세상을 차갑게 증오하며 발악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고 할만했습니다.


집행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저는, 당연히 이성환의 죽음에는 슬퍼서 눈물을 자아내게 될 것이며, 장용두의 죽음에는 통쾌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용두의 죽음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결코 통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리도록 아팠습니다. 장용두가 불쌍해서는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형폐지론자는 아닙니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그 대신 다른 형법이 훨씬 더 강력하게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법률이 재정비되려면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릴 것 같기에, 덜컥 사형제도부터 폐지하고 보는 것이 좋은 수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으로 강력범죄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 '집행자'를 보면서, 사형의 집행이란 정말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형제도는 유지시키되 집행은 하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한 법으로서 효력을 상실하게 될까요? 저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건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라는 생각만이 계속 들 뿐입니다. 


신참 교도관 오재경 역을 맡은 윤계상은 한결 깊이있고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조재현이나 박인환과 비교하면 아직 어설픔이 군데군데에서 드러나긴 했으나, 그래도 영화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숙연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잘 유지하며 선배들의 리드를 곧잘 따라간 듯 싶습니다.

윤계상은 수많은 가수 출신 연기자들 중에서 연기력이 괜찮은 편이라고 제가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몇몇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 그에게 좌절을 안겨주었을 드라마 '트리플'을 저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쩌다보니 끝까지 보게 되었었는데, 맡은 캐릭터 자체가 워낙 황당해서 그렇지 윤계상의 연기력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집행자'에서 또 한 계단 올라선 듯한 모습을 보니 이제는 '배우'라고 불러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집행자'는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교훈적인 느낌만 있고 재미가 없는 지루한 영화였다면 결코 추천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나름 긴박감도 느끼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다만, 물음표에 해당하는 메시지만 던져놓고 결말이나 해법을 제시하는 부분은 없으니 한편으로는 허무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를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라고 규정해놓고 그쪽으로 끌고간다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런 무조건적인 해석은 너무 억지스럽다고 생각되기에, 저는 그냥 커다란 물음표만 끌어안고 극장을 나섰습니다. 이 물음표는 앞으로도 좀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떠오를 화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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