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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형제들' 백자은의 사랑, 꼭 지켜주고 싶은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오작교 형제들' 백자은의 사랑, 꼭 지켜주고 싶은 이유

빛무리~ 2012. 1. 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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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느닷없는 충격으로,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오작교 형제들'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막장스런 내용들이 많았고, 지금도 몇몇 설정에 있어서는 그 막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높이 평가하지도 않고 늘 대충 보면서 딴짓이나 하곤 했었는데, 무심히 보다가 갑작스레 흐르는 눈물은 저 자신을 무척이나 당황시켰습니다. 한 여자아이의 사랑이, 밀고 당기기 따위는 할 줄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순수한, 사랑 오직 그 하나밖에 모르는 듯한, 안하무인 철딱서니 공주님을 어느 새 희생적인 천사로 변화시켜 버린 그 사랑이, 정말 대책없는 그 사랑이 저를 울려 버렸습니다.

솔직히 백자은(유이)의 캐릭터가 처음부터 호감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닙니다. 아빠는 실종되어 버렸고, 돈은 떨어져 가고, 그래서 아빠가 친구에게 빌려주었던 농장을 되찾으러 온 것까지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오작교 농장 식구들과 한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벌이는 무개념 행각들에 눈살이 찌푸려진 나머지, 저는 좀처럼 백자은에게 감정을 몰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 농장이 남편 황태식(백일섭)의 소유가 아닌 줄은 꿈에도 몰랐던 박복자(김자옥)에게 있어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백자은의 존재는 그 자체만도 청천벽력 같은 재앙이었겠죠. 그런데 농장을 당장 빼앗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선심을 쓰는 거라고 큰소리치며 그 집에 눌러앉은 백자은의 행동들은 어쩌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 살림을 꾸려가기에도 빠듯한데 갑자기 수백만원에 달하는 대학 등록금을 요구하고, 용돈 필요하대서 카드를 빌려줬더니 슈퍼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만원 어치를 쇼핑하고 (그 물건들도 슈퍼에서 발견한 새엄마를 쫓다가 다 망가뜨려서 못 쓰게 되었지만), 설상가상 실종된 아빠를 찾으려면 해양 수색을 의뢰해야 하니 당장 며칠 내로 수천만원의 비용을 내놓으라는 백자은의 행동들을 보면, 분하고 얄미운 마음에 박복자가 정신이 나간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닌 농장을 자기 것이라고 뻥치며 식구들을 속여 온 황태식(백일섭)이야 오갈 데 없는 죄인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 농장에 십여년간 피땀을 바쳐온 박복자의 입장은 사실 매우 딱했거든요.

도저히 모든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안 되는데, 그 어린 여자아이는 각서 한 장을 무기삼아 협박(?)하며 자기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곧바로 농장을 접수하겠다고 하니, 어느 날 박복자는 몰래 그 각서를 훔쳐내고는 백자은을 사정없이 내쫓아 버립니다. 평생 식구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엄마 박복자로서는,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는 불행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 하나쯤은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문제의 각서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었던 것 하며, 그 이후의 행동들을 보면 박복자가 천성이 악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거든요. 이후 마당에 텐트를 치고 들어온 백자은을 몹시 구박했던 것도, 지은 죄가 있으니 가까이할 수 없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못견디게 괴로우니 멀리하고 싶었겠지요.

그 무렵 사실 저는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점이 있습니다. "농장을 되찾고 싶으면 어떻게든 엄마의 마음을 얻어보라"고 황태희(주원)가 조언해 준 이후로, 백자은의 태도가 그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직 '농장을 되찾기 위한' 일념으로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보이며 가식을 떨었다면 오히려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복자를 비롯한 오작교 식구들을 대하는 백자은의 눈빛은 순수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백자은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아빠의 농장을 빼앗은 원수들이고, 혈혈단신 오갈 데 없고 가진 것 없는 자신을 무자비하게 내쫓아 버렸던 끔찍한 인간들에 불과하련만, 이를 빠득빠득 갈며 복수심을 불태워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백자은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부터였습니다. 이 대책없이 순진한 여자아이의 가슴속에 황태희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간신히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을 즈음에 새엄마(조미령)가 들이닥치면서, 각서를 훔쳐간 범인이 박복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분노와 배신감에 못이긴 백자은은 모든 인연을 끊겠다며 차갑게 돌아섰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백자은은 결국 박복자와 오작교 식구들을 다시 용서했고,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이 모두가 황태희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었으니까요. 황태희를 사랑하면서 그녀는 이기심을 버렸고, 사치하던 습관을 버렸고,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과 희생 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사랑은, 순수함 하나 빼고는 비호감이었던 철딱서니 공주님 백자은을 이렇게 바꿔 놓았습니다.

