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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장신영, 악녀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적자

'추적자' 장신영, 악녀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빛무리~ 2012. 5. 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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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환호성을 지를 수 없는 이유는 근래 들어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가도 어처구니 없을 만큼 약한 뒷심으로 실망을 안겨준 드라마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회 수준의 완성도를 끝까지 유지할 수만 있다면 '추적자'는 대박 중에서도 대박 드라마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시청률을 석권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작품성 면에서도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의 진정한 수작(秀作)이 될 거예요. 물론 초반의 기세를 마지막회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입니다.

 

탄탄한 연기력이 검증된 출연진은 불안한 와중에도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입니다. 일단 그 이름만으로도 굵직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두 남성배우, 손현주와 김상중이 양쪽에서 튼실한 기둥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선과 악,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대변하며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군요. 연기가 되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 그에 상대하는 악역이라도 꽃미남 톱스타를 내세워 인기를 끌어 보려는 경우가 많던데, 양쪽에 모두 연기파 중년배우를 기용한 것은 그만큼 자신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네요. 굳이 톱스타의 힘을 빌려 반짝 인기를 추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용이 알차기 때문에, 그보다는 작품성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라고 말입니다.

 

1회에서부터 폭풍 전개가 이루어지며 섬뜩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끼쳤던 부분은 2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던 강동윤(김상중)과 그 장인 서회장(박근형)의 대치 장면이었습니다. 지지율 61%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강동윤이지만, 노회한 장인과 맞서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했지요. 전화 한 통화로 총리를 호출하고, 싸인 하나로 수천억 투자를 결정하는 재벌 총수 서회장의 캐릭터는 '자본주의의 매혹적 괴물'이라고 할만합니다. 그 모든 힘과 인맥은 바로 돈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던 강동윤의 야망은 상대할 수 없는 막강 권력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가 싶었습니다. 만약 아내 서지수(김성령)가 때맞춰 사고를 쳐 주지 않았다면, 강동윤은 모든 것을 잃은 채 이혼당하고 외국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여배우 김성령의 이미지와 연기력 또한 서지수 역할이 꼭 들어맞습니다. 그녀는 재벌 총수의 딸로서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방탕하고 허술하며 나름 순진한 면도 있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지라 강동윤 같은 인물에게는 무척 다루기 쉬운 여자라고 하겠으나, 그녀를 감싸고 있는 서회장의 보호막이 너무 강하고 완벽한지라 이제껏 그녀 앞에서 강동윤은 늘 패배자였죠. 그런데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서지수가 불륜남의 차를 운전하다가 뺑소니 사고를 내는 바람에, 강동윤에게 날개가 달리게 된 것입니다. 하마터면 대선 출마는 커녕 거지꼴로 이혼당해 쫓겨날 뻔했지만, 이제 강동윤은 서지수의 범죄를 빌미로 서회장의 목을 조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냉혹한 서회장이지만 의외로 딸바보거든요.

 

그러나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 이 드라마에서 서지수의 존재감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큰 작품은 아니라고 봐야겠죠. 그 뺑소니 사고로 딸을 잃은 형사 백홍석(손현주)의 곁에는 지금 아내 송미연(김도연)이 있지만 시놉시스를 보면 그녀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날 듯하고, 앞으로는 털털한 조형사(박효주)와 서회장의 막내딸 서지원(고준희) 정도가 백홍석 곁을 맴도는 여성 캐릭터가 되겠지만 특별히 눈길을 끌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악역 강동윤에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는 한 여배우가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껏 한 번도 장신영의 연기를 높이 평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이 좋아선지 어린 나이부터 각종 멜로드라마의 주연을 맡았지만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실망스러울 뿐이었죠. 2005년 드라마 '환생'에 출연할 때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기껏 힘들게 다림질하더니 각을 잡지 않고 대충 둘둘 말아서 개켜놓는 식의 황당한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무성의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죠. 결혼과 출산과 이혼이라는 인생의 굴곡을 겪고 돌아온 후에는 그 이전보다 한결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겐 누구나 제대로 한 방을 터뜨릴 시기가 따로 존재하나봐요. 제 생각에 '추적자'의 신혜라 역할은 장신영에게 바로 그런 대박카드입니다.

