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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 여배우들, 애틋한 삶의 여행을 돌아보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꽃보다 누나' 여배우들, 애틋한 삶의 여행을 돌아보다

빛무리~ 2014. 1.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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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와 '꽃누나'는 확실히 달랐다. '꽃보다 할배'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편안함과 유쾌함이었다면, '꽃보다 누나'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시종일관 묘한 애틋함이 감돌았다. 평균 연령으로 따지면 '꽃누나'가 '꽃할배'보다 훨씬 젊으니 더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있을 것도 같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덧 지나 온 인생을 차분히 관망하는 경지에 접어든 '꽃할배'들의 자세에서는 여유로움이 묻어났지만, 아직 치열한 삶의 중심부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40대 중년 여배우들의 자세는 적잖이 불안해 보였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에 윤여정과 김희애는 단호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는데 67세 윤여정의 답변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지만, 47세 김희애의 답변은 의지적인 다짐처럼 느껴졌다.

 

 

힘들게 영화 한 편을 다 찍었는데 처음부터 다시 찍으라면 얼마나 막막하겠냐면서, 김희애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좋기 때문에 절대 10~20대의 청춘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영화 한 편을 다 찍었다고 볼 수 없는 한창 나이를 생각할 때, 그 답변은 윤여정에게는 어울릴지 몰라도 그녀에겐 어색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데 부질없는 상상이 무슨 소용있나? 벌써 많이 지쳤지만 힘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밖에. 그러려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해.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런 것 아니었을까? 60대의 윤여정이나 김자옥과 달리 40대의 김희애와 이미연은 여행 중 유난히 눈물을 많이 보였었다. 물론 복잡한 심경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삶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런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더랬다.

 

40대는 아쉽게 붙잡고 있던 젊음의 끈을 조금씩 놓아버려야 하는 시기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중년을 지나 노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기인 것이다. 어찌 보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사춘기와 비교해도 그 흔들림과 고통이 약하지 않은 시기가 바로 40대일지 모른다. 더욱이 각종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섭렵하며 만인의 연인으로 등극했던 그녀들의 청춘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그 강렬한 경험들을 이제는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겨두고 인생의 다음 장을 넘겨야 한다.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인 김희애보다도 40대 싱글 여성의 삶을 영유하고 있는 이미연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남성에게도 물론 그렇지만 특히 여성에게 있어 결혼이나 출산은 매우 확고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싱글 여성이 아니지만, 워낙 결혼을 늦게 했고 아이도 없는지라 여전히 싱글일 때와 비슷한 심경을 많이 갖고 있다. 경험이 없는 입장에서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으나 같은 여성으로서 추측해 본다면,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경험을 한 여성들은 그 과정 중에 자연스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고 받아들이며, 머잖아 닥쳐 올 중년과 노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젠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이 삶의 주인은 아님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밑거름이 되어 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서서히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안의 '소녀'를 놓아버리기가 더욱 쉽지 않다. 자신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어쩌다 보니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지금의 낯선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청춘은 어느 덧 나의 삶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버렸다.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는 시절인지도 모르고 그저 당연한 것처럼 흘려보낸 시간들을 틈틈이 돌이켜 볼 때 어찌 애잔한 마음이 우러나지 않으랴? 지독한 흔들림의 시기를 묵묵히 홀로 버티며 지나는 이미연을 볼 때마다 나는 왠지 가슴이 아렸다. 특유의 밝고 씩씩한 모습에서도 그러했고, "행복하세요"라는 말 한 마디에 펑펑 눈물짓던 모습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흔히들 여행을 인생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소 여행을 즐기지 않던 나는 그 의미를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삶의 큰 변화를 겪고 몇 차례의 여행도 하면서 조금씩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여행은 길든 짧든 인생과 꼭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행 중 무심결에 드러내는 자신의 평소와 다른 모습들에도 주목을 하게 된다. 그것은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자신이며, 어쩌면 일상 속에서 보여지던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모습일 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모습은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과 심경에 처해 있는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불안하면 불안한 그대로, 편안하면 편안한 그대로.

 

유쾌한 '꽃할배' 시리즈의 막간에 등장하여 수시로 애잔한 감성을 일으켜 주던 '꽃누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꽃할배3'는 아직 준비 단계일 뿐인데 우리의 꽃할배들은 벌써부터 다음 번 여행을 잔뜩 기대하며 설렘과 희망에 부풀어 계시다 하니, 20대 청춘 못지 않은 열정과 의욕에 그저 감사하고 기쁠 따름이다. 한 6개월 여행을 나가 보자고,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도 찍어 보자고 위풍당당 출사표를 던지신 분이 이순재 옹이셨던가, 박근형 옹이셨던가? '꽃누나'의 애상도 충분히 감미롭고 좋았지만, 이제는 유쾌하고 편안한 '꽃할배'가 또 다시 기다려진다. 마치 고단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묵직하면서도 기분 좋은 피로감처럼, 꽃할배들의 세번째 여행이 노년의 맑은 향기를 가득 품고 돌아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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