어느 새 식구들과도 모두 친해지고, 황태희와 더불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사랑은 거침없이 무르익어만 갔지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싶었는데, 아직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황태희의 아버지 황창훈은 26년 전의 뺑소니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었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 백자은의 아버지 백인호(이영하)였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작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쪽같은 형사 황태희의 발목을 잡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듯한 윗선의 검은 손들이 언뜻언뜻 보이거든요) 그 사실을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황태식입니다. 자기 동생이자 태희 아버지인 황태훈을 백인호가 죽였다고 철석같이 믿게 된 황창식은 두 아이의 사랑을 결사반대하기 시작합니다.

절대로 자은이에게 진실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눈물로 애원하던 아내 박복자 때문인지, 황창식은 끝내 그 소리까지는 안 하더군요. 하지만 그 죄없는 어린 것을 눈앞에 두고, 네가 부모 없는 천애고아라서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백자은의 입장에서는 오직 사랑을 위해 아빠의 유산인 농장까지 그들과 공유하기로 했는데 말이죠. 보통 사람이 그 정도로 몰염치하고 모진 말을 들었으면 치가 떨려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돌아서지 않을까 싶었는데, 백자은의 견고한 사랑은 끄덕도 없더군요. 비록 큰 상처를 받긴 했지만 사랑을 이기기에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 모진 소리를 듣고서도 그날 밤 자은은 수산시장에 들러서 두 손 가득 음식재료를 사들고 돌아옵니다. 다음 날이 박복자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한 번도 다른 사람이 차려준 생일상을 받아본 적 없다는 아줌마를 위해, 이번에는 제가 서툴지만 꼭 생일상을 차려 드리고 싶다 말하는 자은이 앞에서 눈빛이 흔들리는 쪽은 오히려 황창식이었습니다. 언제나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머뭇거림 없는 백자은은 오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냅니다. 

"아저씨께서 낮에 하신 말씀을 듣고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요... 제가 아직 나이 어린 건요, 적당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릴게요. 3년이고 5년이고 얼마든지요. 직장은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꼭 성공해서 정식 작가로 데뷔할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아무리 애써도 어쩔 수 없는 게, 부모님이 안 계신 건데요... 그건 아저씨가 저 한 번만 봐주시면 안돼요?

제가 정말 잘 할게요. 태희아저씨한테도 잘 하고 아저씨 아줌마께도 잘 할게요. 태희아저씨도 좋지만, 아저씨 아줌마도 너무 좋거든요. 할머니, 큰아저씨, 막내오빠... 여기 오작교 식구들이 다 가족같고 좋은데, 태희아저씨랑 헤어지게 되면 제가 좋아하는 오작교 식구들 다 못 보잖아요. 그럼 저 정말로 고아가 된 기분일 것 같아요. 그리고 저... 태희아저씨 진짜 좋아해요. 정말 많이 좋아해요. 비록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절대로 폐가 되는 사람은 되지 않을게요. 꼭 곁에서 힘이 되는 사람이 될게요. 아저씨, 저 한 번만 허락해 주세요!"

백자은의 간절한 눈빛은 기어코 저에게서 눈물을 뽑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드라마 속 누군가의 사랑을 이토록 지켜주고 싶어지는 마음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저의 예감으로는 분명 그 뺑소니 사건의 범인은 백인호가 아닐 듯 싶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자은이의 사랑만은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황태희는 제 아비를 죽인 자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 셈인데, 원래 저의 고지식함으로는 절대 그런 반인륜적인 사랑을 응원할 수 없지요. 아무리 아파도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릅니다. 판단과 이성 따위는 내팽개쳐 버리고, 무조건 진실을 덮고서라도 백자은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철벽같은 제 마음을 뚫고 들어오다니 정말 놀랍군요. 순도 100%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백자은의 사랑도, 그 인물의 심리를 훌륭히 표현해내고 있는 유이의 연기력도 놀랍습니다. 어쩌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오작교 형제들'은 훨씬 더 괜찮은 드라마인지도 모르겠어요. 형수님의 이모와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황태필(연우진)의 막장스런 행각과, 미혼부 처지에 두 여자 사이를 줏대없이 갈팡질팡하는 황태식(정웅인) 때문에 좀 짜증스럽긴 하지만, 백자은이라는 아름다운 캐릭터 하나가 그 모든 불쾌감을 사라지게 합니다. 그 동안 참 많이 힘들었던 자은이... 행복해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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