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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우물 귀신 장난이 불편했던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아빠 어디 가' 우물 귀신 장난이 불편했던 이유

빛무리~ 2013. 10. 1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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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전남 화순 편에서는 밤 12시의 느닷없는 귀신 소동으로 고요한 하가마을이 시끄러웠다. 낮에는 여름 이불 빨기, 고추 따기, 고춧가루 빻아 오기, 고추장 만들기 등을 체험하며 배우고, 토란이나 수세미 등 생소한 농작물에 대해서도 배우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데, 한밤중의 우물 귀신 소동은 솔직히 어른들의 재미를 위해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너무 이용한 게 아닌가 싶어 약간 찜찜했다. 윤후와 민국이가 먼 훗날 어른이 되어 떠올리면 이 또한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일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만 7~9세 정도의 어린애들을 밤 12~01시까지 재우지도 않고 울음을 터뜨릴 만큼 겁을 주면서 장난을 치는 어른들의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예능이라서 웃음을 뽑아내자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하긴 대책없이 속아 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적잖이 웃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윤후의 순진한 매력은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영락없이 폭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 윤민수와 김성주 삼촌의 거짓말을 단 한 차례도 의심하는 기색 없이 곧이 곧대로 믿는 표정이었다. 맨 마지막에는 "장난인 줄 다 알고 있었어!" 라며 허세를 부려도 보았지만 "웃기지 마!" 라는 아빠의 한 마디에 순순히 속았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짐짓 "삼촌이 연기를 너무 잘하세요!" 라며 말을 돌리던 그 능청스러움이라니..ㅎㅎ 가장 어린 준수는 누구보다 귀신에 호기심이 많았지만 일찍 잠드는 바람에 그 재미있는(?) 구경을 놓쳤고, 지아도 대낮에 우물 귀신 이야기를 들을 때는 관심이 많은 듯 했는데 역시 잠들어 버린 듯 싶다. 나이는 민국이보다 어리지만 가장 어른스럽고 시크한 준이는 허무맹랑한 귀신 따위에 관심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아빠 성동일이 그런 장난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거부했던 건지, 불 꺼진 방에서 조용히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번 장난의 최대 희생양은 무려 초등학교 3학년의 위용을 자랑하는 맏형 민국이였다. 처음부터 홀딱 속아넘어간 윤후와 달리 민국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아빠 김성주가 우물 귀신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아, 장난치지 마!" 하며 바리케이트를 치던 민국이였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마음이 여리고 눈물과 겁이 많은 민국이로서는 어른들이 작정하고 쳐대는 장난을 끝까지 방어할 힘이 없었다. 지난 초봄이었나,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빈 집에 들어가 보물을 찾아오던 담력 체험 미션에서도 민국이는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외쳤었다. "얘들아, 미안해... 형은 더 못 가겠어... 얘들아, 힘 내!" 비록 씩씩하게 앞장서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끝까지 뒤에 버티고 서서 동생들을 응원하는 맏형의 모습도 내 눈에는 퍽이나 든든해 보였다. 굳이 자존심을 세우려고 허세나 오기를 부리지 않는 민국이의 담백함이 나는 더욱 좋았더란다.

 

 

차라리 처음부터 밖으로 나와서 아빠가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속지 않았을텐데, 귀신을 안 믿는다면서도 은근히 무서웠던 민국이는 혼자 방에 남아 있었다. 불안한 자세로 웅크린 채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던 민국이에게 별안간 "으아아아악~" 하고 들려온 아빠의 비명 소리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더니, 아빠는 보이지 않고 잔뜩 흥분한 표정의 윤후가 외쳤다. "성주 삼촌이 저기로 빠졌어!" 윤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벌써 50년이 넘었다는 이 집 마당의 깊은 우물이었다. "귀신이 막 손을 잡아당겨서 삼촌이 빠져버렸어!" 말도 안 돼, 생각했지만 조금씩 가슴이 떨려왔다. 설마 아닐거야, 하는데 윤민수 삼촌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너 지금 거짓말 같지? 아빠가 진짜 저 안으로 들어갔다니까!"

