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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 같았던 '오로라 공주'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오로라 공주

잔혹동화 같았던 '오로라 공주'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다

빛무리~ 2013. 12.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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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에 의하면 '운명론'이란 세상 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여기는 사상이다. 운명론의 특징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간관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점에 있다고 한다. 운명이 전능의 힘을 가지고 인사(人事) 일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예컨대 한 사람이 어떤 날에 죽도록 운명지어지면 사전에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그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보니 임성한 작가는 운명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것 같고, 샤머니즘(무속신앙)에 끈질긴 애착을 갖고 있으며, 환생 등의 몽환적 개념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 싶다. 전작들에서도 그런 경향이 적잖이 드러났지만, 특히 '오로라 공주'는 임성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각종 신앙과 사상과 개념들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겠다.

 

 

동성애자였다가 느닷없이 이성애자로 바뀌어 버린 나타샤(송원근)의 경우를 보면, 이 시대 핫이슈 중 하나인 동성애에 관해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동성애쯤은 운명 축에도 못 드는 작은 문제인 것이다. "스님의 명에 따라 불상 앞에서 매일 천 배씩 절을 했더니, 두 달이 지나면서부터 남자들이 눈에 안 들어오고, 십만 배 넘어가니까 여자들이 거짓말처럼 예뻐 보였다" 는 나타샤의 말이 사실이라면, 동성애는 본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하긴 사람의 죽음조차 가벼운 장난처럼 여기는 작가의 드라마에서 오직 동성애만 무겁고 진지하게 다뤄진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다.

 

결국 남주인공 황마마(오창석)도 임성한의 데스노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혈액암 4기에 뇌출혈까지 겹쳐 생사를 오가며 투병하던 설설희(서하준)는 무사히 완치되었는데, 멀쩡하던 황마마는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함안사의 주지스님은 황마마의 짧은 일생을 "명을 짧게 받고 태어났다"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출가하겠다며 함안사에 머물던 황마마를 오로라(전소민)가 데리러 왔을 때 만류했던 이유도 사실은 그 때문이라는 거였다. 얄궂게도 황마마가 그렇게 떠남으로써 오로라와 설설희는 지극히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전남편과 현남편을 한 지붕 아래에 두고 기상천외한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될 뻔했는데, 설씨 집안의 입장에서 보면 (참 미안하지만) 다행스런 결과인 셈이었다.

 

하지만 황씨 집안의 입장은 달랐다. 세 명의 누나가 평생 시집도 안 가고 키워 온 금쪽같은 막내동생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그 허탈한 심정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누나가 잘못했어. 너 하자는 대로 다 할게!" 아무리 외쳐봐야 뒤늦은 후회였다. 아무리 기이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해도 죽는 것보다야 나았으련만 (설설희의 부모가 세 사람의 동거를 극구 말리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터)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것을 공항까지 쫓아가 덜미를 잡고 강제로 끌고 돌아온지 불과 몇 시간만에, 그 아름답던 동생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린 것이다.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큰누나 황시몽(김보연)은 눈물을 흘리며 장례식장에 들어선 오로라의 머리채를 잡았다. "내 동생 홀려서 잡아먹은 여우같은 년!" 그 장면을 볼 때까지만 해도 과거 시누이로서 부릴 수 있는 패악의 끝은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로라는 남편과 시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아들을 낳았다. 이치를 따져보면 당연히 남편 설설희의 아들이었다. 시기상으로도 물론 그렇지만, 의사가 임신을 통보할 때 "축하합니다. 임신에 성공하셨습니다!" 하면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넣은 걸 보면, 임신이 쉽게 되지 않아서 의학적 도움을 받았음이 추측된다. 오로라는 황마마와의 결혼 생활 중 첫 아이를 자연유산했던 경험이 있고, 설설희는 장기간의 항암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니 임신이 어려웠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설국(임혁) 회장은 천금같은 손자에게 '무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왕꽃 선녀님'의 남주인공이던 김무빈(김성민)의 이름과 똑같은 것을 보니 이 아이의 운명도 범상치는 않을 듯 싶다.

 

백일을 갓 넘긴 무빈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장을 보러 갔던 오로라는 공교롭게도 마트에서 황시몽, 황자몽(김혜은) 자매와 마주친다.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패악을 부리지 않았다면 황마마와의 옛 정을 생각해서 다정한 인사 한 마디라도 나눌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시몽과 자몽의 번개같은 눈빛이 유모차 위를 훑는 순간 로라는 진저리를 치면서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지만, 그악스런 옛 시누이들의 레이더에 걸린 이상 봉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황시몽은 잠깐 스쳤던 아기의 얼굴이 동생 황마마의 어린 시절을 꼭 빼닮았다면서 무작정 황마마의 아들이라 우기기 시작했다. 황자몽은 동생의 아기 때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어쨌든 닮긴 닮았다는 식으로 적극 동조했다.

