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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김태원의 구차한 맹세, 큰 위로가 되는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남자의 자격' 김태원의 구차한 맹세, 큰 위로가 되는 이유

빛무리~ 2012. 3. 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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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남자의 자격'을 보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너무나 구태의연해진 우려먹기식의 아이템에 질리면서 눈길이 끌리지 않더군요. 그러나 이번 주에는 젊은이들로 가득찬 강당의 무대에 서서 강연을 하고 있는 김태원의 모습을 얼핏 보는 순간,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내용을 듣기도 전에,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괜시리 따스해지면서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던 겁니다.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어떤 것에서 위로를 받고 즐거움을 느끼는가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제 경우는 한동안 김태원의 '언어'가 그 역할을 담당해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음악도 좋았지만, 음악 중에서도 특히 가사가 좋았습니다. '위대한 탄생'의 멘토를 맡아 백청강, 이태권 등의 제자들을 이끌면서 해주었던 말들도 모두 제 마음에 햇살같은 위로가 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진솔하게 털어놓던 말들이며 [김태원,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남자, 시를 쓰다' 편에서 들려주었던 자작시 [아들에게 보내는 김태원의 詩] 등등,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마디도 버릴 것 없이 제 가슴에 들어와 자리잡았습니다. 

이제 김태원은 '위탄'의 멘토를 맡고 있지도 않고, 토크쇼에도 거의 출연하지 않고, 언제부턴가 '남자의 자격'에서도 좀처럼 언변을 노출할 기회가 없었던 듯 싶군요. 문득 TV에서 그가 강연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저는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아.. 나에게 위로가 필요했구나. 내가 오랫동안 위로받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저는 마른 논바닥이 빗물을 흡수하듯이, 그의 언어가 전해주는 위로에 홈빡 젖어들었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반응을 보면, 역시 지난 번 '롤러코스터' 강연 때와 마찬가지로 김국진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보편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듯합니다. 물론 저도 공감하면서 아주 좋게 들었지요. 특히 꽃들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므로, 남들이 나보다 좀 더 빨리 꽃을 피웠다고 해서 "나는 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에서는 살짝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큰 위로가 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역시 제 코드에 맞는 위로는 김태원의 강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껏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담배꽁초'에 관련해서 그가 23년째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한 가지 결심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군요.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 너무나 사소하고 불필요한 일... 그렇기에 더욱 구차스럽고, 그래서 더욱 지키기 어려웠을 결심... 하지만 1989년부터 지금까지 그를 지켜주고 있는 자신과의 작은 약속 하나...

록그룹 '부활'을 만들고 '희야'를 발표하여 히트시킬 때까지만 해도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청년이었지만, 좌절은 빠르게도 닥쳐왔습니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는 등 스스로의 실수 때문에 비롯된 일도 있었지만, 솔로로 전향한 이승철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김태원에게 깊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왔지요.

더구나 자신이 아내와의 애틋한 추억을 담아 '회상' 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을 때는 그대로 묻혀버렸던 노래가, 이승철이 '마지막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내놓자 온 세상에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충격이 극심했을 겁니다. 저작권자로서 김태원이 직접 리메이크를 허락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당시 술에 취했던지 무엇에 취했던지 나중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니까... 처음에는 배신감에 시달리다가, 나중에는 견디기 힘든 자괴감에 시달렸겠지요.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점점 자신만을 미워하게 되는 그 질곡의 세월 속에서 김태원은 무수히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과연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먼 훗날, 이 시절의 자신을 돌아볼 때, 과연 나는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이것 하나만은 꼭 지키고 있었다고 말할만한 무언가가 있을까?" 그런 고민에 휩싸여 있던 중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한 가지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그 결심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김태원은 먼저 언급했습니다. "얼마나 구차했는지 들어 보십시오!" 뭔가 대단한 결심이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청중의 충격(?)을 줄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담배를 끊는 그 순간까지, 나는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겠다!"

