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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2' 김창기 편, 사라져버린 쓸쓸함의 감성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2' 김창기 편, 사라져버린 쓸쓸함의 감성

빛무리~ 2012. 2. 2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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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의 청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룹 '동물원'의 리더였던 김창기씨가 이번 주의 전설로 초대되었습니다. 당시의 명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의외였습니다. 현재 '동물원'은 사실상 해체된 그룹이라고 봐야 하며, 메인 보컬이었던 김광석은 오래 전에 사망했고, 다른 멤버들은 현재 모두 가수가 아닌 다른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제껏 전설 자리에 초대된 인물들이 평생 전문 음악인으로 활동하며 젊은 가수들의 귀감이 되어주는 선배 뮤지션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전설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김창기씨의 현재 직업은 소아전문 정신과 의사라고 합니다. (방송 연예 블로거인 저는 보통 리뷰를 쓸 때 연예인의 이름 뒤에 '~씨' 자를 붙이거나 존칭을 쓰지 않는 편인데, 이분은 연예인이 아니라서 왠지 조심스럽군요..;; )

하긴 '동물원'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당시에도 직업 가수는 김광석 한 명뿐이었고, 다른 멤버들은 따로 생업이 있었다지요. (활동 초창기에 김창기씨는 물론 '의대생' 이셨습니다. 그가 만든 노래와 꼭 어울리는, 창백한 얼굴과 지적인 분위기의 청년일 거라고 상상하며, 당시 어린 소녀였던 저는 그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었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ㅎㅎ) 어딘가 아마추어틱하게 느껴질 만큼 순수했던 그들 음악의 특성은 어쩌면 거기에서 비롯되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뭉쳤을 뿐, 노래로 돈버는 데 목숨 걸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유일한 직업 가수였던 김광석이 가장 먼저 탈퇴하여 솔로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아무래도 혼자서만 다른 입장이니까 버티기 힘들었겠죠.

1996년 김광석이 사망했을 때, 김창기씨는 정신과 의사로서 친구의 아픔을 알지 못했고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몹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이번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해서도 끊임없이 김광석을 떠올리며, 그를 향한 짙은 그리움을 숨기지 못하더군요. "광석이가 불렀던 '거리에서'는 소주 마시고 점퍼 입고 좁은 골목길을 걷는 분위기였는데, 성훈씨의 '거리에서' 는 단조를 많이 뺐기 때문에 훨씬 밝은 느낌이네요. 와인 마시면서 슬픔을 절제하는 듯한 멋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울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신용재의 '기다려 줘'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노래를 만들던 날, 광석이가 아주 좋아하면서 솔로곡으로 달라고 하기에 선뜻 승낙했는데, 녹음 당일날 보니까 자기 스타일대로 편곡해서 리듬에 바운스를 넣었더라고요. 나는 지금 용재씨가 부르신 것처럼 정박자로 가자고 했었는데... 그 때 내 말을 들었더라면 광석이한테 히트곡이 하나 더 생겼을텐데...ㅎㅎ" 웃으며 하는 농담이 왜 그리도 쓸쓸하게 들리던지요.

알리는 세 곡의 노래를 메들리로 편곡하여 불렀습니다. 그 중 '변해가네'는 원곡을 김창기씨가 불렀던 것이고 '일어나'와 '나의 노래'는 김광석이 불렀던 것이죠. 알리의 노래를 듣고 김창기씨는 감동한 듯 말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광석이 노래와 제 노래를 섞어서 너무 아름답게 표현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정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불렀을 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노래는 가사 외우기가 무척 힘들거든요. 광석이는 손바닥에 가사를 써놓고 컨닝하면서 불렀었는데... ㅎㅎ 이정씨 한 번도 안 틀리고 정말 잘하셨습니다!" 

결국 우승은 이정에게로 돌아갔는데, 김창기씨는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김광석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정씨는 약간 사나운 김광석 같았어요. 광석이 별명이 '미친 반 토막'이었거든요. 그보다 더 미쳐서 불러주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이렇게 김창기씨가 시종일관 김광석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번 주 '불후의 명곡2'은 마치 '김광석 제2탄'이 된 듯한 분위기였어요. 지난 번엔 그의 절친이었던 박학기와 한동준을 초대하여 김광석 특집을 마련했었는데, 같은 그룹의 동료였던 김창기씨가 추억하는 그는 또 약간 다른 느낌이었네요. 짧은 삶 속에서 주옥같은 명곡을 참 많이도 남기고 떠난 김광석이 새삼 그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보고 나서 어딘가 허전해지는 이 마음은 뭘까요? 내가 원했던 것과는 좀 다른 것을 본 듯한 아쉬움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좀 느껴졌습니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가 '동물원'의 음악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 특유의 쓸쓸한 감성 때문이었더군요. 김창기 작사 작곡의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가슴 깊은 곳까지 잔잔하게 스며드는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저는 그 아릿한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신세대 가수들은 그 쓸쓸한 노래들을 모두 통통 튀는 분위기의 밝은 노래들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아주 재미있기는 했습니다. 그 중에도 강민경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는 개성 만점이었어요. 얼마 전 '불명2'에서 하차한 허각을 특별 게스트로 초대하여 코믹한 뮤지컬 같은 분위기의 무대를 꾸몄지요. "너는 두 아이의 아빠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라고 강민경이 개사해서 노래하자, 곧이어 허각이 유모차를 밀고 나타났는데, 그 유모차 안에는 두 개의 아기 인형이 나란히 눕혀져 있었습니다. "민경아... 나 지난 달에 쌍둥이 낳았어!" 갑자기 쌍둥이 아빠가 되어버린 허각 때문에 모두가 배꼽을 잡았던 신나는 무대였어요.

그나마 원곡의 감성을 얼추 비슷하게 표현한 사람은 '잊혀지는 것'을 부른 임태경 뿐이었지요. 잔잔하게 시작한 도입부는 원곡의 분위기와 상당히 흡사했는데, 진행될수록 점점 더 음이 높아지며 임태경 스타일의 애절하고 열정적인 노래로 변해가더군요. 제가 워낙 임태경의 노래를 좋아하는지라 새로운 분위기도 참 좋기는 했지만, 역시 원곡의 쓸쓸함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쓸쓸한 노래가 이렇게 즐거워질 수도 있군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제가 만든 슬픈 노래를 희망적인 노래로 바꿔 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김창기씨는 그저 칭찬 일색이었지만 저는 좀 아쉽더군요. 그 노래들을 만들 당시의 김창기씨가 20대 초중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출연 가수들의 나이가 어려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곡 특유의 쓸쓸한 감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유는 뭘까... 어쩌면 그 분위기를 오롯이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창기씨 본인과 세상을 떠난 김광석, 단 둘밖에 없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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