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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살아요' 왕자님 현우, 거지가 된 이유는? 본문

드라마를 보다

'청담동 살아요' 왕자님 현우, 거지가 된 이유는?

빛무리~ 2012. 2.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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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트콤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에게 세상은 언제나 심각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데, 시트콤을 볼 때면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김병욱의 시트콤에서는 이제 가벼운 즐거움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을 중독시키는 스텐레스김 특유의 재미는 여전하지만, '지붕뚫고 하이킥' 때부터는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져 버린 거죠. 그런데 심각한 것은 원래 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도는 점점 더 높아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예민해져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시트콤을 보는 원래의 목적과는 좀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하이킥3'가 끝나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 '청담동 살아요'를 시청하며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곤 했지요. 단지 종편이라는 이유로 외면하기에는 꽤나 재미있더라고요..;;

만약 김병욱 시트콤에 흔해빠진 신데렐라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저는 배신감을 느끼며 크게 실망하고 말겠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상관없습니다. '청담동 살아요'에는 그냥 척 봐도 알 수 있는 신데렐라 캐릭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지요. 청담 만화방 주인 김혜자(그 만화방도 원래 자기네 소유는 아니고 잠시 맡아 운영중인 것이지만)의 외동딸 오지은은 완벽히 시트콤에 적합화된 신데렐라형 여주인공입니다. 예쁘지만 가난하고, 평범한 수준의 착한 마음씨에 (별로 특별히 착한 애는 아님..) 명랑하고 덤벙대는 단순한 성품에, 푼수기와 속물기를 대충 얼버무려 놓은, 제가 보기에는 아주 만들기 쉬워 보이는, 전형적인 그런 캐릭터죠.

하여튼 그녀는 결국 왕자님의 사랑을 획득할 것이며 구질구질한 만화방을 벗어나 그토록 꿈꾸던 럭셔리한 사회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게 신데렐라의 정해진 운명이니까요. 전혀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가보다'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예쁜 얼굴 외에는 도통 무슨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오지은을 보는 왕자님(들)의 눈빛은 벌써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두 명씩이나!!! 신분상승 욕구로 가득한 오지은이 초장부터 찍어놓고 짝사랑해 온 인물은 누가 봐도 '청담동 성골 왕자님'인 이상엽이지만, 사실은 그녀의 초라한 만화방 옥상 컨테이너에 세들어 살고 있는 현우가 더 큰 부자에다 능력까지 갖춘 진짜 왕자입니다. 결국 오지은은 현우와 연결되겠죠..ㅎㅎ

'시크릿 가든' 속 김주원(현빈)의 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드넓고 럭셔리하던 현우의 방은 아주 잠깐 스쳐지나듯 비춰졌을 뿐이지만, 여자들의 로망을 그대로 형상화시킨 듯한 이 왕자님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나는 순간을 상상하면 조금은 짜릿하기도 합니다. (동화 속 개구리 왕자같은... 이 뻔한 설정에 설레다니..;;) 틈틈이 던져지는 떡밥을 보아하니 그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해외 유학도 다녀온 듯하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유능한 작곡가로 인정도 받고 있는 듯합니다. 이상엽의 멋들어진 외제차를 보면서 요리조리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시시한 수준의 평범한 차라며 가볍게 비웃어 주시는 여유로움까지 갖추었군요. 옥상 컨테이너의 잘생긴 찌질이 현우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임을 현재 오지은은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습니다. 그녀가 좀 맹하기도 하지만, 현우가 너무 철저하게 신분을 위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우가 처음부터 오지은을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청담동으로 이사오면서부터 오지은은 이 럭셔리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구질구질한 만화방이 자기네 집이라는 것에 넌더리를 내고 몸서리를 쳤지요. 대놓고 신분상승 욕구를 드러내는 그녀가 이상엽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보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명확했습니다. 단순하고 유치하고 속물적인 그녀의 짝사랑을 무심히 바라보던 현우의 눈빛에는 약간 한심해하는 듯한 기색도 비쳤지요. 하지만 바람둥이 상엽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울고불고 하는 그녀를 늘상 보게 되니 자꾸만 속이 터지고 안타까워지고, 그러다가 어느 사이엔가 저절로 연민이 싹트고 만 듯합니다. 머지않아 그 연민은 사랑으로 발전하겠죠.

