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쎄시봉' 단지 한효주 때문에 안 보기는 아까운 영화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쎄시봉' 단지 한효주 때문에 안 보기는 아까운 영화

빛무리~ 2015. 2. 6. 09:33
반응형


영화 '쎄시봉'이 개봉도 하기 전부터 네티즌 평점테러에 시달리며 난항을 겪었던 이유는 여주인공 민자영의 젊은 시절을 맡은 여배우 한효주의 남동생 때문이었다. 부대 내 가혹 행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공군 김일병'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어질 만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는데, 한효주의 남동생이 그 사건의 가해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급기야 가해자로 지목된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누나인 한효주가 유명인으로서 대신 사과하는 태도라도 보여야 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사과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잊혀져가는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안타까워 한효주라도 붙잡고 있어 보려는 네티즌의 마음은 정의감이며 측은지심이다. 하지만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동생 대신 나서서 사과하거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부당하게 비춰진다. 어쩌면 한효주에게 그럴 뜻이 있더라도 갖은 제약들이 얽혀서 실행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 볼 때, 한효주뿐만 아니라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 관련 기사에까지 쫓아다니며 악플을 도배하는 네티즌들의 행위는 도를 넘어선 가혹함으로 느껴진다. 더욱이 '쎄시봉'은 한효주만의 영화가 아닌데, 다른 배우들과 제작진에게는 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놀러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쎄시봉' 특집을 시청한 후, 나는 그 옛날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무대는 어떻게 위치해 있고 관객들은 어떻게 둘러앉아 그 무대를 감상했는지 꼭 한 번쯤 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영화 '쎄시봉'이 만들어졌고, 여주인공 민자영 캐릭터의 실제 모델인 배우 윤여정이 자문으로 참여해서 그 당시 분위기를 생생히 살릴 수 있도록 증언까지 해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작은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어떻게 놓칠소냐! 더욱이 영화에 사용된 음악의 저작권료만 해도 6억원에 달한다는 정보는 설렘과 궁금증을 한층 더해서 참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열 살 위 친언니의 영향을 받은 탓에 아주 어릴 적부터 트윈폴리오의 노래를 좋아했다. 언니도 물론 그들과 같은 또래는 아니지만 취향에 맞아선지 윤형주와 송창식의 음반을 항상 즐겨 들었고, 언니 껌딱지였던 나는 그 덕분에 8~9세 무렵부터 '두 개의 작은 별' 또는 '가나다라' 등의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놀았다. 그렇게 시작된 음악 취향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트윈폴리오와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며 꿈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또래 친구들이 젊은 댄스가수의 춤과 노래에 열광할 때 나는 아버지뻘 가수들의 오래된 노래에 푹 빠져 있었으니 참 독특하긴 했는데, 아무튼 세대는 다르지만 결국 '쎄시봉'의 음악은 내 어린시절 추억이기도 한 셈이었다. 


윤형주 송창식의 '트윈폴리오'는 원래 3명의 트리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영화 속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팩트다. 제3의 멤버는 '이익균'이라는 이름의 실제 인물로서 '놀러와'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수십년만의 합동 무대가 꾸며져서 노래도 불렀는데, 이익균씨의 굵고 낮은 저음은 윤형주 송창식의 고음 중음과 더불어 멋진 화음을 이루었다. 따라서 '쎄시봉'의 남주인공 오근태(정우) 캐릭터의 실제 모델은 이익균씨라고 봐야 하겠지만, 정식 데뷔를 앞두고 갑자기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나머지 내용은 모두 픽션에 해당한다. 영화의 큰 얼개는 사실에 입각해서 구성되었지만, 오근태와 민자영의 멜로를 비롯한 세부적 스토리는 허구다.