 

 

원래 저렇게 단아하고 예뻤나? 추적자 1회를 보면서 새삼스레 느껴지는 장신영의 미모에 저는 줄곧 감탄을 금치 못했니다. 배우가 작품 속에서 멋지고 예뻐 보인다는 것은 단지 외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레드카펫 위에서야 옷만 잘 입고 화장만 잘 하면 예뻐 보이겠지만, 작품 속에서는 아무리 외모가 출중해도 연기를 못하면 절대로 예뻐 보이지 않거든요. (어쨌든 제 경우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혜라 캐릭터는 장신영을 위한 맞춤옷으로 탄생한 것만 같았습니다. 절제되고 차분한 목소리, 담담하면서도 미세하게 떨리는 눈빛,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따스한 표정 등 그녀의 모든 것이 아찔할 만큼 매력적이었어요.

 

야심찬 대선출마를 선언하려던 강동윤의 기자회견은 서회장의 방해로 무산되고, 느닷없이 수년 전의 금융비리가 꼬투리 잡히면서 재정담당 참모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경찰에 끌려가고 맙니다. 어느 새 빛의 속도로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아 가지고 왔으니, 강동윤은 서회장의 거대 권력 앞에 옴쭉달싹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지요. 상처받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여인은 비서실장 신혜라입니다. 그녀가 연민 가득한 눈으로 강동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군요. "아무도 없습니다. 소리를 지르셔도 되고 눈물을 보이셔도 됩니다.."

 

말없이 눈동자가 붉어지는 강동윤의 표정을 보고 신혜라가 다시 묻습니다. "나가 드릴까요?" 강동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혜라는 조용히 나와서 문을 닫습니다. 안쪽에서 혼자 미친듯이 포효하며 화를 터뜨리는 강동윤의 소리가 들려오자, 문고리를 꽉 잡고 울먹이며 아픈 가슴을 달래는 신혜라의 모습... 그녀가 강동윤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 단지 주군을 향한 충성심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비상한 두뇌와 침착한 성품을 지녔기에, 비서실장으로서 신혜라의 상황대처 능력은 가히 최고수준입니다. 막막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려 애쓰는 끈기와 투지까지 겸비했습니다. 서회장의 올가미에 걸려 당장 내일 아침에 체포될 상황인데도, 언론 쪽을 찔러서 정치보복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보겠다며 당차게 강동윤을 격려하는 모습은 악역인데도 참 든든하더군요. 다행히(?) 서지수가 제 때에 사고를 쳐 주는 바람에 강동윤의 숨통이 트이긴 했는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요.

 

"수술이... 성공했답니다. 며칠내로 깨어날 것 같습니다!" 죽을 뻔한 사람이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인데, 그 말을 전하는 신혜라의 표정과 말투는 마치 지옥의 울림처럼 절망적입니다. 백홍석 형사 부부의 천금같이 귀한 외동딸, 가녀린 17세 소녀 수정이가 죽음의 고비에서 되살아난 것은, 강동윤에게는 간신히 붙잡은 동아줄을 놓치게 만드는 최악의 소식이었죠. 아내 서지수의 뺑소니 범죄를 이용해서 계속 장인의 목을 조이려면, 피해자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으니까요. 강동윤은 인면수심의 끔찍한 명령을 내뱉습니다. "안 돼! 깨어나면 안 돼!"

