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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픽션' 하정우와 공효진의 연기가 살린 영화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러브픽션' 하정우와 공효진의 연기가 살린 영화

빛무리~ 2012. 3. 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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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와 공효진의 이름을 믿고, 개봉하자마자 '러브픽션'을 보았습니다. 과연 하정우와 공효진의 후덜덜한 연기력이 이 영화를 살렸더군요. 그들이 아니라 다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면 별로 가망이 없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영화 자체의 퀄리티는 높지 않습니다. 연애를 소재로 만든 영화들은 보통 고백하기 이전의 설레는 감정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되기까지의 풋풋한 시간들을 주로 다뤘다면, '러브픽션'은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연애를 오래 지속한 커플들이 겪어 나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제작진 측에서는 주장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물론 영화가 아니라 가요이긴 하지만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발표된 시점이 1992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입니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그 당시부터 오래된 연인들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은 밖으로 분출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며, 지금껏 제가 보아 온 영화 및 연극, 드라마만 해도 그런 내용을 담은 것들이 수두룩했지요. 하정우와 공효진의 자연스럽고 출중한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꽤나 식상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공효진은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을 최고조로 발휘합니다. 공효진이 이렇게 예쁜 여배우인 줄은 처음 알았어요. 어떤 옷을 입어도 스타일리쉬해 보이는 마른 체격에 긴 팔다리... 그러면서도 빈약하지 않은 몸매에 얼굴선은 오히려 동그스럼해서 날카롭지 않고... 수입 영화사에서 근무하며 해외 출장이 잦은 여주인공 이희진의 직업 때문인지, 공효진이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세련된 옷을 많이 입고 나오더군요. 덕분에 그녀의 샤프한 스타일이 제대로 살아났고, 덧붙여 솔직하고 쿨하면서도 속깊은 캐릭터 이희진의 품성적인 매력까지 더해지니 정말 멋있었습니다. 

반면 하정우의 남성적인 매력은 이 영화에서 별로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연기자로서의 능력은 다시 한 번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지만... 매력적인 여주인공 이희진에 비해 남주인공 구주월의 캐릭터는 너무 평범하고 그저 그렇더군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남성 캐릭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 영화다운 환타지를 기대했던 여성들에게는 약간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환타지라고는 전혀 없는, 너무 리얼하고 잔인한 현실... 굳이 영화로 확인해야만 할까 싶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 이 영화를 관람할 계획을 가진 여성분들께 해드릴 조언은, 결코 멋진 남자 주인공을 기대하지 말고 마음을 비운 채 관람하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운 좋은 여자분들의 경우는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오히려 옆에 있는 당신의 현재 남자친구가 한층 더 멋있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은 쭉~ 스포일러입니다. 스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 주세요^^) 

 
'개화기 청년'이라는 별명까지 있을 만큼 말투와 행동 방식이 옛스럽고, 사고 패턴이 고지식하고, 대충 나름대로 순수한 31세의 무명 소설가 구주월... 수년간 사귄 여자친구(유인나)와 헤어진지 얼마 안 되었으면서도 마치 모태솔로인 것처럼 외로워하며 또 다시 이상형의 여자를 찾아 헤매던 중, 외적 스타일 좋고 성격 쿨한 멋진 그녀 이희진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하고 맙니다. 개화기 청년답게 굉장히 고전적이면서 촌스러운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그 투박한 순수함에 끌린 희진은 어렵지 않게 마음을 열고 구주월의 구애를 받아들였지요. 바야흐로 꿈처럼 행복한 연애가 시작됩니다. 사랑아, 너를 위해서라면 불타는 화산에라도 뛰어들겠노라!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경험이 있는 희진은 어차피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언제라도 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지만, 구주월은 연애가 처음도 아니면서 심지어 깨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또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영원히 변치않을 사랑을 맹세합니다. 그러더니만 오히려 자기가 먼저 시들시들해지는군요. 분명히 먼저 좋아하고 먼저 고백하고 먼저 매달린 것은 자기였으면서, 막상 가까워지고 나니 그녀가 꿈에 그리던 선녀가 아니라 코 후비고 똥 싸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데에 점점 질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불같던 열정이 식어가면서 차츰 연애에 권태를 느끼는 남자의 모습... 하정우의 연기가 너무 섬세하고 리얼해서 정말 진짜 같아요..;; 