 

정확한 내막은 최종회를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황마마가 설설희와 오로라의 자식으로 환생한다는 세간의 추측은 아무래도 사실인 듯 싶다. 얼굴이 닮은 이유는 황마마의 피를 받은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환생이기 때문이다. 환생을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149회에 혼령으로 등장한 황마마의 대사에서 비롯된다. 황마마는 밤낮으로 눈물지으며 자신을 그리워하는 황시몽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우린 다시 만나...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육신은 바뀌지만 영혼은 영원해..." 육신은 바뀌지만 영혼은 영원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그 천진한 아기 무빈에게 황마마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 섬찟하기도 하지만, 간절히 함께 살고 싶어하던 세 사람의 소원이 그렇게라도 이뤄진다면 나쁠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환생을 믿지는 않지만, 별다른 거부감도 없다.

  

 

남동생을 너무 사랑해서 그 인생까지 독점하려던 누나들의 욕심은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그저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자식을 막무가내 제 동생의 핏줄이라 우기더니만, 급기야 엄마 손에 멀쩡히 잘 크고 있는 아이를 빼앗아 오겠다며 상상초월할 작태를 연출한다. 그녀들의 미친 집착에는 한 조각 이성과 논리마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오로라를 불러내서 진실을 말하라며 사납게 족치더니, 아기의 사진을 보고 나서는 더욱 확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핏줄에 굶주려 눈이 뒤집힌 그들에게 못할 짓은 없었다. 평화로운 집에 세 자매가 무법자처럼 들이닥쳤을 때, 오로라와 설설희 부부는 외출중이었고 조부모인 설국 회장과 안나(김영란) 여사가 무빈을 돌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정신이 온전한 황미몽(박해미)은 어째서 언니와 동생을 말리지 않았던 걸까?

 

밑도 끝도 없이 "이 집 아기가 제 동생을 닮았습니다. 유전자 검사로 확인을 꼭 해야겠어요!" 라고 들이대니, 너그럽고 인자한 설국 회장 부부도 참을 수 없이 분노해서 맞받아친다. 그 때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황시몽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정신줄을 놓쳐버렸다. 미친듯이 안방으로 질주하는 그녀를 안나 여사가 붙잡지만, 황시몽은 괴력을 발휘해서 간단히 뿌리치고 방에 들어가 도우미가 안고 있는 무빈을 빼앗는다. 설국 회장은 황자몽이 붙잡고 늘어지는 통에 황시몽을 말릴 수가 없었다. 낯선 사람의 손길이 닿자 아기는 더욱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는데, 황시몽의 두 눈은 완전히 하트 뿅뿅이다. 마치 죽은 동생이 살아 돌아온 듯, 어린 시절의 관옥같은 외모를 꼭 빼닮은 무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야말로 제정신으로는 행할 수 없는 미친 짓이었다. 그 동안 몇 차례 벌어졌던 난투극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빠의 불륜녀가 임신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달라붙으니 떼어놓기 위해서 찾아갔던 오로라와 올케들의 입장이나, 아이까지 낳은 과거를 숨기고 깜찍한 얼굴로 예비 며느리 행세를 한 노다지(백옥담)를 참고 봐줄 수 없었던 왕여옥(임예진)의 입장을 나는 이해했다. 물론 그 과격한 액션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들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었고, 적으나마 당위성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꼽만큼의 당위성도, 이해할만한 감정의 여지도 전혀 없었다. 다짜고짜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아기를 무력으로 빼앗으려는 황씨 자매의 모습은 귀신처럼 무섭고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했다. 도우미 아줌마들이 없었다면 연로한 설국 회장 부부는 힘이 넘치는 황씨 자매에게 손자를 빼앗기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오로라 공주'는 이제 최종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상상초월하는 스토리 전개와 자극적인 장면들로 빼곡히 채울 수 있다니, 사상 인품 도덕성과 무관하게, 극을 구성하는 임성한의 능력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기를 내놓으라며 기세등등하게 오로라를 다그치던 황시몽의 눈빛이, 함안사 주지스님의 말을 전해듣고 나서는 약간 수그러진 듯 보이면서 149회는 마무리되었다. 예상컨대 더 이상의 죽음이나 비극은 없을 듯하고, 황미몽은 백도(설운도)와, 황자몽은 나타샤와 결합해서 늦게나마 평범한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황마마의 죽음과 환생을 어렵게 받아들인 황시몽은 무빈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굳이 주제를 파악해 본다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무의미하게 집착하고 싸우고 피흘리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딱한 모습을 임성한은 그리고 싶었던 걸까? 

 

덧붙이기 : 나의 예상처럼 최종회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무빈이가 황마마의 환생인지 아닌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설설희와 오로라는 황마마와의 인연을 생각하여 황씨 삼자매를 무빈이의 고모로 받아들여 주었고, 황씨 자매는 마마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무빈을 바라보며 동생을 향한 그리움을 달랜다. 작가 황마마는 사후에 큰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 시상식에 영혼이 나타나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데, 이로써 영원히 함께 한다는 뭐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진행 과정에 비한다면, 아무런 반전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어쩌면 좀 밋밋하게 느껴지는 결말이었다. 과연 임성한의 차기작은 또 어떤 기괴함을 품고 돌아올까? '오로라 공주'를 통해서 많은 실망을 느꼈지만, 내가 그녀의 드라마를 완전히 외면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만 더 상식적인 내용으로 돌아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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