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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살아요' 이 세상엔 몇 명의 조관우가 있을까? 본문

드라마를 보다

'청담동 살아요' 이 세상엔 몇 명의 조관우가 있을까?

빛무리~ 2012. 3. 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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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그 중에도 가장 고급스런 부자 마을 청담동, 그 휘황찬란한 높은 건물들 사이에 유일하게 작고 초라한 건물 '청담 만화방' 그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아차, 정체를 숨기고 있는 미스테리한 청년 현우 한 사람은 빼야겠군요. 모든 등장인물이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다고 가정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최하위인 14등급을 받더라도 현우만은 1~2등급에 해당될 테니까요. 그리고 스펙은 보잘것없지만 젊고 예쁘장한 여주인공 오지은도 대충 10등급 안에는 들 수 있을 것 같군요. '청담동 살아요' 74회에서는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결혼정보회사의 비인간적 시스템에 빗대어, 이 각박한 세상을 풍자하는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청담 만화방' 식구들은 모두 자기 인생에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인데, 그들로 하여금 상대적인 자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가 바로 조관우입니다. 그 허름한 건물 중에서도 반지하방에 세들어, 아니 빌붙어 살고 있는 그는 전직 가수였다고 하지만 증명된 바 없고, 노래 잘 하는 소년들 몇 명을 모아서 작은 기획사를 차렸지만 능력 부족으로 폭삭 망했습니다. 애써 키우던 아이돌 그룹 '청담불패'는 그가 알선해 준 다른 기획사에 둥지를 틀자마자 방송에 데뷔하여 톱스타가 되었지만, 그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실 동전 300원이 없어서 위층 식구들에게 돌아가며 백원씩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배우 김보희(이보희)의 매니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입니다. 비록 왕년의 스타로서 지금은 몰락한 단역배우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갈 곳도 없고 의지가지 없는 그의 신세에는 감지덕지할 일이었지요. 게다가 50대 중반에도 아직 시들지 않은 김보희의 미모에 반한 조관우는 연상의 그녀에게 나름 애틋한 연정마저 품고 있습니다. 수익 나눔도 무려 9:1이라는 비합리적인 계약이었지만, 딱히 하는 일이 없기에 그것도 과하다 싶을 지경입니다. 매니저의 기본 소양인 운전도 할 줄 모르고, 부지런히 뛰어서 배역을 따 오기는 커녕 만날 늦잠이나 자니까 오히려 촬영있는 날이면 보희가 깨워줘야 하고, 심성이 물러터진 나머지 불이익을 당했을 때 보희를 대신하여 싸워주지도 못합니다.

김보희에게 날마다 구박받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그녀의 언니 김혜자까지도 최근에는 슬슬 조관우를 만만히 여기며 부려먹고 있습니다. 김혜자는 비교적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괜찮은 성품의 노인이지만, 현재 조관우의 처지는 너무도 열악하거든요. 어느 날 김혜자는 빨래가 건조뿐만 아니라 개켜서까지 나오는 신형 세탁기를 개발했다며 자랑하는데, 알고보니 그 신형 세탁기의 정체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조관우였습니다. 종일 허리도 못 펴고 집안 허드렛일에 시달리던 조관우는 설움에 못이겨, 서인영의 노래 '신데렐라'를 '관데렐라'로 개명하여 부릅니다. "관데렐라~ 관데렐라~" 조관우의 '관데렐라'는 한 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이천희의 '천데렐라'보다 백 배는 더 불쌍합니다.

그런데 가족도, 배경도, 돈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는 줄만 알았던 조관우의 느닷없는 역습이 74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일회성 에피소드로 끝나버린 것일 수도 있고, 꿈같은 시간이 지나자 그는 다시 자판기 커피값을 구걸하는 신세로 되돌아갔지만요. 김혜자는 현재 자기 신분을 속이고 청담동의 재벌 사모님들과 더불어 시작(詩作) 문인회에 다니는 중인데 (사실은 이것부터가 좀 말이 안되는 설정이긴 하지요. 신분이야 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 비싼 수강료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상태로 멀쩡히 계속 다닐 수 있다는 게...) 우연히 김혜자의 노트를 전해주러 그 곳에 들렀던 조관우는, 가수로서 잘나가던 시절의 그를 기억해주는 사모님들과 마주칩니다. 그의 팬이라면서 노래를 요청하시는 사모님들 덕분에, 조관우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스테이크를 얻어먹는 조건으로 작은 콘서트를 열게 되었군요.

사실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면 이것도 말이 안되는 설정이긴 합니다. '늪', '꽃밭에서', '모래성', '님은 먼 곳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실제 가수 조관우 정도의 스펙이라면, 아무리 폭삭 망했어도 그렇게까지 될 리는 없거든요. 하다못해 밤무대 행사만 서너군데 뛰더라도 웬만한 직장인보다 수입이 많을 테니까요. 재벌가 사모님들이 너도나도 팬을 자처할 정도라면, 이 캐릭터 조관우는 실제 가수 조관우보다 못할 게 없다는 이야기인데, 만약 그렇다면 지금처럼 초라하게 살고 있을 리는 없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캐릭터 조관우는 히트곡 하나 없는 무명가수 출신이라고 보는 편이 이치에 맞을 듯합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지 않고 이번 에피소드만을 떼어내서 본다면, 모처럼 기회를 얻어 숨겨졌던 노래 실력을 뽐내고 있는 조관우의 모습에서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쩌면 수많은 조관우가 있겠지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이런저런 현실적 굴레에 갇힌 채,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불행하게 늙어가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파묻혀 버린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명 가수보다 더 노래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유명 작가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유명 화가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업가보다 사업적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다만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서 빛을 못 보고 있을 뿐...

이 세상에는 대체 몇 명쯤의 조관우가 있을까요?
어쩌면 나 자신이, 또는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조관우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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