하지만 쿨하고 속깊은 그녀 희진은 점점 무심해지고 속좁게 구는 구주월의 태도를 모두 이해하고 받아줍니다. 제가 보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이희진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참아주는 것처럼 보였어요. 처음으로 잠자리를 함께 하던 날, 여자의 겨드랑이는 무조건 하얗고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구주월은 그녀의 시커먼 겨드랑이털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고교시절까지 미국 알래스카에서 살다 온 희진은 그 곳 사람들의 생활 습관처럼 여전히 겨털을 제모하지 않고 자연스런 상태 그대로 지내는 여자였거든요. 정말 수북하고 리얼하던 공효진의 겨털 분장..;; 여자의 겨털에 충격받은 남자, 그런 남자의 모습에 기분상한 여자... 사랑은 잠시 위기에 처하나 싶었지만, 곧바로 사과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날 밤은 예정대로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사랑에 금이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구주월이 우연히 희진의 대학 동창(개인적으로는 알고 지낸 적도 없었던 남자 동창)을 만나 듣게 된 그녀의 과거였습니다. "사진학과의 그녀는 수영장에서 '겨털녀'로 명성을 날렸어요. 유명한 이유는 겨털 때문만이 아니었죠.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남자들의 홀딱 벗은 누드사진만 출품하는 거예요. 모델이 되어준 남자들과는 꼭 한 번씩 잔다고 소문이 자자했죠. 그래서 모델이 되겠다는 남자들이 줄을 섰고, 남자친구도 무척 많았어요. 그래서 별명이 '스쿨버스'였죠. 누구나 한 번씩은 탄다고 말이에요!"

"사실이 아닐 거야... 못난 놈들이 그녀에게 대쉬하다가 거절당하니까 억하심정으로 지어내서 퍼뜨린 말일 거야..." 애써 자신을 달래보려 하지만 '스쿨버스'라는 그녀의 별명이 늘상 머리에서 맴돌며, 이미 구주월의 마음은 그녀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처럼 굴더니만, 나중에는 그녀가 다정한 연애편지 한 장 받고 싶다는데도 명색이 글쟁이면서 편지 한 장 쓰는 게 뭐 어렵다고 바쁘다면서 거절해 버릴 정도가 되었네요. 심지어 이 남자는 낚시터에서 마주친 낯선 여인에게 미친놈처럼 들이대며 키스까지 해버릴 정도로 막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을 바에야 차라리 그녀에게 솔직하게, 흥분하지 말고 담담한 태도로 진실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편이 나았으련만...

"산다는 건, 평생 자기를 향한 타인들의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 (이희진의 대사 중에서)

물론 그 추악한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을 전공하던 희진이 주로 남자의 누드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돈 받고 일하는 전문 모델이었을 뿐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 전시회에 주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려놓은 자신의 누드사진이 다른 남자들의 누드사진과 나란히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 구주월은 끝내 폭발하고 맙니다. "자기 사진 몇 장 출품해도 되지?" 하고 그녀가 물었을 때, 분명 자기 입으로 "그래, 출품해!" 라고 승낙했으면서 말이죠.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나는 네 스쿨버스의 몇 번째 손님이냐고!" 흥분하여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남자에게, 여자는 아주 차분하고 독한 거짓말로 응수합니다. "속시원히 대답해 줄게. 당신은 서른 한 번째야."

벌써 스포일러 유출은 거의 다 해버린 상태지만, 그래도 최후의 결말쯤은 언급하지 않고 남겨 둬야겠군요. 영화는 시종일관 구주월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중간중간에 그가 쓰는 연작소설의 내용이 마치 60년대 영화처럼 제작되어 액자 형식으로 담겨있는 점이 독특합니다. 초반에 밝혔듯이 별로 수준있는 영화는 아니고, 약간은 신선한 면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나 주제는 식상한 편이에요. 그러나 하정우와 공효진의 리얼한 생활 연기는 진짜 명품이기 때문에, 최소한 극장을 나올 때 돈 버렸다고 생각하며 후회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네요. 가벼운 터치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부담없이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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