 

평화로운 아침, 넓은 정원의 푸른 잔디밭에서 어린 아들과 공받기 놀이를 하는 강동윤은 그저 행복한 아빠처럼 보이는군요. 그들 부자(父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짓는 신혜라의 모습도 천사처럼 선량하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불과 하루 전에 죄없는 남의 자식을 죽이라 명하고 그 명을 실행한 악인들이었습니다. "30억... 어제 집행했습니다!" 신혜라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어려운 수술을 성공시켜 수정이를 살려준 고마운 의사 윤창민(최준용)은 백홍석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뒷조사를 해보니 그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군요. "몇 년 전에 개업했다가 의료사고로 폐업했습니다. 그 때 10억대의 부채가 생겼고, 도박빚도 있습니다. 현재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제일 친한..." 이 때 신혜라의 말을 가로채며 강동윤이 말합니다. "할 거야... 세상에서 제일 약한 게 뭔지 아나? 유혹받아 본 적 없는 우정이야..."

 

슬프게도 강동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처음으로 다가온 엄청난 돈의 유혹은 창민의 양심을 마비시켜, 의사로서도 친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르게 만들었네요. 그는 수정이의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링거액 속에 독극물을 주입하여 꽃다운 소녀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건 명백한 살인이죠! 원래 부상이 너무 심했던 탓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일단 넘어갔지만 차후에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은 딸의 죽음과 더불어 홍석의 마음을 더욱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입니다.

 

딸의 장례식을 준비하던 아버지는 불현듯 이를 악물고 뺑소니범을 찾아나섭니다. 아직 살아 있었는데, 그 어린 것을 구하지 않고 달아나버린 나쁜 놈을 찾아서 벌을 주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제 딸을 죽인 친구에게 상주 역할까지 대신 맡기고는 형사 본능을 발휘하여 추적을 시작합니다. 아, 정말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인 드라마에요. 작품의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편인데, 그 가운데서 신혜라는 유난히 섬세하면서도 차분한 여성미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냘프고 기품있는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조폭 출신의 배상무(오타니 료헤이)를 조종하여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섬뜩한 반전 캐릭터가 있을까요? 서지수의 불륜남인 가수 PK준을 린치하여 사고 내막을 알아낸 것도, 의사 윤창민을 매수하여 의학적 살인을 종용한 것도, 모두 신혜라 그녀의 짓이었지요. 아무리 천사같은 미소를 짓고 있어도 그녀는 분명한 악녀입니다. 강동윤을 사랑한다는 것도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자발적으로 강동윤의 악행을 도운 셈이니 그 죄과는 더욱 크다고 해야겠죠. 그런데 이 악녀... 참 새롭고도 매혹적이네요.

  

얼핏 신혜라는 '선덕여왕'의 미실을 닮은 듯도 합니다. 강동윤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자기는 실세가 되어 이 나라를 리모델링하려는 그 야심찬 꿈이 꼭 닮았죠? 하지만 '선덕여왕' 드라마는 미실이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시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일까요? 고현정의 미실은 너무 오만하고 차갑고 강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남자 사다함은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없었기에, 미실의 마음에는 사랑도 메말랐고 그저 권력욕 뿐이었죠. 그야말로 '얼음마녀'라고 부르면 딱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은 캐릭터가 미실입니다.

 

하지만 신혜라는 좀 다릅니다. 아직 권력을 차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던 미실과 달리, 신혜라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힘은 부족한데 그 와중에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두 캐릭터의 차이는 거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군요. 미실보다 한결 약하고 한층 따스하게 느껴지는 신혜라 캐릭터는, 악녀인데도 살포시 감싸 안아주고 싶어질 만큼 묘한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중간에 망가뜨리지 않고 멋지게 형상화시킬 수만 있다면, 사상 최고의 매혹적인 악녀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혜라야... 너는 신을 믿니?" 강동윤이 물었을 때, 신혜라는 빙그레 웃으며 "필요할 때만요.." 라고 대답했었죠. 자기 필요에 따라 신의 존재를 긍정도 할 수 있고 부정도 할 수 있다니...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정말 무서운 여자가 아닙니까? 절제력이 부족하고 흥분 잘 하는 강동윤보다 신혜라가 한 수 위임은 1회에서 이미 증명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적자'는 여러모로 매우 기대되는 드라마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캐릭터를 하나만 꼽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장신영의 '신혜라'를 꼽겠습니다. 함께 연기하는 다른 배우들이 이미 완성형에 가깝다면, 장신영은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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