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오로라 공주'가 '왕가네 식구들'보다는 낫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오로라 공주

'오로라 공주'가 '왕가네 식구들'보다는 낫다

빛무리~ 2013. 12. 4. 07:21
반응형

 

 

드디어 설설희(서하준)의 일편단심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 오로라(전소민)는 설설희의 병이 낫든 아니든 상관없이 평생 그의 아내로 살아갈 것을 서약하며 흰 옷을 입고 그의 곁에 섰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응답받지 못한 외사랑으로 오랫동안 힘겨워했던 설설희가 이제 오로라의 진실한 응답을 받아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의 병이 완치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무사히 천수를 누리게 된다면 가장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다 해도 가장 열렬한 소망을 이루었으니 여한은 없을 터이다. 이제 그들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 외아들에게 닥친 병마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을 맛본 설국(임혁) 회장과 안나(김영란) 여사에게도 그보다 더한 위로는 없을 것이다.

 

결혼식의 축가를 부르는 사람은 록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였다. 생뚱맞은 정동하의 등장에 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과연 임성한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나정(고아라)의 결혼식에 김민종이 나타나 축가를 부르기까지, 그 한 장면을 위해 참으로 공들여 밑발을 깔아놓았더랬다. 그런데 아무런 밑밥도 없이 정동하는 불쑥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는 그냥 사라졌다. 물론 설국 회장의 입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세상에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치르는 결혼식인데 무슨 멋을 부리겠다고 프로 가수를 불러왔는지, 게다가 달콤한 목소리의 '유리상자'도 아니고 야생마같은 록그룹의 보컬이라니 이렇게 기상천외한 섭외가 또 있을까? 어쨌든 '사랑의 서약'을 정동하의 파워풀한 목소리로 들으니 제법 색다른 매력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종영한 '못난이 주의보'에서의 결혼식과는 사뭇 비교되는 점이 있었다. 공준수(임주환)-나도희(강소라) 커플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 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은 적이 없었는데, 이 결혼식의 신부 오로라에게는 참 복잡하고도 시끄러운 과거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 과거는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 전남편이 찾아와 이 결혼을 반대하며 난리쳤던 일이 바로 엊그제이고, 이혼 서류에 찍은 도장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급히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신랑 설설희의 깊은 마음을 생각하면 차마 흠잡기도 미안하지만, 어쨌든 현실은 그러했다. 오로라는 명백한 배신으로 다른 남자를 선택하여 떠나갔고, 독한 시누이 시집살이에 유산까지 경험하는 등 시달리다 못 견뎌 헤어졌고, 이혼을 결심하자마자 설설희를 다시 찾아왔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뻔뻔한 그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곧이어 설설희가 혈액암 4기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로라가 보여준 행동은 크게 칭찬할만 했다. 아픈 사람의 곁에 머물기로 결심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혼까지 감행한다는 것은 보통의 강단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혹시 그가 떠난다 해도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시부모님과 함께 키우며 살겠다는 그녀의 용기는 참으로 가상했다. 비록 한 때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심하게 넘어져 피를 흘렸고, 평생 깨끗이 지워내기 어려운 상처와 흉터를 갖게 되었지만, 뒤늦게나마 설설희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저리도록 애틋했다.

 

사실 지나치게 완벽해서 천사같은 공준수보다는 황마마(오창석)와 오로라가 훨씬 더 현실적인 인간형이다. 어린 나이에도 매사에 잘난 척하고 남들을 가르치려 들더니만 정작 제 삶에서는 호되게 실수하고 넘어지는 헛똑똑이 오로라... 외부에서는 존경받는 작가 선생이지만 집에서는 한심한 시스터보이로서 제 마누라의 비명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찌질이 황마마... 따지고 보면 현실 속에 그와 비슷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겉으로는 아무리 잘나 보여도 속으로는 허술하고 못난 점 투성이인 것이 사람이다. 혼자 있을 때조차 성인같은 생각만 하는 공준수는 그야말로 지극히 비현실적인 인물인데, 그런 줄 알면서도 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꿈에 그리던 이상적 인간이기 때문 아닐까?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끈질기게 완벽을 추구한다.

 

 

이쯤에서 주말드라마 '왕가네 사람들'을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은 원래 내 취향에 안 맞아서 일일이 챙겨보지는 않는 편인데, 가끔씩 채널을 돌리다가 슬쩍 보기만 해도 그 소름끼치는 인간 군상들의 작태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멀쩡한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바람을 피웠으면 최소한 잘못한 줄이나 알아야 할텐데,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며 이혼을 요구하는 오만석을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아들을 꾸짖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죄없는 며느리 이태란을 쥐잡듯하는 시어머니 이보희는 또 무엇인가? 이태란의 친정어머니 김해숙도 나을 건 없다.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할텐데 노골적으로 자식을 차별하며 맘에 안 드는 자식에게 흉폭한 언행을 일삼는 그 모습은 악귀처럼 보인다. 그런 엄마의 편애를 받는 큰딸 오현경은 어떠한가? 돈 벌어 온답시고 아이들까지 엄마한테 맡겨 놓고는 밖에 나가서 외간남자와 바람이나 피고 다닌다.