맹순이(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가 보기에는 확실한 맹순이..;;) 오지은은 최근 또 상엽의 기술에 낚여 파닥거리며 심하게 오버하다가, 급기야 사람들 보는 앞에서 몹시 창피하게 채이고 말았습니다. 짓밟힌 자존심에 울던 그녀는 짝사랑을 접고 말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상엽 쪽에서 그녀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군요. 만약 현실이라면 상엽의 그런 태도는 단지 어장의 물고기 한 마리가 도망친 것을 아쉬워하는 반응에 불과하겠지만, 자극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시키려면 이쯤에서 제2의 왕자님도 진심으로 그녀에게 반해줄 때가 되었죠.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 한 명을 차지하기 위해 최고의 훈남 왕자 두 명이 다투는 삼각관계라... 이것은 '캔디' 이후로 수백 번이나 보아 온 식상한 포맷이지만, 어쩐지 앞으로도 수백년은 우려먹을 수 있을 듯하군요. 흔한 여자들의 흔한 욕망과 허영심을 이만큼 완벽히 대리만족시켜 주는 설정이 또 있을까요? ㅎㅎ

이렇게 젊은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는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가끔씩 어머니 김혜자 쪽의 스토리가 메인 에피소드로 진행될 때면, 제법 심도있는 주제의 시트콤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럭셔리한 사모님들의 문인회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부잣집 마나님으로 기를 쓰며 위장하고 있는 김혜자도 본질적으로는 딸 오지은과 별다를 바 없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20년 전에 남편을 잃고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게다가 능력없고 가족없는 두 동생(이보희, 우현)까지 거둬먹이며 갖은 역경을 헤쳐 온 김혜자의 삶에는 어딘가 외면할 수 없는 비극적 무게감이 존재합니다. 연륜 만큼이나 차곡차곡 쌓여 온 삶의 지혜를 엿보며 조금씩은 교훈도 얻을 수 있더군요.

그나저나 국내 상위 1%에 속할 최고 계급의 황태자 현우는, 도대체 왜 이 허름한 건물의 난방도 되지 않는 옥상 컨테이너에 세들어 살며, 만화방을 청소하고 카운터를 보는 등의 알바까지 겸하면서 극빈자 체험을 하고 있는 걸까요? 원래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십여년이나 청담 만화방의 단골이었다고는 하지만... 예전부터도 만화방에 하루종일 죽치고 있어서 백수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굳이 생활 공간까지 바꾸면서 고생하고 있는 까닭은 도통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이 추운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컨테이너 생활을 하다보면 점점 뼈마디가 시려오고 건강에 이상이 생길 듯한데요..;; 도대체 왜 그 좋은 집을 나와서, 안락한 휴식과 취침의 공간까지 포기하면서 이러고 있는 걸까요?

혹시 오지은에게 반해서? 아까도 말했듯이 제가 보기엔 처음부터 그녀를 좋아했던 것 같지 않지만... 모를 일이죠.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든가, 폭넓은 인생 경험을 하고 싶어서라는 뻔한 이유를 갖다붙이자면 그건 너무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거든요. 김석윤 PD의 전작인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는 초반에 예지원을 구박하던 까칠한 피디 지현우가 사실은 한 팀에서 일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었던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었죠. 만약 여기서도 그렇다면?? 현우가 오지은을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해 왔다면??

어떤 느낌일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예지원 캐릭터에는 약간이나마 몰입을 했었기 때문에 기분좋은 감동을 느꼈지만, 오지은에게는 끝내 몰입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쨌든 요즘 '청담동 살아요'를 시청하다 보면 늘상 궁금해지곤 합니다. 왕자님 현우는 도대체 왜 스스로 거지가 된 걸까요? (여기서 '거지'는 동화 '왕자와 거지'에서 인용한 상징적 단어일 뿐, 가난한 사람을 비하하고자 하는 표현이 절대 아닙니다. 행여나 오해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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