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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이지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힘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힐링캠프' 이지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힘

빛무리~ 2013. 9. 1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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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없는 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닉 부이치치 이후 '힐링캠프'에 또 한 명의 진정한 힐링 게스트가 출연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얼굴을 비롯한 전신의 55%에 3도 화상을 입고, 40여 차례의 대수술과 힘겨운 재활치료를 거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이지선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하던 2000년 당시 23세의 꽃다운 여대생이었던 그녀는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할 정도의 중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지난 13년의 세월 동안 겪어야 했던 모진 고통은 차마 담담한 표정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본인은 이미 극복해낸 후라서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생생히 묘사되는 치료 과정을 단지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려 왔다.

 

운명의 교통사고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지극히 평범하던 일상의 어느 날 갑자기 닥쳐왔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친 그녀는 오빠와 함께 경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음주운전자의 중형 차량이 신호대기 중에 멈춰 있던 남매의 차량을 힘껏 들이받았고, 중량의 차이를 견디지 못한 경차는 속절없이 중앙선을 넘어 이리저리 부딪히며 7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운전석의 오빠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벌써 여동생의 몸에는 불이 붙어 있었고, 간신히 동생을 구해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으나 의사들은 가망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울먹이며 "지선아, 잘 가!" 하고 마지막 인사까지 건넸다. 하지만 부모님이 달려와서 말을 걸 때까지 그녀는 의식이 남아 있었고,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가족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기나긴 치료가 시작되었다.

 

3도 화상을 입은 이지선씨의 피부는 검붉게 흐물흐물했고, 노란 지방 덩어리와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일 지경이었다. 피부를 대신해서 얼굴과 온 몸에 붕대를 감아 놓았지만 그래도 늘상 감염의 위험이 있어서 매일 아침마다 소독을 해야만 했다. 전신의 55%에 이르는 화상 상처를 소독하는 것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치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그녀는 지옥문 앞에 선 듯한 공포에 시달렸다. 게다가 심하게 상해버린 손가락 끝부분을 살리는 데 실패해서 결국 8마디를 절단해야 했던 순간의 막막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지선씨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래도 더 많이 잘라내지 않아서 감사하지?" 다음 순간 스스로 흠칫하며 '지금 이 말은 누가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미 그녀의 무의식은 감사와 긍정의 힘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을 어느 정도 감내한 후에는 정신적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가 끝나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텨왔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되어 버린 자신의 얼굴은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차마 거울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어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 이지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절망이었으나, 여전히 희망은 남아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 희망이란 '막연한 기대'였노라고 이지선씨는 말했다. 좌절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니다... 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 다시 빛을 만날 것이다... 라는 막연한 기대를 붙잡고 그녀는 일어섰다. 빛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자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하지만 1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육체적 치료의 과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식한 피부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수축하게 마련인데, 워낙 넓은 부위에 이식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수축에 따른 후유증도 엄청나게 찾아왔다. 목에 붙은 피부가 당겨져 척추가 휠 정도였고, 똑바로 일어설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고 걸어다녀야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금도 방학 때마다 한국에 돌아와 수술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달픔 속에서도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설령 사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해도 시간을 되돌리지는 않겠노라고 그녀는 말했다.

 

여동생의 힘겨운 치료 과정을 지켜보는 오빠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동생을 구해낸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차라리 그냥 떠나도록 놔두는 편이 옳았던 게 아닐까, 사고의 순간 함께 있었던 오빠는 수많은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하기까지, 그런 동생을 보며 오빠가 진심으로 활짝 웃게 되기까지, 참으로 길고도 힘든 시간이 필요했으나 변함없는 가족의 사랑은 희망의 원동력이었다. 통증에 시달리던 어느 날, 그녀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인생이랑 내 인생이랑 바꿔 줄 수 있어? 엄마는 안 아프니까..."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바꿀 수만 있다면 천 번 만 번이라도 바꾸고 싶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울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울던 날이었다.

 

 

사고 이후 세상에 다시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너무 차갑거나 무례하거나 혹은 동정적이었다. 그저 평범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바라보면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장애인에게는 들을 귀도 없고 인격도 없다는 듯, 사람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자기네끼리 수군대곤 했다. "저런 모양으로 어떻게 살까, 나는 못 살 것 같아!" 그 말들은 송곳처럼 이지선씨의 가슴을 찔렀다. 나는 살면 안 되는 얼굴인가? 하지만 절망하기에는 마음 속의 사랑이 너무 컸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오히려 더욱 세상에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자꾸 보아서 익숙해지면 그런 반응도 줄어들 테니까, 자신의 모습을 대중 앞에 노출시킴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줄여나가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운명의 교통사고를 통해 그녀는 진짜 행복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사고 이전에는 예쁜 외모와 좋은 직업과 멋진 남편 등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적인 것들에 집중할 때는 행복하지 않았다. 정말 소중하고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 조건이 아님을 이젠 알게 되었다. 예전 얼굴을 되찾기 위해 그 동안 얻은 것들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그녀는 말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고서야 누가 알겠는가? 그 깨달음이 잃어버린 얼굴과 세월, 그리고 이제껏 감당해 온 고통 모두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하다는 그녀의 말은 충분히 진심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지선씨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얻는 감사와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바뀌는 순간 오히려 불행으로 바뀔 수 있노라고, 그러니 스스로에게 절대적인 행복을 찾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해야 한다고, 그녀는 간곡히 말했다. 아, 그녀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희망의 메시지는 닉 부이치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닉 부이치치와 마찬가지로 이지선 역시 긴 이야기의 끝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당부로써 마무리를 했던 것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힘,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는 힘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고, 고통 속에서도 타인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자만심도 자기 연민도 환락 추구도 아닌, 자기 사랑의 진정한 방법을 깨우치는 사람이 결코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지선씨는 잊지 말아야 할 어려운 숙제 하나를 다시금 깨우쳐 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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