담배를 끊겠다는 것도 아니고, 꽁초를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야 사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무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지키기 어려웠을 결심이지만, 김태원은 지금까지 자신과의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합니다. 불 꺼진 담배꽁초를 양쪽 옷 주머니에 한가득씩 넣고 다니는 꼴이라니 상상만 해도...;; 게다가 한때는 위험한 사고도 있었다지요. 2002년 이승철과 재회하여 '네버엔딩 스토리'로 재기하던 당시, 이승철의 벤츠를 얻어탔던 김태원은 앞좌석 창문을 열고 담뱃재를 털어낸 후 언제나처럼 꽁초를 자기 옷에 넣었는데, 하필 그 불씨가 뒷좌석으로 날아가 시트를 태워 구멍을 냈다는 겁니다. 그 당시 시트값만 해도 500만원 가량이었다는데... 평범하게 재털이에 눌러 껐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겠죠.

하지만 그 무의미한 약속 한 가지를 지키기 위해서, 김태원은 꾸준히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버릴까?... 아니야, 약속을 지켜야지!... 무엇을 위해서?..." 뭐 이런 식의 대화였겠죠..;; 그렇게 자신과 대화해 나가는 동안 점차로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고, 그 자각이 바로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김태원은 말했습니다. "자신과 대화하십시오! 당신이 당신과 대화하기 시작하고, 그게 완성되면, 그 누구도 당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거나 슬퍼하거나 고독한 겁니다. 당신과 친해지십시오!" ...... 많이 어려운 이야기인가요? 프로그램 말미에 청중들과의 짧은 인터뷰가 있었는데, 대부분은 김국진의 강연을 가장 감명깊었다 말했고, 띄엄띄엄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 중 유일하게 김태원의 이름을 언급하는 여학생이 있길래 저는 "아, 저 친구도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졌나보다!" 싶어 반가웠는데, 곧이어 "사실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마지막의 기타 연주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제일 좋았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급실망했습니다. "역시 내 코드가 남들과 많이 다른 게야..;;"

김국진의 강연을 들으면서는 줄곧 "저 사람, 진짜 특별하게 참 잘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군대에 갔을 때, 영어도 못하면서 잘할 거라는 상관의 착각에 부응하여 너끈히 번역병 업무를 수행해 냈고, 경험도 없으면서 또 잘할 거라는 상관의 착각에 부응하여 문선대 MC 일도 척척 해냈다지요? 그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벌써 타고난 비상한 능력 아닌가요? 물론 그만큼 노력도 했겠지만,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고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지기나 했겠지요..;;

시골에 살다가 자신이 천재일 거라고 착각하신 어머니 덕분에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결국 그는 어머니의 착각에도 제대로 부응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식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은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지만,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 착각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지요. 중간에 침체기도 있기는 했지만 김국진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도 꾸준히 자기 분야의 톱클래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는 너무 잘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겠다는 김태원의 맹세가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독한 구차스러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과연 저보다 더 깊은 밑바닥으로 내려가 본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음악적, 언어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자칫하면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묻혀버릴 뻔했던 가련한 천재의 어두운 날의 이야기... 그가 사회에 부적응하며 겪었던 어둠의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끔찍했던가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에, 그 사소함과 구차스러움은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이것은 김태원이 지어서 '청춘합창단'에 헌사한 노래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의 가사 일부분이기도 합니다만, 이번의 강연과도 잘 맞물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그대들이 아무리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해도, 이 모든 순간이 다 이유가 있었음을 나중에는 알게 되리라... 그대들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과 친해지는 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결국 이 모든 것은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제가 나름대로 해석, 요약한 김태원의 강연 주제입니다.

짐작컨대 김태원은 누구보다 깊은 자괴감과 싸워야 했을 겁니다. 날마다 자신이 미워지고, 자신이 미워지는 만큼 삶의 의욕은 줄어들어만 갔겠지요. 그러나 김태원은 이제 말합니다. "당신이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고독한 겁니다. 당신과 친해지십시오!" 그토록 미워했던 이유는 자기 자신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슬프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얼핏 생각하면 어려운 것 같지만, 아주 사소하고 구차스러운 약속 하나만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결코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는 (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생각에 잠깁니다. "과연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만큼이나 사소하고 구차스러운 약속을 나의 생활 속에서 찾아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까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고..." 작심삼일도 못 버틸 게 뻔한 어려운 것으로 과욕을 부리지 말고, 가장 사소하고 구차스러운 것으로 찾아보려고 어젯밤부터 줄곧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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