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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 황마마의 변절, 끝없는 시청자 우롱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오로라 공주

'오로라 공주' 황마마의 변절, 끝없는 시청자 우롱

빛무리~ 2013. 8. 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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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군의 태양'에서 그 멋진 소지섭이 찌질남으로 변신한다면 시청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그 해맑은 이종석이 스토커로 변신하여 싫다는 이보영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녔다면 시청자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의 못난 모습, 인간적으로 봐줄 수 있는 차원이라면 용납 가능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오로라 공주'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는 아직도 오로라(전소민)와 황마마(오창석)를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가 걸려 있다. "너무 다른 두 완벽 남녀의 운명적 사랑 스토리!" 라는 표제도 아직은 유효한 모양이다. 그러나 황마마는 이미 주인공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설설희(서하준)의 등장 이후로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어 왔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었는데, 74회에서 최후의 마지노선을 넘으며 황마마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것이다.

 

이제껏 작가 임성한의 고집과 개성을 나는 인정하고 높이 평가했었다. 호러물도 아닌데 느닷없이 등장하는 귀신이라든가, 뜬금없는 유체이탈 등을 황당하게 느낀 대중들은 임성한에게 혹독한 비판을 가해 왔지만, 나는 오히려 고정된 틀을 깨뜨리는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하며 지지했던 것이다. 막장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임성한의 드라마는 재미있었고, 각종 자극적인 요소들이 때로 지나치다 싶었지만 나름 속시원한 면도 있었다. 남편이었던 손문권 PD의 사망과 더불어 갖은 루머가 떠돌며 대중들이 임성한의 사생활마저 비판할 때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 이렇게 임성한 작가에 대한 나의 호감은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로라 공주'에 이르러 나의 임성한 사랑은 끝나고 말았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대중의 비난과 잡음은 끊이지 않았는데, 특히 오로라의 오빠들로 등장했던 박영규, 손창민, 오대규의 갑작스런 하차는 배우들과 제작진을 멘붕 상태로 몰아갔고 시청자도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번에는 나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의리는 커녕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작가의 일방적인 칼 휘두르기는 도저히 편들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느닷없이 중간에 등장하여 중요 인물로 급부상한 노다지 역의 여배우 백옥담이 임성한의 조카라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작가의 편파적이고 사심 가득한 글쓰기에 환멸까지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임성한에게 실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초반부터 여주인공 오로라의 무개념 행동들은 '이게 뭐지?' 싶었고,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을 맞이하여 개념녀로 급변신한 오로라의 모습은 당혹스러웠다. 그토록 아무데서나 거침없이 나서서 남을 훈계하려던 건방진 여자아이가 느닷없이 겸손한 태도로 타인을 존중하게 되었으니, 아무리 인간이 환경에 따라 변하는 동물이라곤 하지만 너무 일관성 없는 인물 묘사였던 것이다. 이제껏 내가 임성한의 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 중 절대적 한 가지는 매력적인 여주인공이었고, 여주인공에 대한 강한 몰입은 임성한의 드라마를 보는 꿀재미 중 하나였다. 특히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장서희)과 '하늘이시여'의 자경(윤정희)에 대한 몰입도는 정말 대단했다. 가녀린 그녀들의 단단함을 더 이상 매혹적일 수 없도록 그려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임성한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오로라는 처음부터 아니었다.

 

 

여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없으니 별다른 재미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일종의 관성이었을까? 여전히 자극적 요소들은 넘쳐났고, 때로는 욕하면서 때로는 속시원해 하면서 나는 계속 '오로라 공주'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한심한 시스터보이에 지나지 않는 황마마의 무매력은 기막힐 지경이었지만, 혀를 차면서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강력한 서브 남주가 등장했다. 세상에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은 없다는데, 설설희 이 남자는 완벽해도 너무 완벽하다. 사람 하나만 완벽하기도 힘든데 인품 훌륭하신 부모님과 넘쳐나는 돈까지, 이 남자는 주변 환경마저 최상급이다.

 

당최 어쩌자는 것일까? 남주인공이 바뀐 것일까? 지금껏 드라마의 제작 여건상 (갑작스런 배우의 사고 등) 불가피하게 주인공이 바뀐 적은 있었지만, 원래의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하차한 후에 (죽거나 유학을 가는 등) 다른 사람이 등장했었다. 그런데 원래의 주인공을 한없이 찌질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인물이 급부상하는 경우는 생전 처음이다. 인간성이나 매력도 설설희 쪽이 월등하지만 집안 환경 역시 설설희의 완벽 승리다. 너그럽고 유쾌한 시부모님과 극성맞은 세 명의 노처녀 시누이를 어찌 비교할 수나 있을까? 이제 설설희는 오로라에게 숨겨왔던 자신의 사랑과 부잣집 아들이라는 정체를 고백했고, 잠시 놀란 듯 배신감 느끼는 듯 코스프레하던 오로라는 금세 홀랑 넘어가 설설희 쪽으로 마음을 굳힌 참이다.