 

'왕가네 사람들'에 즐비한 막장 캐릭터들을 보면, 나는 화도 치밀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 같아야 화도 나고 혀도 찰텐데, 이것들은 당최 사람 같지도 않으니 그저 기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이 드라마 캐릭터들의 최대 문제점은 잘못해 놓고도 뭐가 잘못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능력이 유치원생보다도 못하니, 죄책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 그야말로 '구제불능'이라는 단어가 안성맞춤인데, 실제로 이런 인간들이 있을까? 더러 있기는 하겠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들에 비하면 차라리 임성한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상적이고 인간적이다. 오로라의 못된 시누이들 황시몽(김보연)과 황자몽(김혜은)도 '왕가네' 속 이보희나 김해숙에 비하면 아주 기품있고 우아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최소한 '오로라 공주'의 인물들은 잘못이 뭔지를 알고 있으며, 그 감정과 행동에 인과관계가 있다. 황시몽과 황자몽은 오로라에게 못되게 굴면서도 속으로는 잘하는 짓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오로라 쪽에서도 미움받을 만한 언행을 적잖이 했기 때문에 억울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왕가네'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에 당위성이나 인과관계 따위는 없다. 둘째딸 이태란을 미워하는 김해숙의 앙심에는 손톱만큼의 이유도 없고, 자신의 불륜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오만석의 만행은 그저 태생이 쓰레기라서 그럴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뉘우칠 가능성도 마땅히 없어야 하는데, 확신컨대 이들의 개과천선은 어느 날 갑자기 별 것 아닌 이유로 뜬금없이 시작되고 삽시간에 완성될 것이다. 이토록 쉽게 풀릴 거라면 지금껏 왜 그토록 미워했나 허무할 정도로... 그게 문영남 식의 문제 해결이다.

 

 

황마마와 오로라의 행동을 보면서 못 견디게 화가 치밀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집에서, 또는 내 친구들의 연인이나 남편 중에서 꼭 그런 사람을 본 적 있는 것 같은 데자뷰 현상은 분노를 더욱 커지게 했다. 너무 실제 사람 같아서 더 화가 났고 더 욕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설설희와 결혼식을 올리는 오로라의 모습을 보니, 약하고 못났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인간들의 모습이 새삼 처연하게 느껴졌다. 수없이 넘어지고 구르면서도 다시 일어나 달려야 하는 것이 인간들의 삶이니, 오로라의 지난 과거와 잘못들을 기억해서 뭐하겠는가 싶어졌던 것이다. 설설희의 티없이 깨끗한 사랑에 비하면 오로라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며칠 전까지도 생각했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인간적인 모습은 황마마에게서도 드러났다. 그는 누나들로부터 분가하겠다고만 하면 기뻐하며 눌러앉을 줄 알았던 오로라가 계속 이혼을 고집하자 욱하는 마음에 찬성해 놓고는, 머지 않아 후회하며 다시 돌아와 무릎을 꿇었다. 정말 찌질하고 한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로라가 설설희와의 결혼을 말하자 더 이상 못나게 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에게 보내 주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며 쿨하게 물러나는 태도는 썩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설설희의 병을 알고는 다시 찾아와, 그냥 곁에 머물기만 하다가 병이 완치되거든 결혼하라고 말리는 모습에서는 오빠같은 든든함마저 묻어났다. 오로라와 누나들 새중간에서 치이며 같이 살 때는 속터지게 못난 놈이었지만, 그에게도 진실하고 멋진 부분은 틀림없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진짜 사람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막장 드라마 작가들 중에서도 유독 임성한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이유라면, 지나치게 독특하면서도 기상천외한 설정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유체이탈이라든가 귀신이라든가 안구에서 쏘아지는 빛이라든가 뜬금없는 죽음이라든가... 이런 생소한 장면들이 시청자의 거부감을 자극했던 것 같다. 최근에는 "암세포도 생명이에요" 라든가 "나 남자됐어"라는 발언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발언은 지극히 황당한 것이었으며, 동성애자가 느닷없이 이성애자로 변모했다는 설정은 해당 사안에 대한 지식이 크게 부족했던 결과로 보여진다. 물론 그런 부분들에 대한 비판은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감상할 때 특히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는 나로서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인과관계를 부여해서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임성한의 캐릭터는 살아 있다. 현실적이라서 더욱 비난하고 싶지만, 현실적이라서 결국은 용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에 반해 문영남의 캐릭터는 살아 있지도 않고 인간 같지도 않다. 예를 들어 오만석의 캐릭터는 '천하에 못된 남편'이라는 낙인을 찍어 만들어낸 강철인형 같다. 너무 황당해서 밉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다. 이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왕가네'보다는 '오로라'가 훨씬 나은 것 같다. 뭐 어차피 둘 다 막장이니 따지는 것도 별 의미는 없겠지만.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