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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잠 - 삶의 병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프랑시스 잠 - 삶의 병

빛무리~ 2013. 2. 1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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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로리니라는 시인은 삶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지독한 병이라서 그 병을 앓는 사람은
사람을 보나 짐승을 보나 물건을 보나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음을 좀먹는 일종의 불안증이었다.
시인은 푸른 나무와 보리밭, 흐르는 물을 보기 위해
그가 살던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갔다.

그러나 샘물이 속삭이듯 지저귀는 메추라기의 노래,
베틀 소리, 바람에 윙윙거리는 전선 소리, 이 모든 것이 시인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더없이 감미로운 생각도 그에게는 쓰디쓴 것이었다.
이 고통스런 병에서 벗어나려고 예쁜 꽃을 꺾고 나서
그는 또 그 꽃을 꺾은 것을 슬퍼했다.

배꽃 향기가 은은한 어느 포근한 저녁,
시인은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흔히 책에 나오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다.
면사무소 앞에 광장이 있고 성당이 있으며
묘지, 정원, 대장간, 그리고 희뿌연 연기가 나며 유리컵이 반짝이는 여인숙이 있었다.
개암나무 밑을 흐르는 개울도 있었다.

병든 시인은 서글프게 돌 위에 앉았다.
그 동안 견디어 온 고통, 아들이 떠난 것을 슬퍼하고 있을 어머니,
그리고 자기를 배신한 수많은 여인들을 생각하며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 마음, 이 슬픈 마음은 변할 수가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거위를 몰고 오는 시골 처녀가 보였다.
처녀는 시인에게 말을 건넸다.

"왜 울고 있어요?"

"내 영혼이 이 지상에 떨어지면서 상처를 입었소.
 그런데 병이 낫지를 않는구려.
 마음이 천근같이 무거울 뿐이오..."

"내 마음을 드릴까요?
 내 마음은 가벼워요.
 난 당신 마음을 가질게요. 쉽게 걸머질 수 있을 거예요.
 나는 항상 무거운 짐을 지는 데 익숙해 있으니까요."


시인은 자기 마음을 처녀에게 주고
대신 처녀의 마음을 가졌다.
그러자 곧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다.
거위들은 마치 조각달처럼 두 사람 앞을 둥실둥실 걸어갔다.


처녀는 시인에게 말했다.

"당신이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나로서는 당신이 아는 것들을 알 수 없다는 것도 알고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아요.

당신은 타고장 사람이예요.
내가 언젠가 마차 위에서 보았던 것 같은 예쁜 요람에서 당신은 태어났을 거예요.
그건 부자들이 쓰는 것이지요.
당신 어머니도 똑똑하게 말씀을 잘 하실 거예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이제껏 하얀 얼굴을 한 여자들과 사랑을 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내가 못생기고 새까맣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나는 예쁜 요람에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나는 사람들이 보리밭에서 타작하는 동안 들판에서 태어났어요.
남들이 그러는데 어머니와 나, 그리고 같은 날 태어난 새끼 양이
함께 당나귀에 실려 집으로 왔대요.
부자들은 말을 가지고 있지만 갓 태어난 나에겐 당나귀뿐이었지요."

 

시인은 처녀에게 말했다.

"난 당신이 순박하다는 걸 알고 있소.
또한 내가 당신처럼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소.
그러나 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소.

당신은 이 고장 사람이오.
예전에 내가 그림에서 본 풍경처럼
당신의 어머니는 풀밭 위에서 바구니 속에 당신을 눕히고 달랬을 거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손수 베를 짰을 거요.
당신은 늠름하고 쾌활한 젊은이들과 나무 밑에서 춤을 추었을 거요.
그래서 당신은 나를 병들고 서글픈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요?

난 타작할 때 들판에서 태어나지 않았소.
나와 쌍둥이 여동생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방에서 태어났소.
그러나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고 어머니는 병에 걸렸소.
가난한 사람들은 건강하지만 말이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처녀는 시인에게 말했다.
"난 당신의 마음을 가졌어요."

시인은 처녀에게 말했다.
"난 당신의 마음을 가졌소."


그들은 결혼을 했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스스로 삶의 병이 나은 것을 느낀 시인은 아내에게 말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계시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죄어드는 것 같소.
여보, 내가 행복하다는 것,
아들까지 낳았다는 것을 어머님께 알려드리기 위해
도시에 갔다 오게 해 주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방긋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다녀오세요."
 

시인은 자기가 온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얼마 후 도시 입구에 있는 훌륭한 저택 앞에 다다랐다.
웃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난한 이는 초대받지 못하는 부자들만의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시인은 그곳이 자신의 옛 친구 중 하나인
유명한 부자 예술가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추억에 잠겨 정원 철책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분수가 있고 동상이 보이는 정원이었다.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그의 젊은 마음을 괴롭히던
그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생각나세요? 그 위대한 시인 로랑 로리니!
듣자 하니 형편없는 결혼을 했대요.
시골뜨기를 맞아들였대요... 깔깔"

시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다시 도시의 길을 따라 고향집까지 걸어갔다.
그의 지친 발 밑에서 포장도로가 뚜벅뚜벅 소리를 냈다.


시인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정하고 충실한 예전의 개가 절름거리며 그에게 달려와
기쁘게 짖으며 그의 손을 핥았다.
그가 떠난 후 가엾은 이 짐승이 신경마비에 걸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슬픔과 세월은 짐승의 몸도 침식하게 마련인 것이다.

로랑 로리니는 계단을 올라갔다.
난간 옆에서 졸고 있던 늙은 고양이가 그를 보고는
둥글게 등을 쳐들고 꼬리를 세우며 그에게 몸을 비벼댔다.
층계참 위에서 낯익은 벽시계가 울려왔다.

시인은 살며시 자기 방에 들어섰다.
거기에 그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느님, 제 아들이 살아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 그 아이는 무척이나 괴로워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 그 아이를 태어나게 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토록 저를 홀로 애태우며 죽어가게 하는 그 아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벌써 어머니 옆에 무릎을 꿇은 아들은
반백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머리에 입술을 대며 이렇게 말했다.

"저와 함께 가십시다. 어머니,
저는 병이 나았습니다.
저는 나무가 있고 보리밭이 있고 개울물이 흐르는 곳,
메추라기가 지저귀고 베틀 소리가 들리는 시골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제 마음을 차지한 가난한 시골 여인이 있고
어머니의 손자가 뛰놀고 있답니다."

 

--------------

 

이것은 제가 수년 전에 읽고 너무 좋아서 타이핑해 두었던 프랑시스 잠 (Francis Jammes)의 짧은 소설 '삶의 병' 전편입니다. 그 후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보곤 하지요... ^^ 2월달부터는 어떻게든 1일 1포스팅의 결심을 지키려고 하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이 글로 대신합니다. 독자님들과 이웃님들, 2013년 설날을 모두 행복하게 지내셨나요? 혹시 힘드셨더라도 이 깊은 밤, 마무리는 행복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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