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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 정두홍 감독의 영화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생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놀러와' 정두홍 감독의 영화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생

빛무리~ 2012. 3.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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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감독 정두홍... 한국 액션 영화사에 큰 획을 긋고, 이미 전설이 된 그 사나이가 '놀러와'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이제껏 스턴트맨이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는데,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네요. 평생토록 육체적, 정신적 통증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동료 후배들에 대한 염려와 죄책감으로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는 그의 직업은, 상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고통스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은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정두홍의 삶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의 어린 시절을 물어 오면, 정두홍은 항상 "나는 꿈이 없었다" 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작은 시골 마을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에게 있어,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치였습니다. 자식을 공부시킬 돈이 없었던 부모님은 초등학교만 졸업시킨 후 곧바로 농사일을 가르칠 생각이셨기 때문에, 정두홍은 중학교에도 못 갈 뻔 했답니다. 누님들이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하여 중학교에는 입학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만 졸업하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학교에 다녔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커녕 아무런 목표의식도 가질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마을에 태권도장이 들어왔고 (고등학교도 누님들의 도움으로 갈 수 있었던 걸까요..;;) 거기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정두홍의 삶에는 처음으로 꿈과 목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외롭고 삭막하던 소년의 가슴을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었던 그 소중한 꿈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함께 출연한 김보성이나 이상인은 액션 배우이면서도 갖가지 사업에 손을 대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삶을 살아왔지만, 정두홍은 오직 외길 인생만을 고집하며 걸어왔지요.

정두홍 자신도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아찔한 사고와 부상을 수없이 겪었지만, 어느덧 선배이며 감독의 입장이 되고 보니 지금은 후배들의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심한 듯 보였습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촬영 당시, 20여 차례를 반복하여 불붙은 드럼통 위에 떨어져야 하는 배역이 있었는데, 정두홍은 그 고된 역할을 맡은 후배에게 NG 없이 빨리 끝내야 한다고 사정없이 몰아붙였답니다. 사실은 NG가 날수록 더 많이 고생해야 하니까 안스러운 마음에 그랬겠지요. 결국 빠른 시간내에 OK를 받아내기는 했는데, 사실은 6번째 떨어질 때 뼈가 부러졌는데도 참고 견디며 강행했다는 사실을 다음 날에야 알았다는군요.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정두홍은 후배에게 자신있게 말해 주었답니다. "그게 너와 나의 삶이다!" 라고.

하지원이 스턴트우먼 캐릭터를 맡아 열연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그녀가 속한 스턴트맨 팀의 단장 역할로 이필립이 출연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역할의 실제 롤모델이 바로 정두홍이었습니다. 이필립의 유명한 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지요. "나는 밤늦게 걸려온 전화를 잘 못 받아... 자정 넘어 걸려온 전화에 내 첫마디는 '어느 병원이야? 죽었어?'... 거든..." 그런데 이 말은 실제로 정두홍이 평소에 하는 말이랍니다. 밤중에 촬영장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면, 그는 소스라치는 두려움에 떨면서 대뜸 "죽었어? 살았어?" 하고 묻는답니다.

20여 년의 외길 인생을 걸어오는 동안, 그는 함께 일하던 4명의 동료를 떠나보냈습니다. 4명의 시신을 모두 자기 손으로 받아서 화장을 했는데, 특히 '놈놈놈'의 무술감독이었던 故 지중현을 보내고 나서는 몹시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사고가 난 후 충격받은 동료들이 한꺼번에 십여 명이나 일터를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아무리 힘겨워도 천직으로 여기고 굳건한 자부심으로 버텨온 삶인데, 그 때는 어쩌면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극심한 고통과 혼란과 위기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보험의 필요성이 가장 절실한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스턴트맨은 보험 가입 자체가 어렵다고 합니다. 방송이나 영화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보험이 있는데, 스턴트맨은 가장 낮은 급의 보험으로 간신히 구색만 갖추는 정도라서, 정두홍의 경우는 사망보험금이 고작 천만원이라고 하더군요. 대체 얼마나 급이 낮으면... 사람의 목숨을 두고 천만원이라는 액수를 입밖에 내는 것만도 낯뜨거울 지경인데...;; 어쩌다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라도 걸려오면 쌍수들고 환영하면서 동료 스턴트맨들과 함께 적극적인 가입의사를 밝혀보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죄송합니다" 하는 거절의 답변이라지요.

저는 솔직히... (정두홍 감독님이 행여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불쾌하실지도 모르지만)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식의 꿈을 부모가 빼앗아갔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기만도 벅찼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어린 아들에게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농사를 지어라"는 식으로 날마다 강요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육체만 살아있을 뿐 영혼은 차츰 시들어가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고통은,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 일말의 원망으로 남지 않았을까도 싶었는데...

오히려 정두홍은 자신을 불효자식이라고 했습니다. 군입대 전날, 항상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아버지와 마주앉아 눈도 안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저녁밥을 먹는데, 강한 성품의 아버지가 갑자기 흐느끼면서 눈물을 흘리시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순간 처음으로 "아... 저 양반이 나를 사랑했구나!" 하고 느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군요. 애정의 표현은 커녕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맞기만 하면서 자랐던 터라, 자기가 사랑받고 있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거였죠. 어쩌면 아들과의 이별을 앞둔 아버지는 그 이별이 예정보다 훨씬 더 길어질 것을 알고 계셨던 걸까요? 정두홍은 군생활 도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접해야만 했습니다. 뒤늦게나마 사랑을 알았으니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위험한 촬영을 하러 나갈 때마다 항상 가슴속에 아버지의 사진을 품고 다닌다는 정두홍은, 만약 지금 아버지가 계신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저 술 한 잔을 함께 나누면서 "아버지, 사랑해요" 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그런 아픔 때문일까요? 정두홍은 자신의 두 어린 아들을 향해 밤낮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험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묻을까, 스스로 목욕재계를 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을 품에 안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섬세한 남자였나요?)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아빠의 마음이 절실히 느껴져 왔습니다.

제 가슴을 너무도 아프게 했던 것은, 동료 스턴트맨들의 사고사에 대한 죄책감마저 홀로 떠안고 살아가는 정두홍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식을 떠나보낸 또 다른 부모를 만든 거잖아요... 제가... 그 소식을 부모님께 전해 드려야 하는데, 도저히 못하겠어서 다른 사람에게 대신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죄책감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심하게 갉아먹는 것인지를 저도 익히 알고 있는데...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네 번이나 닥쳐왔던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그는 도대체 어떻게 버텨낸 걸까요?

정두홍은 스스로를 '겁 많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팀원들이 다칠까봐도 두렵고, 매일처럼 포기하고 싶어지는 자기 자신도 두렵다고 했습니다. 최근 들어 스턴트맨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는 환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만류합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하고 폼나는 직업이 아니니까, 좀 더 신중히 생각하라고 권유하는 것이죠. 자신이 지나온 24년간의 스턴트 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너무 아팠다" 고 정두홍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파도 누군가는 맡아서 해주어야 할 일이지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둠 속에서, 육신의 고통과 마음 속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며, 타인들을 빛나게 해주기 위해, 그리고 훌륭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불사르는 스턴트맨의 인생이야말로, 그 어떤 영화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액션 장면이 나오면 그냥 무심히 넘겨 버렸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큰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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