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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헨리를 보며 느끼는 분단 국가의 비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진짜 사나이' 헨리를 보며 느끼는 분단 국가의 비애

빛무리~ 2014. 3. 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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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턴가 '진짜 사나이'를 거의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군대 무식자'로 불리워지는 헨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웃기고 재미있는 게 아니라 가슴이 아파온다. 외국인이기 때문도 아니고, 고문관이자 구멍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군대 생활은 누구나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안스럽지만, 헨리에게서는 좀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굳이 표현하자면 헨리는 군대식으로 길들여질 수도 없는 사람이고, 절대 그렇게 길들여져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스타킹'에 출연해서 신들린 듯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피아노를 치는 헨리의 모습을 볼 때, 이제껏 모호하던 나의 감정은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냈다. 인간 세상은 총천연색이라 수많은 개성이 존재하는데, 그 중 예술가들은 가장 예민하고 섬세하며 다치거나 깨지기 쉬운 감성의 소유자들이다. 단순히 공평과 불공평의 잣대로 본다면 불공평에 해당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개성과 감성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이 얼마나 병적으로 심약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만약 20대 초반의 쇼팽이 강제로 한국 군에 입대하여 2년의 세월을 보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십 억 인류의 가슴을 울려주는 쇼팽의 위대한 음악들은 아예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내가 헨리를 보면서 느끼는 슬픔은 헨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소속사의 명령에 따라 내키지 않는데 왔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원칙적으로 보면 헨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방의 의무가 없다. 본인이 정말 죽도록 하기 싫으면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사나이'에서 보여주는 헨리의 밝은 모습은 그렇게까지 못 견딜 만큼 힘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진짜 사나이'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가 팍팍 올라가니 연예인 헨리로서는 천금같이 귀하고 고마운 기회라 할 수도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특성상 위험한 요소들이 많으니 훈련중에 손가락이라도 다칠까봐 염려스럽긴 하지만, 실제 군인들처럼 그 생활을 몇 년씩 꾸준히 지속하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짧게 진행되는 촬영 기간만 견디면 되니까 괜찮을 것 같다.

 

2011년 3월, 사격 훈련을 받던 손형주 이병은 서른 번째 사격이 끝난 후 다시 장전한 서른 한 번째 총탄으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했다. 현역 판정을 받고 입대한지 불과 3개월만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103kg의 뚱뚱한 체구와 0.1에 불과한 나쁜 시력, 게다가 손을 떠는 증세까지 지녔던 손형주 이병의 군대 생활은 참혹했다. 10년 전이었다면 현역 입대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병력 자원이 부족해지자 병무청은 기준을 완화시켜 웬만하면 현역 판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손형주 이병은 혹독한 훈련 결과 3개월만에 20kg을 감량했지만, 나쁜 시력과 수전증 때문에 사격은 아무래도 잘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 했던 그였지만, 군대에서는 매일 조롱받고 얼차려나 받는 뚱뚱한 바보일 뿐이었다. 3개월 동안 그가 겪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어찌 타인이 상상할 수나 있을까?

 

 

군대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중에는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사람(손형주 이병의 경우)도 있고, 군대에 적응시켜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헨리의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국 젊은이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무조건 군대를 가야만 하는 분단 국가의 현실이 슬프기 그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손형주 이병은 죽음과 맞먹는 고통을 간신히 견디고 있을 것이며, 또 다른 헨리는 섬세한 감성과 재능을 잃어가며 획일적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을 것이다. 의무적 군 징병제는 국가적 상황 때문에 불가피했던 것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억울한 생명들과 아까운 재능들을 얼마나 무수히 잃어야 했던 것일까?

 

심지어 분단 국가라는 특수 상황은 기업 문화까지 군대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사의 명령에는 어떤 의문이나 이의도 제기할 수 없고, 타당하든 부당하든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절대적 상명하복 체제... 따지고 보면 이는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가! 하지만 군대 문화에 길들여져 버린 한국인에게는 어느 새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청춘 시절의 2년은 단지 2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도 끝없이 영향을 미치기에, 결국은 사회의 본질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창의성은 말살되고 독특한 개성은 천시받으며, 오직 획일화되고 순종적인 사람만이 사회 생활에 적응 잘한다고 칭찬받는 사회라니, 이 얼마나 슬프고 기막힌 현실인가? 내가 '진짜 사나이'의 헨리를 볼 때마다 가슴 아파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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