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주군의 태양' 소지섭의 차가운 외로움을 녹이는 공효진 본문

드라마를 보다

'주군의 태양' 소지섭의 차가운 외로움을 녹이는 공효진

빛무리~ 2013. 9. 7. 08:00
반응형

 

 

로코믹호러, 올 여름 홍자매는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를 선보였다. 로맨틱코미디와 호러가 결합하면 과연 어떤 색채의 드라마가 탄생할까, 짐작조차 하기 힘든 과감한 시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16부작 드라마 '주군의 태양'은 어느 덧 10회를 넘어섰고, 대중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운 편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스토리도 재미있다면서 이 드라마를 찬양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소지섭은 예전보다 더욱 멋있어졌고, 공블리 공효진의 연기도 언제나처럼 일품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로맨틱코미디와 호러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지도 않았고,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와 귀신들의 에피소드는 생뚱맞게 따로 노는 것만 같았다. 썩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 어떤 인물에게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

 

물론 장르 자체가 나의 취향과 동떨어진 편이기는 하다. 호러는 그렇다 치더라도 로맨틱코미디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좋아하는 장르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로코물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정말 취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아무 뜻 없는 말장난이나 몸개그 따위를 전혀 즐기지 않는 (혹은 즐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코믹 때문에 멜로가 죽는다고 느낄 때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홍자매의 작품에는 언제나 포인트가 있었고, 그 포인트는 코믹 속의 멜로가 허무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내가 홍자매 스타일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나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시청해 온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숨은 포인트 찾기. 

 

 

그런데 이번에는 좀처럼 그 포인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남들은 벌써부터 소지섭과 공효진의 러브라인에 몰입하여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며 난리들인데, 나는 그저 멀뚱멀뚱 "쟤들이 오늘은 또 무슨 생쇼를 하려나?" 이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여주인공 태공실(공효진)은 '귀신 보는 여자'라는 독특한 컨셉을 지니고 있는데, 역시 홍자매의 상상은 내 스타일과 많이 달랐다. 나 역시 영혼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은 상상이야 물론 해본 적이 있지만, 그토록 끔찍한 분장을 하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귀신들을 보게 된다든가, 벌써 몇 년째 그런 경험을 하면서도 전혀 익숙해지지 못하고 무서워서 도망다니게 된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의 상상 속에서 영혼들과의 교감이란 매우 신비하고 긍정적인 차원이었기 때문에, 태공실 캐릭터에는 좀처럼 공감이나 몰입이 되지 않았다.

 

주중원(소지섭)은 홍자매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스타일의 남주인공인데,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툭하면 여자한테 "꺼져!"를 남발하는, 겉으로만 까칠하고 속은 여린 나쁜 남자... 하지만 나는 언제나 착하고 배려심 깊은 서브남에게 더욱 끌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브남 캐릭터도 예전보다 임팩트가 많이 약했다. 곤경에 처한 태공실을 몇 차례 도와 주기는 했지만, 강우(서인국)라는 남자의 친절함이 별로 따스하게 와 닿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딘가 껍데기뿐인 느낌이랄까, 알고 보니 강우는 주중원의 아버지(김용건)가 아들 주위를 감시하라고 파견한 첩자였다. 물론 그 와중에 태공실을 진짜로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인 것 같기는 하지만, 당최 공감도 이해도 되질 않았다. 그런 강우를 좋아하는 서브녀 태이령(김유리)도 마찬가지... 얘들은 별 이유도 없이 사람을 그냥 막 좋아하는 것 같아!

 

 

태공실이 주중원을 사랑하게 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낮이든 밤이든 귀신이 달려들 때면 도망칠 곳 하나 없이 혼자 공포에 떨어야 했던 그녀인데, 주중원의 몸에 닿기만 하면 귀신이 거짓말처럼 즉각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주중원이 의도적으로 구해 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태공실의 구세주이다. 게다가 귀신을 쫓는다는 이유로 수없이 자행되는 스킨십... 손가락 끝만 가볍게 스치는 정도부터 어린애처럼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하고, 나중엔 강렬한 포옹과 키스까지 이어지는 그 신체 접촉들은 차츰 묘한 감정을 격발시키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소지섭처럼 멋진 남자라면 귀신 쫓을 일이 없더라도 한 번쯤 매달려보고 안겨보는 것이 여자들의 로망일진대,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던가!

