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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의병의 불꽃

빛무리~ 2018.09.11 22:55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역시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미스터 션샤인'에는 재치있고 맛갈스런 명대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중에도 최고의 명대사를 꼽는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9회에서 고애신(김태리)의 입을 통해 표현된 "나는 불꽃이오"라는 대사를 선택하고 싶다.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사대부 여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라는 유진초이(이병헌)의 말에 고애신은 담담히 미소지으며 그렇게 답했던 것이다. 거사에 나갈 때마다 죽음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의병으로서의 삶을 그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서글프게도 대부분 존재의 흥망성쇠는 힘의 논리로 좌우된다. 선악이나 옳고 그름과는 별 상관이 없다. 국가든 개인이든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아무리 옳고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힘이 없으면 짓밟힌다. 반대로 짓밟는 자에게는 오직 힘만이 필요할 뿐, 진정한 양심이나 당위성 따위는 필요치 않다. 이완익(김의성)이 왈패들을 몰고 와 고사홍(이호재)의 집과 담벼락을 때려부술 때, 그 행위 어디에서 당위성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집을 통과하여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란 그저 거짓된 허울이며 핑계일 뿐이었다. 


짐승이기를 선택한 자들의 무지막지한 힘 앞에, 참다운 인간의 고고한 정신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부서졌다. 그래도 고사홍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소작인들을 불러모아 경작하던 땅을 골고루 나눠 주며 끝까지 조선의 땅을 지켜 달라 당부할 때, 그 마음속에 흐르는 것은 오직 청정한 측은지심과 애끓는 충심 뿐 한 가닥의 사욕도 섞여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한 가정의 수호자로서 그는 울타리 없이 남게 될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도 잊지 않았다. 비록 못난 자손이지만 남편 이덕문(김중희)에게 학대받고 있던 큰 손녀 고애순(박아인)을 잊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구해 오는 모습에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시렸다. 

평생 아픈 손가락이었던 작은 손녀 애신을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애신을 사랑하는 두 남자, 유진초이와 구동매(유연석)를 불러들였을 때 고사홍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들에게 맡길 일이 정해져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지킬 자' 구동매에게는 "애신이를 지켜달라" 당부하고 '고심하여 완벽을 기할 자' 유진초이에게는 일군 대좌 모리 타카시(김남희)를 죽여달라 당부하니, 각자의 성향을 완벽히 파악한 임무 배정이었다. 모리 타카시는 애신의 의병 활동에 큰 위협이 될 인물이지만, 일본에 조선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를 제거함에 미국인인 유진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어른이요 정신적 지주였던 고사홍은 그렇게 자신의 사후를 정리한 후, 마치 기름 다한 등불이 꺼져가듯 고요히 잠들었다. 그와 함께 한 시대가 저물고 또 하나의 시대가 열렸으니, 그것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뼈아프고 치욕스런 시대였다. 어쩌면 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는 처음부터 새드엔딩만 존재했을 것이다. 화강암에 음각처럼 깊이 새겨진 역사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시대의 주인공들에게 해피엔딩은 없을 것이기에. 하지만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본다면 '의병'이라는 불꽃이 아직 남아있기에 절망 속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황은산(김갑수), 장승구(최무성) 등과 함께 고애신이 활동하고 있는 의병 조직은 참으로 험난하고도 외로운 싸움을 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일본과 싸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세에 협력하는 내부의 적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조선이라는 등불은 꺼져가는 중이라, 현실적인 희망이라곤 남아있지 않은데도 그들은 묵묵히 싸우며 하나씩 스러져간다. 장포수와 사랑하는 사이였던 주모 홍파(서유정)도 끝내 모리 타카시의 손에 살해당하고, 그 시신은 대로변에 처참한 모습으로 내걸렸다. 


하지만 슬픔에 절규하면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들이 선택한 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처참한 죽음 뿐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뚜벅뚜벅 걸어간다. 양반이건 천민이건, 배운 자이건 못 배운 자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그들은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기 때문이다. 의병은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다시 일어선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면 미래에라도, 다음 세대의 삶 속에서라도 희망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리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산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병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물론 '미스터 션샤인'에도 멜로는 존재한다. 그러나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보다, 그것이 또 다른 가치와 결합할 때 얼마나 더 뜨거워질 수 있는가를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비록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웃고 있을 수는 없지만, 난무하는 죽음의 그림자와 피비린내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란 또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사실 이 드라마는 감동적이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파 시청하기가 매우 힘든 작품이다. 하지만 의병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고, 그 불꽃 안에서 타오르는 사랑이 있기에 이쯤의 고통은 충분히 견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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