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박2일' 카이스트 로봇축구, 열정과 추억을 되새기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1박2일' 카이스트 로봇축구, 열정과 추억을 되새기다

빛무리~ 2013. 9. 23. 06:59
반응형

 

 

요즘 '1박2일' 제작진이 심기일전하여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런닝맨'이 단순한 게임의 무한 반복으로 지루해져 가는 동안 '1박2일'은 매번 새로운 기획으로 흥미를 더하는 중이다. 멤버들이 각자 3명씩의 친구를 데려왔던 '친구 특집'도 나름 재미있었지만, 특히 이번 주에 방송된 '캠퍼스 24시'는 다른 예능에서 본 적 없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멤버들은 경북대(유해진, 이수근, 주원), 카이스트(엄태웅, 차태현), 전남대(김종민, 성시경)로 파견되어 자유롭게 캠퍼스 생활을 체험했다. 학교마다 특색과 분위기는 달랐지만, 젊은 대학생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활기찬 에너지는 모두 같았다.

 

2008년 방송분이었나, 문득 '1박2일' 시즌1에서 이수근, 은지원, MC몽이 느닷없이 충주대로 들어가 콘서트를 벌였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그들은 원래 계곡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충주대로 가게 된 것인데, 그 참에 군것질 값이라도 벌자면서 소규모의 게릴라 콘서트를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내 방송을 들은 학생들이 대거 몰려들며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졌고, 결국 상대 팀에 SOS를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강호동, 김C, 이승기가 달려와 합류하면서 충주대 콘서트는 성황리에 치러졌고, 아무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이와 같은 방송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 무슨 짓을 해도 잘 되던 때, 그야말로 '1박2일'의 리즈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 가슴을 아련한 추억으로 젖어들게 한 것은 충주대 콘서트의 기억이 아니라, 카이스트 학생들이 보여 준 '로봇축구' 게임이었다. 세계로봇축구연맹(FIRA)에서는 매년 FIRA Robot World Cup이란 이름으로 로봇축구대회를 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항상 세계 1~2위를 휩쓸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다. 로봇축구는 평상시 접해 볼 기회도 없고 그 단어조차 생소한 것인데, 나는 벌써 14년 전부터 카이스트에 축구하는 로봇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로봇축구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포츠에도 과학에도 문외한인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송되었던 드라마 '카이스트' 때문이었다.

 

특별히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드라마 '카이스트'는 참 재미있었다. 이제껏 젊은 날의 사랑을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학업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애타는 첫사랑과 적절히 어우러져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냈던 작품으로는 '카이스트'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송지나 작가가 그려내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일상은 리얼하고 매력적이었으며, 각각의 캐릭터는 살아 숨쉬는 듯 선명했다. 천재 또는 수재라 불리는 그들에게도 삶은 버거웠고, 답답한 연구실에만 갇혀 지내기에 청춘은 아프도록 눈부신 것이었다. 노력형 수재 이민재(이민우)와 타고난 천재 김정태(김정현)의 특별한 우정, 고독의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다가 김정태의 사랑을 받으면서 인간적 따스함을 되찾아가던 구지원(이은주),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삶의 무게를 견뎌내던 4차원 소녀 민경진(강성연)... 그들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뛴다.

 

 

극 중 이민우는 로봇축구 동아리의 회장이었다. 신입생 때부터 로봇축구에 매력을 느끼고 열정을 쏟아 온 그에게 로봇축구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도록 해주는 일이었다. 세계로봇축구대회를 배경으로 이민우와 그 친구들의 활약을 담은 에피소드 '마지막 승부'는 아주 흥미진진하고 긴박감이 넘쳤다. 일본의 강호 '쇼군'팀은 사사건건 이민우가 이끄는 '미스터(Mr)' 팀의 신경을 얄밉게 건드렸지만, 엄청난 자본의 지원을 받는 쇼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의 미스터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쇼군 로봇의 공격을 막아내던 미스터의 로봇들은 박살이 나고 승부는 허망하게 끝나나 싶었는데...

 

쇼군과 함께 결승에 진출한 것은 성균관 대학교의 '킹고'팀이었다. 킹고는 사실 미스터보다 약체였지만 대진운이 좋아서 결승에 진출했던 것이다. "'우리'의 개념을 좀 넓게 본다면, 승부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우리'가 한 팀 더 남았어!" 결승을 하루 앞두고 이민우와 그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킹고팀을 돕기로 결의한다. 천재와 수재가 머리를 맞대니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일을 내고야 말았다. 로봇의 몸체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뒤처져 있는 상태였는데, 이 괴물같은 아이들은 단 하루만에 그 모든 열세를 뒤집어 버렸던 것이다. 로봇축구 월드컵의 최종 우승은 대한민국의 킹고팀이 차지했고, 쇼군팀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 완벽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지금 '1박2일' 카메라에 비춰진 카이스트의 로봇축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14년 전에는 네모난 상자처럼 단순하게 생겼던 로봇들이 이제는 뚜렷한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제법 유연한 팔다리로 그럴싸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 그 동안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은 또 얼마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일까? 별로 애국심이 투철한 편도 아니건만, 새삼 울컥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그만 궤짝처럼 생긴 로봇들이 시장 카트처럼 굴러다니며 축구를 할 때도 신기했었는데, 팔다리의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슛과 패스를 하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이는 로봇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이 녀석들은 넘어지면 자기가 알아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대견할 수는 없다.

 

이런 녀석들을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기까지, 그들이 청춘을 바쳐 흘렸을 땀과 눈물을 왠지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새장에 갇힌 새들처럼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을 억누르며, 그 열정을 과학 기술 개발에 쏟고 있는 카이스트 젊은이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엄태웅과 차태현의 카이스트 방문은 이렇게 내 마음의 추억을 일깨웠고, 왠지 모를 그리움이 짙어지며 바람은 더욱 선선하게 불어왔다. 무심히 흘러가던 2013년의 어느 가을 밤이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