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정운택 폭행 혐의, 연예인이 처신을 조심해야 할 이유 본문
배우 정운택이 대리기사 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기사가 처음 보도되었 을 때, 언론의 흐름은 오히려 정운택을 피해자로 보는 쪽이었다. 정운택의 소속사에서 재빠른 입장 표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소속사의 해명에 따르면 집단으로 모여 있던 대리기사들이 먼저 정운택에게 시비를 걸며 '대가리'(영화 속 캐릭터)라 외쳐댔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정운택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운택이 다가가 무단 촬영을 막으려던 과정에서 경미한 몸싸움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정운택의 신분을 약점으로 잡은 대리기사 측에서 폭행 피해를 주장하며 언론 제보를 무기삼아 지나치게 큰 액수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소속사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연예인과 일반인의 시비가 붙었을 때, 아무래도 소문이 퍼지면 불리해지는 쪽은 연예인이니까 조용히 끝내려는 의도에서 필요 이상의 합의금을 건네는 경우가 꽤 많으며, 연예인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고의로 시비를 건 후 합의금을 뜯어내려는 악질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운택 소속사 측의 해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싸한 해명과 언론의 편파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운택 측의 입장에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운택은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폭행 사건으로 몇 번이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고, 그 때마다 비슷한 해명을 내놓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예인이라서 약점 아닌 약점을 잡혔다지만, 그 수많은 연예인들 중 폭행 혐의로 거듭 반복해서 물의를 빚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유명인이라서 표적이 되고 시비를 겪는 것은 정운택 뿐만 아니라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일텐데, 남들이 조용하게 지내는 동안 수차례나 구설수에 올랐다는 사실은 정운택 본인에게 무언가 원인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그러던 중, 정운택을 고소한 대리기사 측의 입장이 담긴 상세한 내용의 인터뷰가 증거 영상과 더불어 보도되었다. (해당 기사 링크)
대리기사 류 모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업무를 마친 새벽 4시경 회사 셔틀을 기다리며 거리에 서 있었던 것뿐인데, 갑자기 술에 취한 정운택이 다가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고 한다. "왜 때리느냐"고 항의하자 정운택은 "뒤지고 싶냐"고 위협하면서 류씨의 멱살을 잡은 채 약 1~2m를 끌고 갔는데, 그 과정에서 옷이 찢어지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정운택의 소속사에서는 대리기사들이 영화 속 캐릭터인 '대가리'라는 이름으로 정운택을 부르며 조롱했다고 했지만, 정작 류씨는 정운택이 연예인인 것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정운택은 결코 인지도가 높은 편이 못 되기에 "한눈에 알아볼 만한 유명인도 아니니까" 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담겼다.
당시 영상을 촬영한 제보자도 류씨와 같은 증언을 했다. 정운택이 연예인임을 알아본 사람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워낙 만취한 사람인지라 모두 슬슬 피했을 뿐 '대가리'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정운택이 다짜고짜 류씨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잔뜩 취한 정운택은 자신이 촬영당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촬영을 제지하려다가 몸싸움이 일어났다는 주장 역시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제보자의 영상 속에서 류씨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정운택은 류씨가 회사차에 올라타며 그 자리를 피하려 하자 류씨를 붙잡아 끌어내리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연예인의 약점을 잡아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소속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류씨는 단호히 부인했다. 소속사 대표가 찾아와 사과하며 합의금 100만원에 처벌불원서를 써 달라는 제안을 했을 뿐, 자신은 한 번도 돈을 요구하거나 액수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은 류씨의 인터뷰에서 명확하지 못하게 표현된 부분이라 의문의 여지가 있다. 소속사 측에서는 "정운택이 직접 만나 사과하려고 했지만, 피해자가 거부해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류씨 측에서는 "대표가 '운택이를 부를까요?'하길래 정운택이 인대도 다쳤다는데 '그냥 됐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류씨가 정운택과의 만남을 거부한 것은 사실인 셈이다.
그렇다면 합의금 100만원에 처벌불원서 문제는 어떻게 처리된 것일까? 만약 류씨가 소속사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거기서 조용히 마무리되었을테니 일이 이토록 커졌을 리가 없다. 따라서 류씨가 그 제안을 거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운택과의 만남도 거부하고 소속사 대표의 제안도 거부했다면, 류씨가 원한 것은 대체 뭐였을까? 류씨가 피해자임은 영상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되었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의 인터뷰 역시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운택 본인에게 진심으로 사과받기를 원했다면, 어째서 그와의 만남을 거부했을까? ("인대를 다쳤으니 올 것 없다"고 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 날 소속사 대표의 예의있는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뜨려졌는데, 이후 사과를 요구했을 때의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정운택 씨에게 직접 사과를 듣지 못했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마지막 기회를 줄테니 잘 생각해보고 사과를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소속사에서는 '생각하는 금액이 얼마냐'는 얘기만 했다. 그 얘기에 정말 큰 모멸감을 느꼈다."고 류씨는 주장했다. 하지만 정운택을 직접 불러서 사과시키겠다는 대표의 제안은 거부해 놓고, 나중에 가서야 본인에게 직접 사과를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둥 운운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이미 합의금 100만원도 거절한 상태에서 그렇게 나오면 소속사 측에서는 "얼마를 원하느냐?"고 묻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류씨의 주장대로 먼저 돈을 요구하거나 구체적인 금액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가 원한 것은 100만원 가량의 푼돈(?)이 아니라 좀 더 큰 액수의 합의금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류씨는 "참고 넘어가면 차후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이 나섰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만, 순전히 그런 목적으로 고소를 진행한 거라면 "마지막 기회를 줄테니 잘 생각해보고 사과를 해달라"고 했다는 인터뷰 내용과 상충된다. 불미스런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 이번 일을 세상에 널리 알린 거라면, 마지막 기회는 무엇이고 잘 생각해보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많이 어설프다.
이번 사건에서 정운택을 피해자라고 할 수는 없다. 술에 취해 타인에게 시비를 걸고 폭행에 준하는 행동을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정운택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일반인에 비해 너무도 가혹하다. 돈도 문제지만 거듭 추락한 이미지가 회복 불능 지경에 이르렀으니, 몇 번의 잠깐 실수로 인생 전체에 캄캄한 먹구름이 드리운 셈이다. 따라서 연예인은 언제 어디서나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인기 톱스타가 아닌 이상 대다수의 연예인은 '힘없는 유명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처럼 권력과 돈으로 무장한 유명인들은 물의를 빚어도 비교적 쉽게 빠져나갈 수 있지만, 쓸데없이 얼굴만 팔리고 사실상 힘이 없는 연예인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심하는 게 아니라 '조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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