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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예체능' 심장 쫄깃했던 한일전, 국민 정신의 승리였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우리동네 예체능' 심장 쫄깃했던 한일전, 국민 정신의 승리였다

빛무리~ 2013. 12. 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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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에게 '한일전'의 의미는 컸다. 단순히 '외국'과의 경기가 아닌 '한일전'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정식 스포츠 경기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열렬하게 솟구쳤으니 말이다. 예전처럼 단일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없는 글로벌 시대에, 오히려 그랬다가는 편협한 국수주의라든가 비윤리적인 인종차별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 시대에, 일본('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이다)을 상대하는 한국인들만의 독특한 감정을 그 어떤 외국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부당한 국권 침탈과 잔인한 식민통치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역사의 상처이나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고, 우리의 감정도 더 이상 치떨리는 미움이나 증오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가슴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분명 존재한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아직 학생 신분일 때 보았던 특집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나는 좀처럼 잊을 수 없다. 그 프로그램의 정체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이 며칠간 합숙을 하면서 운동 경기와 토론 등을 진행했던 것 같다. 단체 토론 중 한 명의 일본 여학생이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왜 일본을 미워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떨어뜨렸고 엄청난 피해를 주었지만, 우리 일본인들은 미국에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아직도 일본을 싫어하고 미워하나요?" 애초부터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며 마치 그게 당당한 논리인 양 내세우는 모습이 어찌나 기막혔던지 나는 곧바로 TV를 꺼 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일본인이 단지 그 여학생뿐이었을까?

 

지금도 일본의 아베 총리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으며, 어느 쪽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침략의 여부는 정치가가 아닌 역사가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침략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독일의 자세와는 정말이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국가를 이끄는 수뇌부의 자세가 그러하니 일본 청소년들은 올바른 시각의 역사를 교육받지 못했을 것이고, 자국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사고방식이 당연한 듯 습관화되었을 수 있다. 그 여학생의 주장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며 궤변이었지만, 오직 일본 내에서는 그럴싸한 논리로 통용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바라보며 한국인의 가슴에는 억울한 분노가 쌓이는데, 그 답답한 심경을 풀 곳이 마땅치 않다. 어쩌면 그래서일 게다. 각종 스포츠 경기의 한일전이 있을 때마다 독특한 국민 감정이 폭발하는 것은.

 

일본의 사회인 농구팀 슬램덩크와의 첫인사는 유쾌했다. 특히 최강창민의 현지팬들이 구름같이 몰려나와 함성을 질러대는 통에, 원정 경기였음에도 쓸쓸한 분위기는 생겨나지 않았고 오히려 뜨거운 환대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예체능 선수들의 눈빛은 싹 달라졌다. 한일전에서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한국인 특유의 열렬한 오기가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슬램덩크 팀의 첫 공격이 무산되고 빠르게 이어진 반격에서 예체능의 김혁이 화려한 플레이로 첫 골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줄리엔강의 두번째 골도 깨끗하게 들어갔다. 심장이 급격히 뛰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만만찮은 실력의 슬램덩크 팀은 거침없이 외곽슛을 날려댔고, 초반부터 3점슛이 터지며 점수는 금세 역전되었다. 특히 5번 노로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다. 설상가상 예체능 팀의 최강 에이스 김혁은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초반에 발목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불안의 먹구름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혁을 대신해서 투입된 존박이 놀랍게도 2개의 자유투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희망의 불꽃은 다시 살아났다. 넋 놓고 구경하다가 갑자기 투입되었는데 그토록 침착한 실력을 보여주다니,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던 걸까? 기대하지 않고 있던 벤치에서도 기쁨의 환호성을 올렸다.

 

한 번 역전된 점수차가 좀처럼 뒤집히지 않자, 벤치에서 잠깐 숨을 고르던 김혁이 선뜻 다시 걸어나왔다. 과거 선수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오른쪽 발목의 인대 파열 때문이었는데, 그 부위를 또 다치게 된 상황이라 염려가 컸지만 자기 몸의 안위보다는 승리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우선이었다. 최인선 감독과 우지원 코치의 현역 시절, 한일전에서는 한 번도 패배한 적 없었다는 자부심도 그 열정을 부추기는 데 한 몫 했던 모양이다. "내 몸이 부서지든 말든, 이겨야겠다는 심정밖에 없었어요!" 즐거움을 위한 예능인데 어찌 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자세였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혁의 그 심정에 공감했을 것이다. 외모는 프랑스인 어머니를 더 닮았지만 한국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진주강씨 줄리엔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반에는 최강 센터 줄리엔강이 슬램덩크 팀의 집중 수비에 꽁꽁 막히면서 득점이 쉽지 않았으나, 최인선 감독의 새로운 작전이 먹히면서 예체능의 팀플레이가 살아났다. 줄리엔에게로 집중되는 수비는 이정진이 차단해 주었고, 상대 팀 골밑에서의 리바운드는 일취월장한 실력의 박진영이 멋지게 담당해 주었다. 예체능을 통해 '서조단'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서지석은 그 명성에 걸맞게 3점슛을 빵빵 터뜨려 주었고, 특히 발목 부상에도 물 만난 고기처럼 코트를 누비는 김혁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리고 실력은 부족하지만 감독의 지시대로 끈질기게 상대팀의 에이스를 막으려 애썼던 강호동의 성실한 수비도 좋았다.

 

 

 

예체능 팀이 경기의 주도권을 잡으며 초반의 불리했던 판세는 완전히 뒤집혔고, 점수차는 53 : 36 까지 벌어졌다. 승리의 저울추가 거의 넘어왔다 싶을 정도로 꽤 큰 점수차였다. 하지만 살짝 방심했던 것일까? 슬램덩크 팀의 전면 압박 수비가 시작되자 실전 경험이 부족한 예체능 팀은 그 변화에 즉시 적응하지 못하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마지막 4쿼터에서 일방적으로 십여 점을 빼앗기며, 경기 종료를 1분 앞두고 56 : 55로 불과 한 점 차의 추격까지 허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슬램덩크의 에이스 5번은 오반칙으로 퇴장했지만, 줄리엔강의 자유투 2개는 긴장한 탓인지 모두 불발에 그쳤고 공격권은 슬램덩크로 넘어갔다. 자칫하면 통한의 역전패를 당할 수도 있겠다 싶은 아찔한 상황이었다.

 

35초... 23초... 1분의 시간이 어쩌면 그토록 긴 것일까? 리바운드를 잡은 박진영에게 고의적인 반칙이 행해졌다. 예체능의 공격을 끊고, 자유투가 불발되면 공격권을 확보하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박진영은 자유투 1개를 성공시켰고, 이어진 공격에서 슬램덩크는 너무 급했던 탓인지 라인을 밟는 실수를 저질렀다. 또 다시 예체능 공격, 하지만 줄리엔이 공을 잡자마자 슬램덩크는 다시 파울로 끊었다. 줄리엔 역시 자유투 1개를 성공시켜서 점수차는 3점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슬램덩크의 마지막 공격에서 3점슛이 불발되며 그대로 경기는 종료되었다. 58 : 55로 한국 예체능 팀의 승리였다. 긴박하고 아찔했던 만큼 더욱 짜릿하고 통쾌했다. "앞으로도 한일전에서는 결코 지지 않을 겁니다!" 우지원 코치의 한 마디는 또 얼마나 듬직하고 흐뭇했던가!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닌데, 이렇게 심장 쫄깃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은 참으로 드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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