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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포유'가 남긴 상처와 논란, 두 가지 근본적 오류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송포유'가 남긴 상처와 논란, 두 가지 근본적 오류

빛무리~ 2013. 9. 28.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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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송포유'라는 프로그램은 왜 그토록 불편하고 싫었을까? 불과 2년 전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이 소년원을 방문했을 때는, 방송 이후 곳곳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어린 날의 실수로 인생에 지우기 힘든 오점과 상처를 남기게 된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청춘합창단이 노래로써 다독이며 위로하는 모습은 커다란 감동이었다. 아이들도 '청춘합창단'을 위해 노래 선물을 준비했는데, 얼굴이 모자이크로 가려진 채 입을 모아 'You raise me up'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참으로 맑고 깨끗했다. 그 방송에는 오직 긍정적 효과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송포유'는 도대체 어떤 점에서 달랐던 걸까?

 

최근 1~2년 동안 이 시대를 지배하는 단어는 '힐링(healing-치유)'이 되었다. '치유'라는 단어가 현실을 지배하다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저마다 '힐링!"을 외친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인데, 어쨌든 힐링이 대세로 떠오르다 보니 방송에서도 온통 힐링 타령이다. 토크쇼와 예능은 물론 드라마에도 힐링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역시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너무 지나치게 힐링에 집착하다 보니 슬슬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청춘합창단 '소년원' 편 캡처 장면]

 

용서가 인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진정한 용서는 그것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모두 평온함과 기쁨을 준다. 시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방송작가들은 너도 나도 이 공식을 이용한다. '용서 → 힐링'의 수순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공식은 더없이 단순 명확하니 전체적인 얼개를 짜내기도 쉽고 엔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스토리는 무조건 자극적이면 되고, 피해자는 무조건 용서하면 되고, 결말은 무조건 해피엔딩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용서는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한다 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탓일까?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학교의 눈물'에서도 나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학교 폭력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유시킨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골고루 섞어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상처를 지니게 된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적의가 들끓고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행동 양식이 다를 뿐이기 때문에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들이 내세운 논리였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하면서도 나는 계속 불편했다. 만약 내 자녀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는데, 치유를 받으려고 들어간 곳에서 가해 학생들과 합숙하게 되었다면 나는 걱정을 넘어 분노까지 느낄 것 같았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 양식이 다를 뿐, 내면의 상처는 동일하다는 그 논리 자체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행동 양식은 중요하지 않은가? 한 쪽은 강하고 폭력적이며, 다른 한 쪽은 자기 방어조차 못할 만큼 약하고 순응적이다. 이런 아이들을 모아서 다 섞어 놓고 일촉즉발의 순간까지 가도록 방치하는 제작진의 선택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내면의 상처가 똑같든 어떻든 간에, 행동 양식이 다르면 치료는 따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긴 '송포유' 보다야 호평을 받았지만 '학교의 눈물' 역시 같은 S방송사의 작품이니, 자극적 요소로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가해자에게도 물론 힐링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었다면 어땠을까? 학교 폭력의 피해 학생들을 모아서 노래를 가르치고, 음악의 힘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게 해 주고, 유럽에 가서 합창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면... 물론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든 프로젝트가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나는 성지고처럼 문제적 학생들만 모아 놓은 학교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피해 학생들을 모아 놓은 학교 따위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지난 날의 상처를 애써 잊으려 하며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을 느닷없이 한 자리에 불러모아 합창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가정을, 예시를 들어 본 것뿐이다. 아무리 동일한 내면의 상처가 있다 해도,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을 좀 더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송포유'의 첫번째 오류는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가해자 위주의 방송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던 학생들은 공중파 방송에 또렷이 얼굴과 이름을 내비치며,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이로써 쓰라린 2차 피해를 입게 되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두번째 오류는 학생들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철저히 방송을 위한 방송으로써 자극적 요소만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초반의 '송포유'는 학생들보다 연예인 두 사람에게 더욱 큰 포커스를 맞추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며 힘들어하는 엄정화와, 고등학교 졸업할 때 전과 9범이었다는 거짓말까지 늘어놓는 이승철의 모습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던가? 아이들이 그런 과거를 갖게 된 사연이라든가,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은 별로 방송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송포유'에 참여한 아이들은 방송이라는 거대 공룡에게 잡아먹힌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3회에서는 유럽의 합창대회에 참석하여 은상을 수상하고는 기쁨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방송되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린 시청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정말 뉘우침의 감동과 기쁨과 긍정적 변화만 남았을까?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교화를 받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이 아이들은 TV에 얼굴과 이름이 낱낱이 비춰지고 과거의 끔찍한 잘못들이 전파를 타고 온 나라에 퍼져 버렸다. 이 사실이 차후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은 원래도 차갑고 쓰라린 곳인데, 이제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더욱 더 냉혹해져 버렸다. 혹독하고 기나긴 고통 속에서 과연 이 아이들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가? 잠시 울컥했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변화된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혹자(아마도 방송 관계자들)는 말한다. 한 때 철없어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제 뉘우치고 변화된 아이들인데, 누군가 냉혹한 시선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이다. 따로 똑 떼어서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그 의도를 생각하면 참으로 교활한 궤변이다. 친구를 때려서 전치 8주의 상해를 입히고 땅에 파묻었다는 식의 리얼한 고백을 들었을 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충격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충격받은 마음은 자연스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뒤늦게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처음 고백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청자의 냉혹한 시선은 당연한 인지상정일 뿐이다. 대중의 마인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방송을 그렇게 만든 제작진이 문제였을 뿐이다. 백 번 양보해서 시청자의 냉혹한 시선이 잘못이라고 치자. 개인의 변화도 쉽지 않은데,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가 쉬울 것 같은가? 수백 수천만 명의 시청자를 향해 "당신의 생각을 바꾸시오!"라고 한 마디 외치면, 무책임한 방송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요즘 드라마 속에는 정말 끔찍한 악역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결말은 항상 피해자가 무조건 용서하고 함께 행복했다는 내용들이라, 나는 며칠 전 그것을 비판하는 내용의 드라마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억지 용서를 강요하는 식의 드라마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리뷰에 몇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이 세상의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해자 입장이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라는 내용의 댓글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용서라는 숭고한 개념에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되는구나!

 

 

정말 그런 걸까? 그래서 (강한) 가해자는 당연한 권리처럼 (약한)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용서하고, 아주 쉽게 용서받은 가해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 룰루랄라 즐겁게 살아가는 걸까? (......) 어쨌든 '송포유'는 이 시대의 화두인 '힐링'을 잘못된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상처 많은 아이들(피해자, 가해자 양측 모두)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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