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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악역 없는 착한 드라마가 성공했다는 것은... 본문

드라마를 보다 /기타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악역 없는 착한 드라마가 성공했다는 것은...

빛무리~ 2018.09.21 08:58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갈등'이다. 갈등 없이는 어떤 드라마도 만들어질 수 없기에, 드라마는 '갈등'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갈등은 바로 '악역'에게서 비롯된다. 현실 속 세상이 그렇듯이 드라마 속 세상에도 나쁜 인간들이 존재하고, 그 나쁜 인간들의 활약이 도드라질수록 드라마의 갈등은 심화되며, 갈등이 심화될수록 드라마의 흥미는 더해진다. 때로는 막장이라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솔직히 악역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와 더불어 최후에 그 악역이 몰락하면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줄 때의 쾌감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매력적인 악역은 그 존재감으로 선한 주인공을 제압하며 해당 드라마의 최고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고현정이 열연했던 '선덕여왕'의 '미실'이 바로 그러한 캐릭터였다. 또한 옛날 작품이긴 하지만 김운경 작가의 '서울의 달'과 같은 경우는 아예 악역인 김홍식(한석규)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선역인 박춘섭(최민식)과 더불어 투톱 체제이기는 했으나, 그 존재감에 있어서는 홍식이 춘섭을 확실히 제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설정은 '세상에 원래 나쁜 놈은 없다'라는 인식하에서 가능해진다. 


아무런 사연이나 설득력 없는 단순 악역의 시대는 이미 물 건너간지 오래다. 현대 작품의 제대로 된 악역들은 모두 제각각의 사연이 있고, 아무리 극악한 행동을 하더라도 나름의 논리에 따라 일종의 설득력을 지닌다. 그래서 비록 용서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고, 치명적인 매력 때문에 사랑받기에도 충분한 악역들이 요즘 드라마에는 넘쳐난다. 그러니 이러한 시대에 '악역 없는'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며, 온통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그런 심심한 드라마가 시청률 면에서까지 선방한다는 것은 더욱 희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9월 18일자로 종영한 조성희 작가의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가 바로 그런 드라마였다. 최종회에서 모든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숨겨진 악역의 존재가 암시되는 듯도 했으나, 결국 밝혀진 진실 속에는 단 한 명의 악역도 없었다. 모든 갈등과 비극은 얄궂은 운명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아무도 나쁜 마음을 먹고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여주인공 우서리(신혜선)의 재능을 질투하는 김태린(왕지원)은 누가 봐도 악역의 포스가 다분한 인물이었건만, 너무 쉽게 설득되고 감화되어 오히려 주인공의 착한 조력자가 되고 말았다. 


김태린 뿐 아니라 유찬(안효섭)과 김형태(윤선우) 역시 다른 드라마에서라면 충분히 악역으로 변신할 소지가 많은 캐릭터였다. 여주인공을 사랑하여 남주인공의 연적이 되는 인물이니까. 보통 이와 같은 서브 남주들은 처음에는 그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천사의 얼굴을 보여주지만,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이 다른 남자에게로 향해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질투에 눈이 멀어 악마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서브 남주들은 너무 착하고 순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는 마음 하나로, 그녀를 향한 욕망을 버리고 기꺼이 물러선다. 


어쩌면 이와 같은 설정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일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것이 남녀간의 욕망일진대, 사랑하는 이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슬픈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착한 행동이란 그저 눈물을 뿌리며 돌아서는 것일 뿐, 따뜻한 미소로 축복을 빌어준다는 것은 거의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욱 비현실적인 것은 사고를 낸 트럭 운전수의 캐릭터였다. 죄책감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자기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여고생을 위해 10여 년 동안이나 남몰래 병원비를 댄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우서리를 버리고 떠났던 외삼촌(이승준)과 외숙모(심이영) 역시 사업 실패와 파산에 잇따른 외삼촌의 사망으로 어쩔 수 없었던 사실이 최종회에 드러났다. 당시 외숙모는 서리의 부모가 남겨준 집을 급히 팔고 떠났는데 그 집을 구입한 사람이 하필이면 공우진(양세종)의 아버지라서, 11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남녀 주인공의 극적인 재회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얽힌 인연과 겹쳐진 우연은, 13년 동안이나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우서리가 갑자기 깨어나 아무런 장애 없이 너무 빨리 회복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과 더불어 매우 동화적인 설정이다. 


이 드라마는 진짜 동화보다도 더욱 동화같다. 하물며 동화 속에도 악역은 있는데, 이 드라마에는 모두 천사들만 가득하다.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모두 깊이 뉘우치고 속죄하며 살아간다. 자기 때문에 우서리가 죽은 줄만 알고 죄책감에 휩싸여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킨 채 살아왔던 공우진은, 되살아난 우서리와의 재회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다시 소통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타인에게 다가서기 쉽지 않은 서른 살 어른들의 사회에 열일곱 소녀의 마음을 지닌 우서리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다. 


그러니 메마름 속에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소망을 형상화시킨 듯한 이 드라마를, 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억지스런 설정이나 비판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착한 드라마가 시청률 면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기에 나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현실 속에는 적잖은 어둠과 악함이 존재하지만, 선하고 밝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열망이 강해질수록 세상은 그에 따라 조금씩 밝아지고 착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조성희 작가의 약력을 보니, 내가 홀릭했던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에 작가진으로 참여했던 경력이 눈에 띈다. 생각해 보면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작품들에도 악역은 없었다. 물론 좀 찌질하고 치사스런 캐릭터들은 있었지만, 그쯤이야 충분히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악역 없는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이유도 시트콤을 집필했던 경험 덕분일 것 같다. 언젠가는 악역 없는 시트콤 같은 세상이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비록 기약은 없어도 오늘 하루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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