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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드라마 리뷰 /무신

'무신' 박해수, 주인공을 능가하는 존재감!

빛무리~ 2012. 2. 12. 10:00



주말 밤이면 MBC와 SBS에서는 1시간짜리 연속극을 연달아 2편씩이나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물량이 많으면 양질의 작품들도 적잖이 나올 법 하건만, 어찌된 셈인지 거의 다 막장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지독히 식상한 소재들만 우려먹고 있는 상황이라 좀처럼 끌리는 작품이 없더군요. 특히 최근 종방한 MBC 연속극 두 편, '애정만만세'와 '천번의 입맞춤'은 어쩌면 그렇게도 속속들이 진한 막장의 향기를 풍기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역겨울 만큼 얽히고 설킨 가족관계의 함정은 왜 그리도 자주 사용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어쨌든 두 편의 막장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끝나고, 새로운 드라마가 또 연달아 2편이나 시작되었습니다. '신들의 만찬'은 초반의 여러가지 설정을 보니 2010년 여름 '제빵왕 김탁구'의 화려했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티가 역력해 보이는데, 제 눈에는 오히려 그래서 좀 식상해 보였습니다. 더구나 극의 중심을 이끌어갈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척 보니 '캔디형'인데, 그 역할을 맡은 성유리는 아주 씩씩하고 전형적인 '캔디형' 연기를 선보일 듯한 예감이 들더군요. 왠지 안 봐도 뻔히 상상이 되는 듯한 느낌에 좀처럼 채널을 고정하게 되지 않았는데...

막장이 판치던 그 시간대에, 모처럼 고려 무신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통 사극이 편성되었다 하여 살짝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환경 작가의 스타일이 제 취향과 좀 걸맞지 않는 면은 있지만, 그래도 놓치기엔 너무 아깝겠더라고요. 듣자하니 10년의 준비기간과 25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작품이라 하고, 게다가 명품 배우들이 워낙 많이 포진하고 있어서 말이죠.

주인공을 맡은 김주혁과 김규리에게는 오히려 큰 기대가 되지 않지만, 조연들이 너무도 화려합니다. 주현(최충헌), 정보석(최우), 박상민(최양백), 천호진(이규보), 정성모(최향), 정호빈(송길유), 강신일(수법대사)... 제가 아주 좋아하는 연기자들만 추려봐도 이렇게 많습니다. 게다가 1회에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임금 고종 역할을 이승효가 맡았다니 '김수훤'과는 또 다른 젊은 왕의 매력이 기대됩니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무신(武神)'은 매우 남성적인 사극입니다. 여성 캐릭터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네요..;; 여주인공 최송이(김규리)만이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주요 캐릭터인데, 1회에 아주 잠깐 모습을 비추더군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별로 여주인공 같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여장부 스타일이면서도 은근히 끈적한 관능미를 내비친다고나 할까요? 얼핏 '해신'에서 채시라가 연기했던 '자미부인' 캐릭터가 떠올랐습니다. 최송이의 첫 이미지는 자미부인과 꼭 닮았는데, 자미부인은 악역이었단 말이죠.

여주인공은 고상하고 순정적인 이미지의 정화(수애)였고... 하지만 사극의 여주인공이 모두 수애같은 캐릭터일 필요는 없겠죠. 고려는 조선보다 여성의 활동이 훨씬 자유로운 시대였으니까, 어쩌면 최송이처럼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첫방송부터 지나치게 잔혹한 설정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리얼하게 보여줄 필요는 없었는데, 반란을 일으킨 승려들이 고문당하는 장면들은 어찌나 끔찍하던지 가슴이 다 서늘해지더군요. 시청자 게시판을 보니 함께 시청하던 조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모두 방으로 들여보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명품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감상할 시간을 좀 더 주면 좋았으련만, 괜히 필요없는 장면에 시간을 너무 할애했더군요. 무조건 자극적이라고 해서 시청률에 도움되는 게 아닌데..;; 과연 최충헌(주현)과 이규보(천호진)의 대작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가 뿜어내는 포스는 삽시간에 극 전체를 장악했고, 곧이어 최충헌과 그의 장남 최우(정보석)가 대립하는 장면은 고요한 가운데서도 최고의 스릴을 자아냈습니다.

그 와중에 한 명의 낯선 인물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낯선 얼굴인데, 어쩌면 1회를 보자마자 이렇게 홀딱 반해버릴 수가 있을까 싶을 지경입니다. 앞으로 이환경 작가 특유의 지루한 전개가 한동안 이어진다 해도, 저는 그 인물을 보기 위해 무조건 참을성을 갖고 열심히 '무신'을 시청하게 될 것 같습니다. 캐릭터의 이름은 김윤후, 연기자의 이름은 박해수입니다.

