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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백진희의 서글픈 짝사랑, 너를 어쩌면 좋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백진희의 서글픈 짝사랑, 너를 어쩌면 좋니?

빛무리~ 2011. 12. 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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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하이킥3'의 백진희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캐릭터입니다. 그녀들은 전형적인 88만원 세대, 가난한 청춘이지만 언제나 밝은 얼굴로 힘차게 살아가는 아가씨들이죠. 그런데 제가 '지붕킥'에 빠져있을 당시 리뷰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예쁘고 사랑스런 황정음을 무척이나 싫어했더랬습니다. 초반에 어필되었던 된장녀스런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쇼핑 중독으로 인해 스스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씀씀이를 자랑하던 황정음은, 하다못해 신세경의 식모살이 첫 월급 50만원을 빌려다가 자기 카드값을 메꾸고는 그것을 갚지 못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

매달 날아오는 카드 청구서는 그녀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공포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 욕심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은 정말 짜증스러웠습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얼마나 피곤해지는지를 경험상 잘 알고 있기에, 저는 결코 황정음의 캐릭터를 예쁘게 보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백진희에게서는 그런 비호감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군요.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가 가진 범위 내에서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며 알뜰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으니,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응원할 지언정 싫어하거나 치를 떨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백진희 캐릭터가 너무 궁상맞아서 싫다고도 하지만, 누구인들 가난에 장사 있나요? 김태원의 말처럼 '시간에 속고' 있을 뿐, 그녀에게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런데 요즘 '하이킥3'에서 윤계상을 향한 짝사랑이 절정에 달하며, 백진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불쌍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계상-진희 라인을 예상하지도 않고 응원하지도 않는 저로서는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그녀의 짝사랑이 너무 깊어지지 말기를, 그래서 진희가 너무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었는데, 역시 잔인한 김병욱의 시트콤은 저의 소망과 반대로 진행되어 갑니다. 박하선을 혼자 좋아하는 윤지석(서지석)을 도와준답시고 쫓아다니며 코디해 주다가 문득 지석의 순수한 매력에 살짝 반했는지 "혹시 저랑 사귈 생각은 없으시죠?" 라고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던 그 때만 해도, 계상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이토록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같은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볍게 시작했던 백진희의 짝사랑은 점점 더 깊어지고 진지해졌습니다.

윤계상은 누구에게든 기대고 싶은 백진희의 고달픈 삶 속에 하늘이 내려 준 천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보건소에 취직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은 윤계상에게 힘입은 바가 컸지요. 임시직원을 채용한다는 정보를 준 사람도, 일부러 신경써서 도움이 될만한 참고서를 사다 준 사람도, 언제나 곁에서 힘내라고 격려해 준 사람도 계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도와줬으면 취직이 된 후 백진희에게 한 턱 내라고 요구해도 모자랄 판인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윤계상은 오히려 취직을 축하한다고 예쁘게 포장된 빨간 지갑까지 선물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중에 백진희가 대기업에 지원하여 면접을 보러 갈 때도, 서운해하기는 커녕 으쌰으쌰 응원하며 빨간 지갑 한가득 행운의 주문까지 걸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아무도 속지 않는 윤계상의 썰렁한 농담에 매번 속아넘어가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좋으련만 그 때마다 파르르 떨고 약올라하면서 눈흘기는 것이 그녀의 사랑입니다. 윤계상처럼 매너 좋은 사람에게 '개매너' (혹은 계매너? ㅎㅎ) 라는 별명까지 붙여 놓고는 혼자 얄미워하고 혼자 속끓이는 것이 그녀의 사랑입니다. 칭찬 댓글 일색인 윤계상의 블로그에 몰래 들어가서 악플이나 잔뜩 달아놓고 나오는 것이 그녀의 사랑입니다. 사실은 자기 손에 움켜쥐고 싶지만 그 남자는 너무 멀리서 빛나는 별이기에, 그런 유치한 행동들밖에 할 수 없는 백진희의 짝사랑은 그저 서글프기만 합니다.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그녀의 지갑 속은 여전히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아끼던 빨간 니트 스웨터를 풀어 그 남자의 장갑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선물을 건네줄 기회조차 그녀에겐 허락되지 않았군요. 간호사들이 준비한 최고급 양가죽 장갑 앞에서, 입던 니트를 풀어 손뜨개질로 만든 백진희의 장갑은 한없이 초라합니다. 물론 윤계상에게 전달했다면 그는 절대 초라하다 생각지 않았겠지만... 정말 초라한 것은 장갑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움츠러드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다못해 옆집 식구들과 선물을 나누려고 트리 밑에 놓아 두었던 그 빨간 장갑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백진희의 손에 되돌아왔습니다. 차라리 다른 누구에게 전해졌다면 그녀의 간절한 사랑이 돌고 돌아서라도 윤계상에게로 가 닿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이라도 품어 볼 수 있으련만, 매섭게 튕겨지듯이 곧바로 되돌아온 사랑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서러운 마음 같아서는 울어도 시원치 않으련만, 그저 담담히 웃으며 자기 손에 그 장갑을 끼어보는 백진희의 모습이 얼마나 가여운지 하마터면 제가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치과 치료에 트라우마가 있는 윤계상을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서 치과에 데려가고, 부들부들 떠는 그 손을 꼭 잡아주는 모습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손의 떨림과 따스한 감촉도 어차피 아픔으로 남을 테니까요. 

66회에서 윤유선의 성화에 못이긴 윤계상과 박하선은 어색한 맞선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윤지석과 백진희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급히 맞선 장소로 차를 몰고 쫓아갔지만 놓치고 말았군요. 속상한 두 사람은 포장마차에 마주앉아 진탕 술을 마셨는데, 똑같이 짝사랑에 상처받은 영혼들이지만 각자 집으로 돌아와서의 태도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윤지석은 대놓고 윤계상에게 "형, 빨리 르완다로 가버려. 지금 당장 르완다로 가란 말이야!" 하면서 주정을 부리더군요. 의좋은 형제지만 윤지석의 마음속에는 너무 똑똑하고 잘난 형에 대한 자격지심도 있었겠지요. 그러니 자칫하면 박하선이 형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떨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토록 편하게 주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윤계상이 그의 친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진희는 감히 박하선에게 주정을 부리거나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녀에게 하선은 피붙이도 아니고 그저 아는 언니일 뿐이니까요. 처음에는 맨손으로 빌붙어 살기 시작했다가 백수 신세를 면한 지금은 방세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낸다고 해도 시세에는 턱없이 모자란 적은 액수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감지덕지 눈치를 보며 신세지는 처지인데 백진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윤계상과 만나고 돌아온 박하선이 현관을 들어서며 "진희야, 나 왔어" 하자, 백진희는 급히 눈물을 닦고 미소지으며 대답합니다. "왔어요, 언니?"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캐묻고도 싶었으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단지 이 말 뿐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미소짓던 백진희의 얼굴, 그 눈에 반짝이며 맺혀 있던 눈물에 가슴이 저립니다. 가여운 그녀를 어쩌면 좋을까요? 얼마나 더 긴 시간을 아픔 속에 견뎌내야만 눈물이 사라지고 행복한 날이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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