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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드라마 리뷰 /마의

'마의' 숙휘공주, 애달픈 외사랑의 무력감

빛무리~ 2013.02.05 11:20

 

 

초반의 기대는 제법 컸으나 갈수록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혹자는 '마의'의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 못하고 어정쩡한 20%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는 이유가 이병훈 감독 특유의 클리세[사전적 의미는 Cliché(불) : 판에 박힌 듯한 문구, 진부한 표현(생각, 행동)이다. 클리세라는 단어는 드라마에서 늘 같은 이야기 또는 같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사용된다.]에 시청자들도 이제는 지쳤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산'의 정조는 예외)이 스스로의 놀라운 능력과 용기와 성실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입지전적인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마의'는 벌써 수많은 전작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 끌리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든요. 한 마디로 '사랑의 애틋함'이 전달되질 않습니다. 남녀 주인공인 백광현(조승우)과 강지녕(이요원)의 러브라인은 특히 밍숭밍숭하게 느껴지는군요. 솔직히 이 두 사람은 연인보다 의좋은 동료처럼 느껴질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만남과 헤어짐도 그 설정상으로는 꽤나 극적이었지만 두 어린아이의 감정이 왜 그토록 깊어졌는지는 공감할 수 없었어요. 그러니 어른으로 성장한 이후까지도 잊지 못하며 애태우는 모습을 보면 "왜 저러지?" 싶었고, 다시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질 때도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며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인물 감정을 극대화시키려면 두 사람의 관계를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잔잔하게 암시하는 듯이 진행시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한석규)과 소이(신세경)의 관계처럼 말이죠. 반드시 주연급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연륜 초월한 우정을 나누던 개파이(김성현)와 연두(정다빈)의 모습도 퍽이나 인상적이었죠. 가공할 무술 실력을 지녔으나 벙어리처럼 말이 없던 거친 사내 개파이와 그 곁에 있으면 한 마리 병아리처럼 보이던 작은 소녀 연두... 둘은 걸핏하면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서 함께 놀았습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연두가 개파이에게 조잘거리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그런 몇 장면이 있었을 뿐인데, 시청자들은 모두 알 수 있었죠. 누군가가 조그만 연두를 해치려고 하면 개파이의 무쇠같은 손에 뼈도 못 추릴 거라는 사실을요.

 

김영현 작가의 사극은 고증 면에서 철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녀의 탁월한 인물 감정 묘사에 매료되어 버린 저는 항상 김영현의 작품이 방송될 때면 최우선 순위에 두고 시청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김이영 작가의 사극을 보면 인물들의 감정이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입니다. 깊고 은은한 느낌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설상가상 '동이' 때부터는 코믹적인 요소를 많이 첨가하다 보니 인물의 감정은 더욱 더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그저 마주치면 농담따먹기 같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좋아하게 되어 버리는 그런 식이죠. 더구나 '마의'의 백광현은 일종의 카사노바(?)처럼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공주든 의녀든 과수댁이든 가리지 않고 홈빡 취하게 하는 옴므파탈 백광현의 마력... 하지만 제 느낌에는 별로 멋있지 않고, 그저 어렸을 때 심심풀이로 보던 만화처럼 유치하더군요.

 

항생제도 없던 그 시절에 서슴없이 머리에 구멍을 뚫거나 다리를 자르는 등 심각한 수준의 외과수술을 척척 해내고, 아무리 끓인 물로 소독을 했다지만 그 중환자들은 감염 증상도 없이 며칠만에 벌떡 일어나 신나게 돌아다니고... 점점 더 만화같은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어느 사이엔가 흥미를 잃고 있었는데, 그래도 36회에서는 모처럼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있었기에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려 합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백광현을 향한 숙휘공주(김소은)의 외사랑도 별로 공감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서은서(조보아)의 경우는 백광현의 의술 덕분에 중병(유옹)에 걸린 자신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과부라는 이유로 은연중에 자결을 종용받고 있던 처지에서 '살고 싶어하는 욕망'은 결코 잘못이 아님을 일깨워 준 백광현의 따스한 위로에 정신적으로도 구원을 받았으니까 그만하면 당위성이 보장된 셈이지만요. 숙휘공주는 단지 애완 고양이의 병을 고쳐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백광현에게 첫눈에 반하고, 앳된 처녀 시절부터 시집갔다가 과부가 되어 돌아온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을 일편단심 백광현만 그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좀처럼 납득되지 않았죠.

 

그러나 이제까지의 스토리와는 관계 없이 36회에서 보여준 숙휘공주의 사랑은 매력적이었습니다. 그토록 백광현을 잊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고 할 때도 살아있을 것을 굳게 믿으며 기다려 왔건만, 정작 그가 살아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공주의 마음속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허탈한 무력감이 더 크게 밀려왔던 것입니다.

 

 

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만날 때도 어렵고 헤어질 때도 어렵다. 봄바람마저 힘이 없으니 꽃마저 시든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제목 없는 애정시입니다. 봄바람은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요 원천인데, 그것이 힘을 잃는다면 주변의 모든 것도 쇠잔해지고 희망은 사라진다는 내용이죠. 연인을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는 사랑의 무력감을 노래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가 사랑하던 사람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신분의 여인이 아니었겠냐고 후세의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꽃마저 시든다'(百花殘)라는 대목에서 마지막 글자인 '잔(殘)'은 '잔인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군요. 이루지 못한 채 쓸쓸히 시들어가는 사랑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저 짧은 시구(詩句)에서 화자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이와 같은 명시(名詩)의 힘을 빌어, 작가의 취약점이었던 인물 감정 묘사는 모처럼 극대화되었습니다. 그리워하던 백광현이 돌아와도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둘 수 없다는 현실을 아프게 깨달은 숙휘공주는 오랜 외사랑을 접기로 결심했군요.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당시(唐詩)를 쓸쓸히 읊으며 자신의 마음을 상궁에게 털어놓습니다. "내 나이 열 둘이었나, 열 셋이었나. 그 때는 이 시구의 뜻이 뭔지도 모르고 마냥 좋았더랬지. 이룰 수 없는 연모의 마음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고... 헌데 이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래, 그토록 기다리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지. 그 바람에 피어난 꽃은 내가 아니야..."

 

다음 회의 예고편에서 숙휘공주는 강지녕을 만나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 난 백의생을 정인이 아니라 벗으로 여기기로 했다!" 극 중에서는 그 절실한 사랑의 이유가 공감되게 그려지지 못했지만, 청춘을 다 바쳐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인데 기꺼이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축복하며 쿨하게 물러날 줄 아는 숙휘공주는 참으로 멋진 여자입니다. 어쩌면 구중궁궐(九重宮闕)에 갇혀 평생토록 사람냄새도 제대로 맡지 못하던 공주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백광현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동경의 대상이었겠지요. 그 동안 숙휘공주는 캐릭터 자체가 코믹해서인지 그녀의 사랑조차 가볍게 그려지는 부분이 참 많았는데, 모처럼 그녀의 깊은 마음과 사랑의 아픔이 제대로 전달된 명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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