 

어차피 한효주가 논란의 중심에 있으니 여주인공 캐릭터를 먼저 말해 본다면, 솔직히 외모가 예쁘고 발랄하다는 것 외에 다른 매력은 발견하기 어렵다. 민자영은 자신이 예쁘고 인기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안다. 영리하고 발칙하며 야심만만하다.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가난한 무명가수 애인쯤은 가볍게 차버릴 수도 있는 여자다. '건축학개론'의 양서연(수지)은 오해를 받아서 '썅년'이 되었기 때문에 억울한 감이 있었는데, '쎄시봉'의 민자영은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 '썅년'에 가깝다. 하지만 오근태는 버림받은 후에도 그녀를 욕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여전히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건축학개론'의 승민(엄태웅)보다도 훨씬 더 지고지순한 남주인공이다.  


실제 모델인 윤여정의 젊은 시절은 영화 속 민자영보다 훨씬 순수했던 것 같다. 민자영은 사랑을 버리고 성공을 쫓아 전도유망한 영화감독과 결혼하지만, 윤여정은 오히려 한창 인기 많던 시절에 배우로서의 인생을 중단하면서까지 가수 조영남과 결혼했으니 말이다. 미국으로 떠난 것 역시 조영남의 유학과 음악 활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으니, 윤여정은 민자영과 달리 매우 희생적인 사랑을 했던 셈이다. 아무튼 여주인공 캐릭터가 순수하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효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은 몰입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그냥 욕하면서(?) 보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추억 속 첫사랑이었던 그 예쁜 '썅년'을 떠올리면서. 



결론을 말하자면 '쎄시봉'은 트윈폴리오의 노래를 비롯한 포크송을 좋아하거나,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거나, 아련한 복고풍 향수에 젖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높은 만족감을 주는 영화다. 주체적 시선이 오근태를 비롯한 남자 캐릭터들에 맞춰져 있으니, 여주인공에 대한 호감도는 별로 중요치 않다. 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민자영이 아니라 남성 캐릭터들의 감정에 한껏 몰입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칭찬하고 싶은 것은, 현존하는 실제 모델들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해서 최대한 실감나게 표현해낸 젊은 배우들의 노력이었다. 강하늘, 조복래, 진구, 김인권은 현저히 다른 외모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만큼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조영남과 닮은 듯 느껴졌다. 


'쎄시봉'에서 공연하는 장면에서는 립씽크를 하지 않고 출연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분위기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재연해내는 그들의 노래 실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물론 진짜 가수들과는 좀 차이가 있었지만, 이제 노년이 된 트윈폴리오의 원숙함과 달리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에는 싱그러운 매력이 담겨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놀러와'에 출연한 윤형주 송창식은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50년 우정을 과시했지만, 20대 초반 혈기방장했던 시절에도 그런 모습이었을까? 한없이 서툴고 예민하면서도 거칠었던 시절, 치기어린 오만과 허세로 매일 티격태격하다가도 금세 음악으로 화합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풋풋하고 정겹게 그려진다. 



후반에 등장하는 김희애와 장현성의 배역 싱크로율 역시 매우 좋다. 특히 김희애는 한효주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젊은 시절의 민자영이 그대로 나이들어 중년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장현성은 초반부터 내레이션을 진행해 온 까닭인지, 외모가 달라졌어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느낌이다. 의외로 가장 어색한 사람은 오근태 역의 김윤석이었다. 굉장한 연기파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멜로는 좀 아닌 것 같다. 애틋함보다는 섬뜩함이 느껴지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넓은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은 제각각 자신에게 어울리는 분야가 따로 있는 법이니, 무리한 변신을 꾀하기보다는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게 좋을 듯 싶다. 


나중에 '쎄시봉'이 DVD로 출시되면 나는 평생토록 소장할 생각이다. 심지어 최상의 음질을 확보할 수 있다면 고가의 블루레이까지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 영화 속에 음악이 빼곡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트윈폴리오 및 이장희, 김세환의 명곡들이 수시로 흘러나오는데, 그저 노래로만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생동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관람한 남편은 신파같아서 별로였다지만, 이런 복고풍의 영화에서 신파가 빠지면 오히려 서운하지 않겠는가? 정겨운 추억과 더불어 오랜만에 촌스러운 신파의 맛에 푹 빠져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화 '쎄시봉'을 추천한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