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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고두심이 가르쳐 준 앙상블의 미학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힐링캠프' 고두심이 가르쳐 준 앙상블의 미학

빛무리~ 2012. 7. 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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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라디오드라마로 제작된 '저 눈밭에 사슴이'는 현재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데뷔작이었습니다. 그 무렵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청순한 매력을 발산하며 제주여고에 재학중이던 한 명의 섬소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꼭 배우가 되고 말겠다" 는 야무진 결심을 굳히게 되지요. 그 소녀는 훗날 여배우가 되어 연기대상 트로피를 5회나 차지하며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우고, 방송 3사의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하는 한국 최초의 연기자가 됩니다. 바로 최근 2주 동안 '힐링캠프'의 주인공이었던 고두심의 이야기예요.

 

속속들이 따지고 보면 누구의 삶이건 특별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마는, 고두심의 인생은 더욱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듯 느껴졌습니다. 머나먼 남단의 섬 제주도에 살던 가난한 소녀가, 아직은 드라마가 뭔지 배우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막연히 혼자 배우의 꿈을 키우던 한 소녀가, 누군가의 큰 도움이나 후원을 받았던 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비빌 언덕'도 없었는데..;;) 몇 차례의 묘한 인연을 거쳐 꿈을 이루게 되고, 지금의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거짓말 같고 꿈만 같은 이야기였으니까요.

 

 

연기 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내미는 유혹의 손길도 모두 뿌리쳤다는 것...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의욕도 없어지고 몸까지 아프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촬영장에 가려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집안 일을 모두 잊게 되어,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 아들의 존재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 들어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다시 떠올리고 화들짝 놀라곤 했다는 것... 이 모든 이야기들은 그녀가 어쩔 수 없는 천생 배우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사춘기 시절에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것부터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작용이었던 거죠.

 

누구나 경험할 법한 흔한 일들도 아니고 평범한 인생도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고두심의 이야기는 모두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제 마음에 깊이 와닿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아, 저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운 기분으로 듣고 있었을 뿐이죠. 물론 꿈을 이루기까지,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노력과 고통들이 어찌 없었을까마는, 고두심은 시종일관 유쾌한 어조로 추억을 이어가며 아픔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인생 최대의 아픔이었던 이혼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도 담담한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어요. 어쩌면 곧 태어나게 될 쌍둥이 외손자를 기다리며 지내는 현재의 평화로운 나날이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고두심의 특별한 인생 이야기 속에도 제 가슴을 파고드는 부분은 어김없이 존재했습니다. MC 한혜진이 말하길 "선배님과 함께 작품을 찍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소품 담당 스태프들과 너무나 격의없이 친하게 지내시는 모습이었다"고 말하자, 고두심이 대답했습니다. "사실 뒤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주는 그 사람들이 고생은 제일 많이 하잖아요. 저는 소외된 사람들이 눈에 보여요. 그리고 눈에 보인다는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부분에서 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두심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연기는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앙상블이잖아... 자기만 보여지는 연기를 하면 안 돼요. 묻히면서도 단단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연기라고...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지금까지 연기를 해 왔어요!" 이제껏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특별히 고두심의 표현이 제 마음에 와닿은 것은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연기는 앙상블이다... 자기만 보여지게 하는 것은 연기가 아니다... 묻히면서도 단단하게... 그 모든 말들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저는 이제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에 함께하는 동료 후배들은 물론이거니와 스태프들 한 명 한 명까지 세심히 챙긴다는 유명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몇 번 들었지요. 그런 배려심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개그맨 유재석이 아닐까 싶지만, 그 외에도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얼마 전 '고쇼'에 출연했던 탤런트 김응수도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수십 명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운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의미를 단순한 '배려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밑바탕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해주는 착한 마음씨 정도로만 여겼던 거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배려심의 차원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작품'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저는 고두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연기는 앙상블이다!" 라는 한 마디는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요?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연기자와 감독과 스태프 등 모든 관계자의 호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그토록 호흡이 잘 맞기 위해서는 평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잘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데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을 섬세하게 챙기는 것은, 자기가 출연한 작품을 더 훌륭하게 만들려는 배우로서의 욕심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욕심'은 굉장히 좋은 뜻입니다..^^)

 

 

고두심은 작품을 선택할 때, 시놉시스나 대본보다도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시한다고 말했습니다. "나한테 함께 일하자고 손 내미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내가 이 사람과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설령 시놉시스가 좀 아니다 싶어도 OK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군요. 언뜻 생각하면 작품 선택에 있어 좋은 방법이 아닌 것도 같고 실패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막상 그녀가 이룩한 눈부신 업적을 생각하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드라마 자체가 허접스러우면, 시청률은 물론 연말 시상식에서도 절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작품 선택부터 촬영장에서의 모든 처신까지 '사람'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임한 고두심은, 어떤 연기자도 달성하지 못했던 5회의 연기대상과 방송 3사의 그랜드 슬램을 거머쥐는데 성공했습니다. '앙상블'의 미학을 활용한 결과,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은 점점 더 퀄리티가 높아지게 되고, 좋은 작품 속에서 그녀의 연기도 더욱 더 빛이 나게 된 모양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연기는 앙상블"이라는 그녀의 신념이 옳았음을 증명해 줍니다.

 

 

단지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해피투게더' 녹화장에 몰래 잠입한 여배우 하지원이 카메라를 들고 스태프들 사이에 서 있었는데, MC 유재석이 대뜸 "거기 누구세요? 우리 카메라맨 동생들 중엔 저런 사람이 없는데..." 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새삼스레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따지고 보면 예능 프로그램 역시 '앙상블'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도 물론 진심이겠지만, 국민MC 유재석이 현재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앙상블'의 미학을 100% 활용하여 출연 작품의 퀄리티를 높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BMK가 '그대 내게 다시'를 부르고 내려왔을 때, 그녀는 넘치는 희열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반주를 담당하는 세션들과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노래하는 도중에 가슴이 벅차도록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는 거였습니다. 고두심의 '앙상블' 발언을 듣는 순간, 무대에서 내려와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를 연발하던 BMK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그녀가 기뻐한 이유는 "내가 노래를 잘한 것 같아서"가 아니라 "반주자들과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였거든요. 드라마와 예능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다소 약하긴 하지만, 가수의 노래에도 '앙상블'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두심이 가르쳐 준 '앙상블'의 미학은 참으로 신선하고 감동적인 깨달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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