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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월아의 죽음이 시사하는 두 가지 교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무신

'무신' 월아의 죽음이 시사하는 두 가지 교훈

빛무리~ 2012. 4.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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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아(홍아름)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최양백(박상민)을 향한 짝사랑으로 눈이 뒤집힌 춘심(김하은)은 월아를 유인하여 저잣거리로 데려가고, 거기서 기다리던 왈패들은 월아를 납치해서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만종(김혁)에게 바쳤지요. 사랑하는 김준(김주혁)과의 혼인을 앞두고 단꿈에 젖어있던 월아는 그렇게 만종에 의해 순결을 잃고 말았군요. 만종은 이제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자기한테 시집올 것이라며 의기양양했으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월아는 비상을 마시고 김준의 품에 안겨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최우(정보석)의 태도는 약간 의외였습니다. 집안에 거둔지 얼마 되지도 않는 여자 노예 한 명이 죽었을 뿐인데 마치 자기 딸이 죽은 것처럼 노발대발하며,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엄히 문초하라고 명하는군요. 그래서 주동인물인 춘심, 견가, 만종은 물론 그 동생인 만전(백도빈)과, 월아를 납치했던 저잣거리의 왈패들과, 겁탈 사건이 일어났던 기방의 기녀들까지 수십명이 최우의 정방으로 끌려와 문초를 받기 시작합니다. 당시 노예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던데, 최우의 이러한 처사는 매우 인상적이었지요. 이로써 비록 천한 신분의 사람일지라도 그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최우의 고결한 인품과, 월아의 약혼자였던 김준에 대한 총애와 신뢰가 동시에 증명되었습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월아의 죽음은 정말 아깝고 원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순결을 잃었다고 해서 죽을 필요까지는 없었고, 더구나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월아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녀라고 어찌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을 것이며, 더우기 지금 죽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영 이별을 의미하는데 어찌 죽음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월아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잘못된 문화의 억압

 

월아는 본래 사대부가의 딸이었으나, 부친이 역모에 연루되어 참형을 당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하마터면 노예로 팔려갈 뻔했지만, 다행히도 수법대사(강신일)의 구원을 받아 산사에서 고이 성장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월아의 모친은 어린 딸과 헤어지기 전에, 마치 유언처럼 남긴 말이 있었습니다. "명심하거라. 여자는 정절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단다. 그 때 이 비상을 먹거라. 행여라도 추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죽음으로 씻어야 한다. 너는 사대부 집안의 딸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려 사회는 조선에 비해 상당히 개방적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낯뜨거울 만큼 적나라한 가사를 담은 쌍화점(雙花店) 같은 노래가 공공연히 불리워졌다면, 남녀간의 노골적인 유혹과 육체적 사랑에 대한 고려인들의 인식은 오히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보다도 훨씬 개방적이었을지 모르겠어요. 저의 고교시절 국사 선생님은, 만약 조선에 와서 유교사상으로 차단되지 않고 고려의 그 자유분방한 문화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면,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에이즈가 발생한 나라는 한국이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자유분방했던 것은 단지 서민층의 문화였던 걸까요? 이환경 작가가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대본을 쓴 게 맞다면, 고려시대에도 지체 높은 사대부가의 문화는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정절을 잃게 된다면 죽음으로 씻어야 한다고, 어린 딸에게 독약을 쥐어주는 어미의 모습이 얼마나 비통하던지요. 여성을 억압하는 그 당시의 문화가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는지가 생생히 피부로 느껴져 왔습니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발생한 사고이건만, 여성에게는 마땅히 '죽을 죄'가 되는 시절이었군요.

한 사회의 문화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들만의 전통이 담겨 있으니, 외인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해서 섣불리 판단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아프리카 종족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오는 여성 할례와 같은 문화를 전통이라는 이유로 존중해야 할까요? 지금도 그 잔인한 시술로 인해 수많은 소녀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평생토록 배변 활동에 지장을 받으며 지옥같은 삶을 견디고 있는데, 전통이든 문화든 무엇이든 간에 그와 같은 악습은 하루빨리 근절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여성 할례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성의 순결을 목숨과 동일한 가치로 생각했던 사대부가의 전통은, 사람의 귀한 생명을 무가치한 죽음으로 몰아가는 최악의 문화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지식하고 순진한 월아는 헤어질 때 어머니가 눈물로 당부하던 그 말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손에 쥐어준 비상을 언제나 품에 지니고 다닐 만큼,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는 그녀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던 것이죠. 어려서부터 산사에서 자라나 융통성 따위를 습득할 기회가 없었던 월아는, 순결을 잃게 되자 곧이곧대로 어머니의 당부에 따라 비상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문화의 억압으로 빼앗긴 목숨...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었습니다.

 

2.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이번 일을 계획한 춘심과 견가와 만종은 월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종이 강제로라도 그녀의 몸을 취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김준과의 혼인을 포기하고 만종의 여자가 될 거라 생각했을 뿐, 설마 죽음을 선택할 거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그들은 천한 노예 월아가 원래 사대부가의 딸이었다는 사실도 몰랐고,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월아를 함정에 빠뜨린 자들은 세도가의 서자와 노예로서, 각계 각층의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왔기에 모두 눈치가 빠르고 처세술에 능했습니다. 이제껏 그들의 세상에는 월아처럼 순수하고 융통성없고 고지식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월아의 인물됨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지요.

 

그들은 자기네 방식대로 작은 돌멩이를 던졌을 뿐이지만, 그것이 월아에게는 깔려죽을 만큼 커다란 바윗돌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떤 행동을 할 적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지 않음을 명심하고 깊이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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