 

 

이대로 나간다면 초반의 설정은 완전히 붕괴되는데, 정말 그럴 셈인가? 설설희가 죽음으로써 하차하게 될 거라는 스포일러가 이 시점에서 나도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 한 대세를 바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설설희가 세상 어디에도 없을 듯한 완벽남이라는 사실도 왠지 그의 죽음을 예감하게 한다. 아마도 설설희라는 왕자님을 만나 분홍빛 미래를 꿈꾸던 오로라는 그의 죽음으로 다시 한 번 상처받고 황마마에게 돌아갈 듯 싶은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주인공은 이미 돌아갈 곳을 잃었다. 망가져도 너무 심하게 망가진 남주인공 황마마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청자는 거의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72회와 74회에서 황마마는 돌이킬 수 없는 세 마디의 대사를 읊었다. 첫번째는 "일단 결혼만 하면... 로라는 현명하니까!" 였고, 두번째는 "누굴 넘봐? 분수도 모르고!" 였으며, 세번째는 "맞짱 뜨자는 식으로 나와요!" 였다. 황마마의 세 누나(김보연, 박해미, 김혜은)가 집으로 쳐들어와 늙은 어머니를 겁박하던 날부터 오로라는 황마마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여자의 마음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인데,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이다. 결국 남동생의 고집에 항복하고 만 누나들이 묻는다. "로라, 우리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만큼 너 잡고 살 자신 있어?" 그러자 황마마는 자신있게 "그럼!"하고 대답하더니, 잠시 후 혼잣말을 한다. "일단 결혼만 하면... 로라는 현명하니까!"

 

 

이보다 더 무책임한 태도가 어디 있을까? 황마마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오로라와 누나들에게 양쪽으로 거짓말을 남발한다. 로라에게는 "누나들은 걱정마라. 절대로 나 못 이긴다. 내가 알아서 한다!" 해 놓고 누나들에게는 "데려다가 누나들 앞에 바짝 엎드려 살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식이다. 세상에 이런 남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다 보고 나서 용서해 줄 여자는 없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황마마는 벌써 최악의 밉상으로 찍혔다는 말이다. 그런데 임성한의 남주인공 죽이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설설희를 상대하는 황마마의 태도는 정말 가엾을 정도로 찌질함의 극치였던 것이다.

 

싫다는데도 우격다짐으로 따라붙는 황마마가 지겨워진 오로라는 설설희에게 대신 상대해 달라고 부탁한다. 괜히 끼어든 게 아니라 분명히 그녀의 요청을 받고 나왔기 때문에 설설희는 당당하다. 로라의 매니저를 그만두라는 황마마의 주제넘는 명령을 설설희가 거부하자, 황마마는 나오는 대로 내뱉는다. "누굴 넘봐? 분수도 모르고!" 분수라니, 여기가 신분제 사회인가? 로라의 어머니는 늙은 데다가 부모의 입장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부모 눈에는 항상 자기 자식이 최고니까, 세상 그 어떤 놈을 데려다 놓아도 부모 눈에는 자기 자식보다 못해 보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황마마의 '분수' 발언은 완전히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주먹을 휘두른 것은 황마마였다. 설설희는 단지 눈부신 동작으로 피하거나 막았을 뿐, 손도 올리지 않았다.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고 혼자 분을 삭이지 못해 식식거리는 황마마에게 설설희는 조용히 말했다. "저 운동했습니다. 사람 보면 급소만 보이고요" 함부로 폭력을 쓰지 말라는 점잖은 경고였다. 더 이상 할 말도, 할 수 있는 행동도 없어진 황마마는 "놀고들 있네!" 한 마디 던져 놓고 돌아서는데 그 모습은 차마 보기에도 민망했다. 그런데 다음 날 로라의 집을 찾아간 황마마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로라의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한다. 누나들은 아직도 로라를 구박할 생각만 하고 있는데 누나들 마음을 돌려놨으니 안심하시라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대놓고 거짓말로 연적 설설희를 헐뜯는 황마마의 태도는 참으로 비열했다.

 

 

"로라한테 마음 있대요. 어딜 감히... 어제는 저한테 인간성도 드러냈어요. 운동했다고 하면서 맞짱 뜨자는 식으로 나와요!" 주먹은 자기가 휘둘러 놓고 오히려 설설희가 종주먹을 댄 것처럼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노모는 하루종일 그런 깡패같은 놈과 함께 다녀야 하는 딸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 비열한 인간은 애꿎은 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놓고도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욕심만 채울 수 있으면 되기에, 누나들에게도 로라에게도 로라의 어머니에게도 아무 죄의식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남주인공이 이렇게까지 변절하다니, 이건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며 우롱이다. 손댈 수 없이 망가진 이 남자를 내세워 임성한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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