극 중에서 김주혁의 스승으로 나오길래 중견 연기자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박해수는 81년생의 젊은이군요. 사극 분장을 해놓으면 나이 분별이 잘 안 되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니 나이에 비해 좀 노안이기도 하군요..;; 게다가 41세의 김주혁이 어린 제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더욱 그랬겠지요..;;  

주인공 김준은 최충헌의 집에서 도망친 노예의 아들인데, 자기 신분을 모른 채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라났습니다. 주지인 수법대사를 비롯하여 모든 스님들의 사랑을 받았고, 특히 그의 무술 스승인 금강스님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 하여, 어린 준의 재능을 몹시 아꼈습니다. 이 금강스님이 바로 김윤후입니다. 한 때는 촉망받던 젊은 무장이었으나, 어느 날 깨달음이 있어  모든 것을 버리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된 사람입니다. 드라마의 설정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군요.

하지만 김윤후는 엄연한 실존인물입니다. 몽고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들의 삶이 고단해지자, 승장(僧將)의 신분으로 출전하여 몽고의 원수 살리타(撒禮塔)를 활로 쏘아 죽임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던 영웅이군요. 그 후에도 수차례 큰 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혼자만의 공이 아니라 힘을 합쳐 싸운 백성들의 공이라며 누차 벼슬을 사양했다고 하네요. 1262년(원종 3)에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와 예부상서를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은 이듬해 수사공 우복야(守司空右僕射)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습니다. 더없이 용맹하면서도 지극히 욕심 없고 청렴한 사람... 어쩌면 실존인물도 이렇게 멋있을까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제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연기자 박해수의 매력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심히 드라마를 보는데, 그 사람의 선 굵은 외모와 목소리, 눈빛과 표정, 몸놀림...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을 번쩍 들게 하더군요. 우렁찬 목소리, 풍부한 감정 표현, 시원시원한 웃음, 강인한 몸놀림...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예전에 즐겨 읽던 무협소설의 한 구절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의기(意氣)가 온 세상을 덮으니 과연 호방(豪放)한 사내로구나!"

드라마 속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을 보면 실존인물 김윤후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남자 중의 남자... 올곧고 강인한 사내의 기백이 철철 넘쳐흐르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박해수의 연기에서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그가 작품에 임하기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며 캐릭터 파악을 완벽하게 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볼수록 감탄스러운데... 그런데 도대체 누구지??? 궁금증을 견딜 수 없어 드라마를 보는 와중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박해수는 연극배우 출신입니다. 연극계에서는 최근 수차례 신인연기상을 받은 유망주이지만, 드라마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군요. 어쩐지 시원스레 내지르는 성량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연극을 하면서 익힌 발성법이 무장 역할에는 아주 제격인 듯합니다. 연극 배우들이 드라마에 처음 출연하면 너무 과장된 연기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많지만, 뼛속까지 무인인 김윤후의 캐릭터는 얼마든지 과장된 연기를 해도 오히려 돋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솔직히 주인공 김준에게는 별로 끌리질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김주혁의 연기에서도 거의 매력을 못 느끼겠고, 캐릭터도 그렇습니다. 김준 역시 고려 무인시대의 실존인물인데, 노예 출신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최고 신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긴 하지만 그냥 뭐... 그렇더군요. 제가 원래 출세지향적인 캐릭터는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김준은 꼭 그런 인물이거든요.

권력을 잡고 나서는 그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자식들도 탐욕스런 행동을 일삼아 백성을 괴롭히고 궁궐에 바쳐지는 물품마저 탈취했다 하며, 나중에는 임금을 참살하려는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김윤후의 고귀한 인품과는 감히 비견할 수도 없는 저열한 인물..;; 어째서 이 작품의 주인공을 김준으로 정했을까요? 주인공이 너무 청렴하면 재미없으니까, 오히려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로 정한 걸까요? 하긴 여주인공 최송이의 캐릭터와도 잘 어울리긴 하는군요.

어쨌든 저는 모든 감각을 김윤후, 즉 박해수에게 집중하고 '무신'을 볼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명품 연기자들의 연기도 놓칠 수는 없지만, 정말 모처럼 발견한 이 젊은 배우의 신선한 매력이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거든요. 따스한 봄날의 이른 아침, 힘차게 뻗어나오는 화분의 새싹을 처음으로 본 것처럼, 무척이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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