 

하지만 초반에 태공실을 귀찮아하며 쫓으려고만 하던 주중원이 조금씩 변화되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긴 했지만, 솔직히 내 눈에는 태공실이 별로 매력적인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주중원은 잠시 까칠한 척하더니만 너무 쉽게 그녀에게 온 존재를 잠식당했다. 이미 사업도 뒷전일 만큼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 생각뿐이고, 그의 몸은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스킨십을 기다리고 있다. '주군'이라는 별명처럼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위치의 임금님같은 그 남자가 알고 보니 이렇게 쉬운 남자였다? 은근히 귀엽긴 했지만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9회와 10회에 이르자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좀처럼 잡히지 않던 이 작품의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지난 15년 동안 주중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감정... 사무친 외로움이었다. 15년 전, 주중원은 19세의 나이로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범인들은 반복적으로 주중원의 귓가에 전화기를 대고 억지로 책을 읽으라 시켰는데, 그 책은 사람이 하나 둘씩 차례로 죽어나가는 추리소설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내가 죽을 차례인가? 시시각각 목을 죄어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 긴 시간을 홀로 버텨내야 했던 주중원은 그 이후 난독증에 걸려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무릇 남자에게 첫사랑이란 얼마나 강렬한 의미인가? 하지만 주중원에게 첫사랑 차희주(한보름)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범인들과 한패가 되어 주중원을 납치했으나, 주중원이 보는 앞에서 차량 폭발 사고로 죽었던 것이다. 사랑에 배신당하고 분노할 시간조차 주중원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차희주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녀 또한 범인들에게 이용당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주중원은 그녀를 마음껏 미워할 수조차 없었다. 한편으로는 원망하고, 한편으로는 가엾어하고, 한편으로는 그리워하면서... 주중원의 지난 15년은 차희주에게 매여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런 감정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완벽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15년 전의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로 가득하다. 범인들이 요구한 것은 주중원의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100억짜리 목걸이였는데, 차희주가 죽고 공범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목걸이의 행방은 현재까지도 묘연하다. 주중원의 아버지는 당시 범인들의 요구에 따라 목걸이를 넘겨주었다고 했지만, 주중원은 아버지를 의심한다. 어쩌면 목걸이를 넘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범인들을 조종한 것은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모 주성란(김미경)과 고모부 도석철(이종원)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정한 재벌가의 이권 다툼에서 가족은 울타리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위험한 라이벌이니까...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차희주로부터 처절히 배신당한 주중원이 또 다시 어떤 친구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이런 주중원 앞에, 대책없이 순수하고 따뜻하고 솔직한 그녀가 나타났다. 귀신을 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처음엔 믿을 수 없었지만, 점차로 믿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로써 주중원은 무려 15년만에 완벽히 믿을 수 있는 친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녀 앞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자신의 모든 약점을 보여주거나 마음을 들켜도 된다. 이토록 아무런 긴장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다니... 게다가 거침없이 매달리며 스킨십을 해 오는 그녀에게서는 묘한 친근함과 설렘까지 전해져 온다. 초반에 그녀를 믿지 못할 때는 "날 위로하려고 하지 마!" 라고 매정하게 외쳤던 주중원이, 그녀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노골적으로 위로해달라 보채기 시작했다.

 

 

과거의 일을 알게 된 태공실이 주중원에게 말한다. "힘들었겠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털어놓지도 못하고 상처를 덮어 두니까 더 아프잖아요... 무서워서 아직도 글씨도 못 읽고... 나쁜 년! ..." 분명히 욕설인데 어쩌면 이토록 따스하게 들릴까? "제가 욕해 줄게요. 희주씨를 다시 만나면, 제가 꼭 해줄 거예요. 이런 나쁜 년!" 그러자 주중원은 말리지도 않고 흐뭇한 미소로 대답한다. "100억짜리 레이더, 여러모로 쓸모가 있네!" 하지만 주중원은 더 이상 방공호 역할에 만족할 수 없고, 그 마음 속에 태공실의 존재는 이미 레이더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사무치게 외로웠던 그의 마음을 비추는 태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은 정말 끝내주게 지었다. 김군 이군, 김양 박양, 이렇게 부를 때는 아무런 임팩트가 없던 호칭인데 '주군'과 '태양'이 되니까 느낌도 완전히 달라지고 깊은 의미까지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태공실을 무서운 귀신들로부터 지켜주는 주중원은 그녀의 '주군'이고, 외로움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주중원의 마음을 녹여주는 태공실은 그의 태양이다. 이제 포인트를 잡았으니 앞으로는 좀 더 재미있게 시청할 수도 있을 듯 싶다. 진짜 납치범은 누구인지, 차희주는 정말 죽었는지, 무엇 때문에 주중원에게 귀신 쫓는 능력이 생겼는지 등등, 앞으로 풀려나갈 미스테리가 조금씩 궁금해진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