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정글의 법칙' 배성재, 아나운서의 고달픔을 이해하는 이유 본문
SBS 아나운서 배성재가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촬영 중 고달픔을 표현했다. 배성재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원래 체력이 약하지는 않은데 완전히 바닥난 느낌이다. 비탈진 곳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무릎을 굽히지 못하겠더라.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일을 하니 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멤버들에게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는 군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은데 정글과는 비교가 안된다. 거긴 아무리 힘들어도 잠은 재운다. 그런데 여기는 첫 날 아예 잠을 못 잤다"고 하소연했다. 아마존에서의 마지막 밤, 둘러앉아 회포를 푸는 멤버들은 대부분 힘겨운 일정을 마쳤음에 뿌듯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배성재는 줄곧 웃음기 없이 지친 표정이었다.
"힘들어도 시간은 빨리 가지 않았느냐?"고 예지원이 물었지만, 배성재는 정색을 하며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멤버들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대답을 이끌어내려는 듯 다시 물었지만, 배성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간은 굉장히 느리게 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배성재의 반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이며 담대한 모습까지 보였다. 온유와 이민우가 신화의 '헤이 컴온'을 편곡하여 유쾌한 정글송을 부르자 멤버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살아났는데, 갑자기 "나도 '아마존송'이 하나 생각났다"면서 불쑥 나선 배성재는 "아마존~ 그건 지옥이었을거야~" 하고 우울한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처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멜로디는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 이었다.)
하지만 나는 배성재의 그러한 태도를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배성재는 아나운서일 뿐 예능인이 아니며 연예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아나운서들의 예능 출연이 잦아지면서 '아나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고, 현재도 몇몇 아나운서들은 자발적으로 갖가지 예능에 출연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방송국을 떠났다. 하지만 배성재는 그런 '류'에 속하는 아나운서가 아니었다. 그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고 싶어하는 듯했으며, 이제껏 예능 출연도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능 중에서도 가장 독한 생존 버라이어티 '정글의 법칙'에 투입되었으니 그 황당함과 고달픔이 오죽할 것인가?
배성재는 2014 월드컵을 맞이하여 차범근과 함께 브라질 행이 결정되었다. 믿고 보는 '차범근 해설-배성재 캐스터'의 조합은 벌써부터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일명 '아빠! 브라질 가?' 팀으로 불리는 MBC의 '김성주-안정환-송종국' 조합이 엄청난 기세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예능을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확보하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그들이 한데 뭉쳤으니,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SBS와 KBS 측에서는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KBS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약하던 조우종에게 월드컵 축구 중계를 맡겼고, SBS는 배성재를 부랴부랴 '정글의 법칙'에 투입하여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려 한 듯 싶다.
하지만 MBC의 경우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보니, KBS와 SBS의 무리한 선택은 별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월드컵이 시작되기도 전이지만, 낌새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뜻이다. 배성재는 어느 덧 스포츠 캐스터로서의 위상을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으며, 경력 15년차의 베테랑 김성주와 동급으로 여겨질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니, 굳이 예능에 투입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오히려 브라질로 떠나기 전에는 푹 쉬면서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낯설고 물선 외국에서 한참이나 머물며 힘든 축구 중계에 몰입하는 동안 기운을 낼 수 있을 것인데, 이거야 엉뚱한 예능에서 힘을 다 빼 버렸으니 앞으로의 일정이 매우 염려스럽다.
조우종은 스포츠 캐스터로서의 능력보다 예능에서의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브라질 행 티켓을 거머쥐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조우종 예능'을 검색하면 무려 7~8개의 프로그램이 주루룩 쏟아져 나온다. '정글의 법칙'이 유일무이한 첫 예능인 배성재와는 아주 다른 경우다. 하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의 메인 캐스터로서 조우종의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해설위원 이영표와 더불어 '벨기에 : 룩셈부르크' 평가전을 중계한 후, 시청자들은 일제히 캐스터 조우종에게 실망과 혹평을 쏟아냈다. 경기 흐름을 빠르게 짚어내지 못하고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만 똑같이 되풀이하는 상황이 이어졌으며, 가장 중요한 득점 장면에서조차 더듬거렸다는 이유에서였다.
KBS의 선택보다는 어쨌든 SBS의 선택이 나을 것이다. MBC처럼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면, 예능에서의 친근한 이미지보다는 축구 중계 실력을 단연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설' 차범근의 이름까지 더해졌으니 MBC와의 대결에서 딱히 불리할 거라고 예상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예능을 즐기지 않는 순수 축구팬들은 '김성주-안정환-송종국' 조합보다 '차범근-배성재' 조합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배성재 아나운서에게 불필요한 예능 이미지를 덧입히려고 '정글의 법칙'에 투입한 것은 정말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위해서도 시청자를 위해서도 배성재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것 없는 선택이었다.
배성재가 아마존 촬영 말미에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역력히 드러낸 것은 약간 의도적인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예능 출연을 원하는 아나운서들도 있겠지만, 아나운서로서의 정통 업무만을 고집하며 예능 출연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배성재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런 직원에게 회사에서 출연료 2만원을 주면서 강제로 힘든 예능에 출연시킨다면, 이거야말로 '갑의 횡포'가 아니겠는가? 원래 자신의 업무도 아니고 스스로 원한 일도 아니니, 힘든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다 해서 '프로의식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내가 지금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를 수없이 되뇌었을 배성재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 생각에 '아나테이너'를 많이 보유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예능을 통해 인기를 얻은 '아나테이너'들은 머잖아 프리를 선언하고 독립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누가 똑같은 일을 하면서 남들은 수백만원씩 받는데 달랑 2만원 받는 것으로 만족하겠는가? 그러므로 방송사에서는 아나운서들의 예능 출연을 권장하기보다 오히려 자제시키는 편이 훨씬 이득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배성재처럼 자기 분야에 열정적이고 성실한 아나운서를 마구 예능에 밀어넣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다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귀한 인재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예능과 다큐멘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 어디 가' 찬형이 향한 빈이의 간절한 일편단심 (5) | 2014.06.19 |
---|---|
김보성 '의리 시리즈' 요절복통 웃음 속 숨겨진 의미 (9) | 2014.06.08 |
이윤성, 살기 위해 이혼했다는 경솔한 발언, 도대체 왜? (22) | 2014.06.06 |
'아빠, 어디 가' 에밀레종의 끔찍한 전설을 왜 주입시키나? (12) | 201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