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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마님'을 꿈꾸던 임성한 작가, 그녀의 사랑이 서글픈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아현동 마님'을 꿈꾸던 임성한 작가, 그녀의 사랑이 서글픈 이유

빛무리~ 2012. 4. 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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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권 PD의 죽음에 여러가지 석연찮은 점이 있다 하여, 그의 여동생을 필두로 한 가족들은 미망인 임성한 작가에게 금액 5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액수가 크지 않은 이유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군요.  이번 사건을 맡은 이재만 변호사는 12년 전 주병진이 강간치상 혐의를 받았을 때, 의뢰인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관련 기사 링크)

 

가족의 주장에 의하면 유서의 필적도 손PD의 것이 아니었고, 증거 자료로 제출된 CCTV의 화질도 너무 흐릿해서 손PD인지 아닌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고, 수사는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명확한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혹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합니다. 배우자 임성한이 부검을 거부함으로써 손문권 피디의 시신은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땅에 묻히고 말았는데, 그 후 임성한 작가는 행방불명, 연락두절 상태이니 의혹은 점점 깊어져만 갑니다.

 

관련 기사를 읽어 보면 고(故) 손문권 PD의 가족들이 임성한 작가를 의심하는 듯한 기색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남편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어쩌면 한 발 더 나아가서 임작가가 죽음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 가족의 사건 의뢰를 받아들인 변호사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쨌든 공정한 절차를 밟아서 확실한 내막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대중의 입장에서도 진실을 알게 되면 한결 속이 후련하겠죠. 다만 처음부터 한쪽으로 치우쳐 사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남편의 가족들에게조차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고, 다짜고짜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린 임성한 작가의 태도는 상당히 잘못된 것이며, 좀처럼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나쁘게 보자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니, 그녀가 무언가 음흉한 속셈으로 남편 죽음의 내막을 숨기고 있다는 지레짐작도 가능한 상황이지요. 하지만 관련 기사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본 후, 저는 임성한 작가가 무척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의 행동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손문권 PD와 임성한 작가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작업을 핑계삼은 비즈니스적 관계였을 뿐이고, 서로의 필요가 다하면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관계였다는군요. 손PD의 가족도, 심지어는 전처까지도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받고 그 '계약결혼'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손PD 부모의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온 임성한 작가는 "나와 이렇게 일해줄 수 있는 건 손PD밖에 없다. 다음에 60부작 드라마(아현동 마님)를 받아두고 있는데, 손PD가 입봉할 수 있는 기회다"라며 설득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손PD 전처와 아이의 생활비까지 대어 주겠다는 조건까지 걸고서야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는군요.

 

스타 작가 임성한과 결혼함으로써,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조연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손문권 PD는 거대한 60부작 일일드라마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걸 수 있게 되었으며, 다른 이혼남들의 경우는 평생 등골이 휘도록 뒷바라지해야 하는 전처와 아이의 생활비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먼 친척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신데, 전처와 아이의 생활비, 학비를 대는 것만도 빠듯하고 여유가 없으니, 언감생심 재혼은 꿈도 못 꾼다더군요. 더구나 손PD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폐아라고 하니, 치료비와 양육비가 더욱 많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임성한 작가가 12세 연상이긴 했지만, 그녀는 미혼이고 손문권 PD는 전처와 자식의 굴레에 얽매인 이혼남이었습니다. 직업적 능력과 명성이나 재력면에서도 비교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만약 손PD가 임작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자기 가족들에게 그런 수모를 겪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전처와 아이의 생활비를 대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겠죠. 손PD에게 임작가의 존재는 '여자'가 아니었고, 결혼의 이유도 사랑은 아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쉬울 것 없는 임성한 작가는 도대체 왜 온갖 굴욕적인 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손문권 PD와의 결혼을 추진했을까요? "나와 이렇게 일해줄 수 있는 건 손PD밖에 없다" 라고 말했다지만, 글쎄요... 임성한의 작품은 언제나 대중의 호된 비판에 직면하기는 했어도 시청률 면에서는 항상 최고였습니다. 그녀와 함께 일하겠다는 감독은 줄을 섰을 것이고, 그 중에는 능력있는 베테랑 감독도 얼마든지 있었을 거예요. 맘 먹고 찾아보면 설마 같이 일할 사람이 없었을까요? 약간 견해차가 있더라도 의논을 통해 적당히 조율하면 될 일이고, 솔직히 조연출 딱지도 못 뗀 신출내기 감독보다야 베테랑 감독이 믿음직하지 않겠습니까? 드라마가 아무리 작가의 예술이라지만 감독의 재량에 좌우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직업적 능력을 떠나서 단지 "나와 마음이 잘 통한다"는 이유로 손문권 PD를 선택했다면, 그건 사업상 파트너 선택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심으로 '한 남자'를 선택한 거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성한 작가가 진심으로 손문권 PD를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굴욕적인 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그와 결혼하고 싶어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기묘한 결혼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요.

 

임작가와 손PD는 결혼 후에도 실제로 함께 살았던 적이 없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10분 거리에 떨어진 각자의 아파트에서 따로 살았으며, 드라마 작업을 할 때만 만났었다고 합니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 하지만 손PD는 과연 임작가에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었을까요? '하늘이시여'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임성한 작가는, 결혼 후 이상하게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을 주며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남편을 이끌어 주려던 그녀의 배려가 작품에 독이 된 것은 아니었을지, 신출내기 감독의 역량 부족이 작품에 드러난 것은 아닐지... 그들의 결혼 내막을 알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군요.

 

손PD의 여동생은 오빠의 49재 때 법당에 찾아갔다가, 임작가가 영정을 가져간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임성한은 왜 굳이 영정을 가져갔을까요? 어쩌면 그녀가 세상과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린 이유는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상심이 너무 컸기 때문 아닐까요? 피를 나눈 가족들처럼 소리쳐 울어대거나 항의할 기운도 없이, 홀로 슬픔에 잠겨 있는 건 아닐까요?

임성한 작가가 결혼 이후 처음 발표한 작품은 '아현동 마님'입니다. 남녀 주인공 백시향과 부길라는 임작가와 손PD처럼 여자 쪽이 12살 연상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현실의 제작자들과 달리,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했지요. 그 어떤 경제적인 압력도 없었고 치사스런 조건도 없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혼 후의 두 사람은 더없이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 살았습니다. 여주인공 백시향은 늦은 나이였지만 무사히 건강한 아이도 낳았고, 직업적으로도 더욱 성공하여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아현동 마님'이 되었습니다.

 

그런 백시향의 모습은 바로 임성한 작가가 간절히 꿈꾸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비록 현실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허망한 꿈이었지만 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임성한이라는 여자의 처절한 사랑이 그저 안타깝고 서글프기만 하군요.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 명성이 높아도, 가슴 한 구석을 채울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었나봐요. 결과적으로 임작가와 손PD의 결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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