 

사실 윤후는 김성주가 우물에 빠지는 모습을 본 게 아니었다. 멀찌감치 담 모퉁이에 숨어 있었는데 그 위치는 어둑한 우물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실히 볼 수도 없는 자리였고, 겁에 질려서 자꾸만 담 뒤로 숨었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살 윤후 입장에서는 분명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며 김성주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으니, 성주 삼촌이 귀신에게 붙잡혀 우물로 끌려 들어갔다고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동생이 하는 말이지만 그 눈빛과 표정에 담긴 진심이 민국이의 마음을 흔들었고, 거기에 윤민수 삼촌의 태연한 증언이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하지만 결정타는 그 후에 찾아왔다.

 

잠든 아들 준수를 대신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종혁은 뒤켠에 숨어 있던 김성주와 작전을 짰다. 집 주인 할머니에게서 급히 빌린 소복 치마와 흰색 우비로 변장을 했지만 아무리 어린애들이라도 그런 모습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들의 계획은 '귀신의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사라져버린 김성주'에게 맞춰져 있었다. 드디어 액션~! 어설프게 분장한 이종혁이 손전등을 얼굴에 비추고 "우어어어~" 소리를 지르며 윤후와 민국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살짝 겁에 질렸던 민국이는 활짝 웃으며 "아빠!" 하고 외쳤다. 우비를 뒤집어쓴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비를 벗고 보니 아빠가 아니라 종혁 삼촌이다. 이 때 민수 삼촌이 다가와 묻는다. "종혁이 형... 성주 형 못 봤어요?" 종혁 삼촌이 어리둥절한 표젇으로 대답한다. "아니, 못 봤는데!" 어, 이건 뭔가 잘못됐다. 느낌이 이상하다.

 

 

"에이, 삼촌 연기하는 거죠?" 애써 웃으며 물어봤지만 정색한 삼촌들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민수 삼촌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어 119에 전화까지 걸려고 한다. 결국 간신히 버티던 민국이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우리 아빠... 정말 우물에 빠진 거야?" 아무리 똑똑하고 책 많이 읽고 속이 깊어서 의젓하게 동생들을 잘 돌본다 해도,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남자아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걸핏하면(?) 운다는 이유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눈물 많고 감성적인 민국이가 좋았다. 감쪽같이 사라져 몇 분이나 돌아오지 않는 아빠... 하나같이 입을 맞추어 아빠가 우물에 빠졌다고 증언하는 삼촌들과 윤후... 그 와중에 홀로 꿋꿋이 버티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민국이의 모습을 보는데 왠지 내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내가 서두에 아이들을 상대로 한 어른들의 장난이 지나쳐 보여서 불편했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나도 어렸을 때 몇 차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솔직히 내 기억 속에는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무리 "장난이었어, 속았지?" 하고 깔깔 웃는다 해도, 벌써 속는 동안에 경험했던 무시무시한 공포와 슬픔은 내 가슴 속에 흔적을 남기고 말았던 것 같다.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떤 면에서는 강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여리고 약한데, 그 장난들이 내 심성의 가장 여린 부분을 자극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민국이의 서러운 눈물을 보는 순간, 아주 오래 전의 아득한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 어느 새 나의 두 뺨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장난의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그 때의 느낌만은 생생했다. 얼마나 놀랍고 당혹스러울까? 얼마나 슬프고 무서울까? 사랑하는 아빠가 저 캄캄한 우물에 빠졌다니, 어쩌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니!

 

 

다행히 시간을 끌지 않고 김성주가 짠~하고 나타나면서 한밤의 해프닝은 종료되었다. 민국이도 금세 안정을 찾은 듯해서 맘이 놓이긴 했지만, 차후 되도록이면 이런 장난은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지켜보는 것은 당연히 즐겁지만, 어른들의 유쾌함을 위해 아이들을 잠시나마 일부러 슬픔과 공포에 빠뜨리는 건 옳지 않을 뿐더러 교육에 좋을 리도 없다. 어둠 속 공포를 견디며 보물을 찾아오게 했던 지난 번의 미션은 나름 교육적 효과가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아빠가 귀신한테 잡혀갔다고 속여서 울리는 게 어린애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준수와 지아와 윤후가 송아지와의 대화를 즐겼던 여름목장에서의 장난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행복했으니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유리알처럼 예민하고, 스펀지처럼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흡수한다. 부디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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