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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 삶과 죽음이 우스워지는 임성한의 코미디 세상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오로라 공주

'오로라 공주' 삶과 죽음이 우스워지는 임성한의 코미디 세상

빛무리~ 2013. 12. 1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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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따지면 일처다부는 아니지만, 오로라(전소민)와 설설희(서하준)와 황마마(오창석) 세 사람이 한 집에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에서 일처다부의 향기를 느끼지 않은 시청자가 있을까? 설설희와 황마마가 한 집에서 형님 아우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도 서로 질투하지 않고 의좋게 지내기를 바랐던 조선시대 남자들의 로망을 거꾸로 재현시켜 놓은 것 같다. 남녀를 불문하고 자기 배우자가 다른 이성을 만나 정을 나누는 것에 눈 뒤집히지 않을 사람 어디 있을까? 질투는 인간 내면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들 중 하나인데, 칠거지악이라는 비인간적 명분을 만들어 그 본능을 오직 여성에게만 악으로 규정하고 억누르도록 강요했던 그 때는 참으로 잔혹한 시대였다. 임성한 작가는 그 잔혹한 시대를 살다 간 여성들의 한을 대신 풀어 주고 싶기라도 했던 걸까? 덕분에 여주인공 오로라는 일처다부제가 아닌 이 나라에서 전남편과 현재 남편을 한 집에 거느리고 화목한 일상을 누리는 특혜를 받을 수 있었나보다.

 

 

사실 그 기묘한 동거는 시작부터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혈액암 4기에 뇌출혈까지 겹쳐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 설설희는 남자 간병인의 도움이 꼭 필요했는데, 신혼의 아내 로라가 남자 간병인과 온종일 한 집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그 해결책을 아내의 전남편에게서 찾겠다는 설설희의 발상은 참으로 기괴했다. "황작가님이 저 좀 돌봐 주실래요?"라는 한 마디는 "암세포도 생명이에요!"에 이은 설설희의 두번째 홈런이었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싶을 만큼 실컷 욕을 먹는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만인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가 설설희였는데, 안타깝게도 병들고 나더니 정신까지 이상해진 것 같다. 황마마에게 간병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던 순간, 병마에 침식당하며 점점 망가져가는 설설희의 모습을 안스러워하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기가 떠나면 홀로 남게 될 오로라를 생각해서 전남편과 다시 이어 주려는 마음이 있었다 해도,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설설희는 그렇다 치고, 그 황당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황마마는 또 무엇인가? 헤어진 아내의 현재 남편을 병간호 해주기 위해서 작가라는 본업을 살포시 접어두고 입주 간병인의 길로 나서다니, 이렇게 엽기적인 코미디를 어디서 또 찾아볼 수 있을까? 젊은 아내가 남자 간병인과 온종일 함께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차라리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순리였을 터이다. 연로한 부모님께 자신의 아픈 모습을 매일 보여드리고 싶지 않다는 게 부모님과 따로 살아야 하는 설설희의 유일한 이유였는데, 과연 그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식이 생사의 고비를 오갈 만큼 아프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 단지 눈 앞에만 보이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눈으로 못 보면 더욱 애타고 가슴저린 것이 부모의 심정일진대, 아내의 전남편을 간병인으로 들여야 할 이유치고는 그저 우습고 하찮을 뿐이다. 

 

'왕가네 식구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오로라 공주'의 캐릭터들은 그 말과 행동에 개연성이 있어서 실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일전의 포스팅에서 기껏 칭찬했더니만, 얼마 못 가 그 칭찬은 무색하다 못해 민망해지고 말았다. 어떻게 봐도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세 사람의 엽기적 동거는 그 양상이 점입가경이었다. 밀가루 음식은 풍을 불러온다면서 절대 못 먹게 하는 오로라의 눈을 피해 몰래 컵라면을 먹던 황마마와 설설희는 그녀에게 들키자 나란히 두 손을 들고 벌서는 자세를 취한다. 죽어버린 애견 떡대가 보고 싶다며 오로라가 우울해하자 두 남자는 그녀를 노래방에 앉혀 놓고 나란히 율동까지 곁들여 노래를 부르며 달래준다. 여선생님 앞의 장난꾸러기 꼬마들처럼, 엄마 앞에서 재롱부리는 아이들처럼, 오로라는 전남편과 현재 남편을 그렇게 완벽히 제압하며 거느리고 살았던 것이다. 나는 전혀 부럽지 않던데, 이것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임성한의 로망이었을까?

  

 

'일부다처'의 설정이 삶을 우습게 만들었다면, '대수대명'이라는 신개념의 등장은 죽음을 우습게 만들었다. 설설희의 부모에게 맡겨져 있던 오로라의 애견 떡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죽었다. 사람의 죽음조차 그와 다를 바 없이 처리되는 임성한 월드에서 개의 죽음이 갑작스럽다고 탓하기는 새삼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자다 깨어난 설국(임혁) 회장이 무슨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눈을 번뜩이며 "대수대명!"이라 외친다. 떡대가 설희를 대신해서 죽었으니 설희가 살아날 거라는 설국의 예언이 맞아떨어져 설설희의 암이 완치되었다는 식으로 내용이 급전개되니, 죽음을 소재로 장난치는 것도 이쯤되면 정도를 넘어섰다 싶어서 염증이 날 지경이었다. 동네 아주머니가 이름모를 병으로 다 죽어갔는데 어느 날 그 집 돼지가 이유 없이 급사를 하더니 아줌마는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설국 회장이 잔뜩 흥분해서 털어놓는 어릴 적 추억담은 웃음을 위한 보너스였다. 하필 다른 짐승도 아니고 돼지라니!

 

하긴 인간의 목숨이 개나 돼지와 그토록 쉽게 바뀔 수 있는 거라고 여긴다면, 죽음을 갖고 장난치는 습관도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목숨을 무겁게 여겨야 할 이유도, 죽음을 반드시 슬퍼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물론 동식물의 생명과 죽음도 무겁고 슬픈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에 다른 존재들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임성한 월드에서는 인간이나 짐승이나 그 존재의 무게가 엇비슷한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뜨는 것은 남주인공 황마마가 죽음으로 하차하게 될 거라고 퍼져버린 스포일러다. 작가는 과연 설설희의 캐릭터를 특별히 사랑하여, 그 아내의 전남편과 애견을 죽이면서까지 살리고 싶어하는 걸까? 구슬치기 딱지치기도 아닌데, 목숨을 목숨으로 치고 바꾸는 이 설정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그나저나 설설희가 완전 관해 판정을 받고 살아난 이 판국에 느닷없이 황마마가 죽는다면, 그는 조연에게 밀리다 못해 급기야 대신 죽음으로써 조연을 살려내야 했던 전무후무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랑해요~ 나의 마지막 사랑 그대~ 용서해요~ 영원할 수 없는 이 삶을~ 어떡해요~ 그댈 두고서 어떻게 나 홀로 떠나요~" 라는 애절한 외침의 OST '살고 싶어'는 서하준과 오창석이 함께 불렀다는데, 이제껏 설설희의 테마로 알려졌던 그 노래가 사실은 주인공 황마마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진풍경이 벌어지는 '오로라 공주'의 코미디 요지경 세상을 들여다 보며, 나는 별다른 분노나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신기하고 놀랍고 우스울 뿐이었다. 삶과 죽음이란 대체 어느 정도까지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마땅히 존중해야 할 것들을 존중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지만, 한편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와 의식에 대해서 그 한계와 범위를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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