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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대화한 사나이, 루터 버뱅크 이야기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꽃과 대화한 사나이, 루터 버뱅크 이야기

빛무리~ 2013. 2. 1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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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버려진 넝쿨장미를 주웠다. 말라 비틀어진 줄기를 조심스레 옮겨 심고 말을 걸었다. '가엾은 것... 얼마나 아프니?'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조금씩 살아난 장미가... 어느날 환하게 웃었다." - 루터 버뱅크

 

"식물을 독특하게 길러내고자 할 때면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식물에게 말을 건넨다. 식물에게는 20가지가 넘는 지각능력이 있는데 인간의 그것과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 루터 버뱅크

 

'식물의 아버지'라는 칭호로 불리는 미국의 식물학자 겸 원예개량가 루터 버뱅크( Luther Burbank )는 1849년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몹시 가난했던 탓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래서 유전 원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멘델의 법칙조차 모르고 있었죠. 하지만 어릴 적부터 식물 키우기를 좋아했으며 날카로운 관찰력과 직관력을 가졌던 그는, 식물이 교배되면 새로운 품종이 생기고 우수한 씨앗을 따로 관리하면 우수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식물연구에 착수한 것은 21세 무렵. 찰스 다윈의 저서 '사육동식물의 변이'를 접한 후부터였습니다.

 

1926년 77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버뱅크는 100여종의 과실수와 20여종의 장미, 30여종이 넘는 채소와 곡물, 100여종의 관상용 꽃과 묘목을 개발해 선보였습니다. 가시 없는 선인장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관상용 식물 '샤스타 데이지'는 가장 유명한 품종이며, 햄버거와 곁들여 먹는 길쭉한 감자튀김의 재료인 '러셋 버뱅크 감자'도 그의 작품이죠. 1871년 이 감자를 개발한 버뱅크는 "배고픈 사람이 줄게 되어 다행" 이라며 아무런 대가 없이 종자를 보급했습니다. 알이 굵고 길이가 길며 저온에도 강한 러셋 버뱅크종은 지금도 전세계 감자 생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네요.

 

버뱅크가 문을 연 원예산업의 규모는 2003년 기준으로 미국에서만 220억달러에 이르며, 1940년대 웹스터 사전에는 '식물을 개량하다'라는 뜻으로 ‘bur-bank’라는 동사가 등재되어 있기도 했었답니다. 이처럼 위대한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는 '일주일 안에 식물과 대화하는 법' 이라는 저서에서, 식물의 이름을 지어주고 이미지 훈련을 통해 식물과 일체화를 시도하며, 애정을 듬뿍 담아 반복적으로 칭찬하면 반드시 반응이 있다고 주장했죠. 식물도 사랑과 고독, 슬픔과 욕망, 관계와 죽음을 분명히 의식하며, 특정인과 유대관계를 깊이 맺게 되면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식물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시 없는 선인장을 개발할 때, 루터 버뱅크는 일체의 유전자 재조합을 하지 않았고 새로운 화학비료의 개발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매일 정성껏 물을 줄 때마다 "나는 절대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다른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키울 필요가 없단다" 라고 다정히 말을 건네는 것뿐이었죠. 그러자 아무 특색도 없던 가시투성이의 평범한 선인장은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사이엔가 가시 없는 새로운 품종의 선인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식물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몇 가지 일화를 더 소개해 볼까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어느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너무 커서 도끼로도 베기 어려울 때 모두 그 나무 곁으로 모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는 일제히 나무를 올려다보며 힘껏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소리를 지르면 신기하게도 나무는 기력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죠. 고함소리가 나무의 영혼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식물도 바흐의 아름다운 오르간 음악을 좋아하고, 자동차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때로는 자살충동까지 느낀다는 숲생태학자 차윤정 박사의 주장에 더욱 신빙성이 느껴집니다.

 

또 이것은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외딴집에 살던 한 여성이 괴한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목격자라곤 방에 있던 선인장뿐이었죠. 범인에 대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고심하던 경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방 안의 선인장에 연결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다른 사람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던 거짓말 탐지기가, 한 사람의 유력한 용의자가 들어왔을 때는 격한 바늘의 움직임으로 요동쳤던 것입니다. 몇 번이나 반복 실시해도 매번 그 용의자만 들어오면 똑같은 반응이 나오니, 수사관은 끈질긴 추궁 끝에 자백을 받아내 살인범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식물학자는 무려 선인장 1만 개를 두 그룹으로 나눠 잔인한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쪽에는 사랑스럽고 좋은 말을, 다른 한 쪽에는 욕과 협박조의 나쁜 말을 1년 동안이나 계속한 거죠. 그 결과 긍정적인 말을 들은 쪽은 싱싱하게 자라서 꽃을 피운 반면, 비방과 욕설을 들은 쪽은 꽃도 피우지 못한 채 거의 시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평생 식물을 사랑했던 루터 버뱅크라면 이런 실험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무 통역사’로 불리는 미국의 식물심리학자 레슬리 카바가는 자신의 책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목소리'에서 나무들의 목소리야말로 그 어떤 수행자의 말보다 지혜롭고, 어떤 시보다 향기로우며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루터 버뱅크의 집 주변에는 늘상 여러가지 종류의 식물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는데, 그들과 버뱅크 사이에는 얼마나 무수히 향기로운 대화가 오갔던 걸까요? 1926년 4월, 버뱅크가 세상을 떠나자 푸르디 푸르던 자택 주변의 식물들은 삽시간에 70% 정도가 일제히 시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신비로운 버뱅크의 일생을 되짚어 볼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하루 동안, 내 주위의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얼마나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던가...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워집니다. 누군가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식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데, 나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흘려듣고 있었으니까요. 바쁜 일상 속에, 자기 안에 갇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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