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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 왜 시청자를 죄인 취급하는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오로라 공주

'오로라 공주' 왜 시청자를 죄인 취급하는가?

빛무리~ 2013. 11. 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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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그들은 타겟을 잘못 잡았다. 연장 반대 서명까지도 좋다. 그것은 소신에 따른 행동이니까 '오로라 공주'라는 드라마가 연장 방송되는 것이 싫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연장 반대 서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쓰레기 드라마가 자꾸 만들어지는 것은 계속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저급한 문화 양산의 책임을 대중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오로라 공주' 연장 반대 서명 관련 기사에서 가장 추천수가 높은 댓글들을 보면 "이런 쓰레기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인간들이 등신이네" 라든가 "욕하면서도 보는 아줌마들이 제일 멍청이다!" 하는 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에게 흉악한 욕설까지 퍼붓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비뚤어진 사회 현상이나 질 나쁜 문화 생산을 막아낼 수 없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고 자극적인 예를 들어서 좀 그렇지만 '성매매 금지법' 실행 후 많은 논란이 일었다. 과연 이 사회의 성매매는 근본적으로 사라졌나? 법으로 규제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법도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피켓 들고 다니며 "성매매를 하지 맙시다!" 소리치면 그 수요가 없어지려나? 단언컨대 '막장 드라마 제작 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성매매 금지법'보다는 효과가 좋을 것이다. 막장 드라마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굳이 눈에 불을 켜고 막장 드라마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TV를 틀면 나오는 드라마를 무심히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오로라 공주' 때문에 타겟이 되어 온갖 욕을 먹고 있는 시청자들은 '저급한 문화'의 소비자들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사람들일 것이다.

 

"당신들이 안 보면 된다"고 침을 튀기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껏 그대들은 오직 건전한 것만 보고 유익한 것만 들으며 살아왔는가? 남성들의 경우라면, 청소년 시절 야동에 빠져 본 적이 없는가? '막장 드라마'는 나쁜 것이지만 '야동'은 나쁜 게 아니라고 주장할 셈인가? 하지만 정답이 있는 수학 공식도 아니고, 이는 밤새워 토론해봤자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른데, 모두들 내 생각은 옳고 네 생각은 틀렸다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내 의견을 말해 본다면, 막장 드라마보다는 미성년의 걸그룹에게 지나치게 야한 옷을 입혀 무대 위에 올려 놓고, 민망할 정도의 섹시 댄스를 추게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훨씬 더 유해한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좀 과장한다면) 그런 음악 방송들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자극하여 미성년 성범죄를 조장한다고 나는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몇몇이 모여서 시청 거부 운동을 벌여봤자, 그렇다고 안 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차피 볼 사람은 계속 본다. 그리고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쪽 방면의 수요자들은 막장 드라마의 시청자들보다 훨씬 더 집요할 거라고 생각된다. 막장 드라마의 제작이 금지되면 시청자들은 무심히 채널을 돌려 다른 드라마를 보겠지만, 방송가에서 섹시 댄스가 퇴출된다면 그런 것을 즐기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달래지 못하고 또 다른 경로를 통해 비슷한 것을 찾지 않을까? 야동이나 섹시 댄스를 보면서 억눌린 욕구를 조금이나마 건전한(?) 방식으로 해소시킬 수 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렇게 따지면 막장 드라마에도 긍정적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인데,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면 학교나 직장에서의 왕따 역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괴롭힐 때 느껴지는 가학적 쾌감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내부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보고 실컷 욕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요즘 한창 김장철인데, 여성들은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근 후 노곤한 몸과 마음을 쉴 곳이 필요할 게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갓 만든 김치속을 배추에 싸서 나눠 먹으며, 함께 막장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상상해 보자. 머지 않아 여기저기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고, 극 중 인물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못된 악역을 보고 한 사람이 욕하면 두 사람이 맞장구칠 것이다. 불쌍하게 당하는 약자를 보면서 한 사람이 눈물 지으면 세 사람이 따라 울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풀고 집에 돌아온다면, 가족들도 훨씬 편하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만약 스트레스를 전혀 풀지 못한 채,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일해서 온 몸이 뻐근한 상태로 그냥 있었다면, 저도 모르게 남편이나 자식들을 향해서 풀게 되지 않겠는가? 홧김에 짜증과 잔소리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막장 드라마의 긍정적 영향을 전면 부인할 수 있겠는가? 물론 막장보다야 건전한 명품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겠으나,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힘겨운 일상 속에 스트레스는 쌓여 가는데, 스트레스 해소에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보다 톡 쏘고 자극적인 매운 맛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속성이 그러한데, 작가와 방송사와 제작진을 욕하다 못해 시청자에게 그 화살을 돌리는 것은 천만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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