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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실려' 임재범의 데스페라도, 그 따스한 자유로움에 빠져들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바람에 실려' 임재범의 데스페라도, 그 따스한 자유로움에 빠져들다

빛무리~ 2011. 10. 1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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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바람에 실려'가 3회부터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음악 여행'의 본질에 맞지 않게 너무 예능 위주로만 나가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이 핀트가 맞지 않아서 무척이나 불안했었지요. 특히 2회 방송분을 거의 채우다시피 했던 임재범의 잠적 논란은 최악이었습니다. 저는 그 또한 제작진의 의도적 설정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만, 설령 실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굳이 그토록 길게 편집하여 방송에 내보내서는 안되는 거였습니다. 왜냐하면 재미도 감동도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전혀 닮지도 않은 임재범의 초상화를 괴발개발 그려 가지고 다니면서, 마주치는 미국인들에게 "이 사람을 못 보았느냐?"고 묻는 설정은, 진짜 창피할 정도로 어설프고 황당했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예능을 접고 진지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편이 훨씬 나을 듯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어요. 어차피 '바실' 시청자들은 배꼽 빠지는 웃음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바람에 실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TV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음악을 통한 감동을 원하는 것이고, 임재범의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적한 임재범을 찾아서 무슨 시골 동네도 아니고 그 넓은 미국 땅을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어느 공원 벤치에서 우연히 찾았다는 식의...;; 그런 황당한 설정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훌쩍 건너뛰고 곧바로 키 클럽(Key Club)에서의 '록 인 코리아(Rock in Korea)' 공연으로 넘어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꿈의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었음에 더없이 흐뭇해하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임재범의 모습을 보니, 2회 방송을 시청하는 내내 불만 가득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더군요. 임재범의 '록 인 코리아'를 듣는 기분이란, 마치 백마를 타고 거침없이 황야를 질주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드디어 감을 잡은 듯한 제작진, 3회 방송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임재범의 노래를 들려주며 시작합니다. UC 버클리에서 강연을 마치고 부른 노래였는데, 방송에서는 강연보다 노래 부분을 먼저 보여준 것입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노래가 들려오는 순간, 자동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도는 최고치로 솟아올랐거든요! 지금까지 수백번이나 들었던 '너를 위해'지만, 그 머나먼 곳에서, 미국인 대학생들로 가득 들어찬 강당에서 노래하는 임재범의 모습은 또 달라 보였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하나될 수 있음에 행복해하는 그의 마음이 저에게도 벅차게 전해져 오더군요. 언제나 슬프고 처절하게 들리던 '너를 위해'의 가사가 오늘은 기쁨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죠. 사랑 때문에 아무리 힘겹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기쁨이니까요.

버클리 공연을 준비하며 임재범은 '바실' 동료들에게 음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영호의 노래를 들은 임재범은 이렇게 말했지요. "일단 소리는 굉장히 좋습니다. 하지만 김현식씨가 부른 노래는 그분만의 컬러로 만들어진 것이고, 영호씨의 노래에는 또 다른 영호씨만의 해석이 필요한 거예요. 영호씨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야만 듣는 사람들과 교감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아, 듣고 보니 알겠더군요. 김영호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며 저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목소리는 좋지만 왠지 겉멋으로 가득찬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임재범은 단 한 번 듣고서는 김영호의 취약점을 정확히 짚어냈던 것입니다.

나이 어린 이홍기와 이준혁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감'을 고취시켜 주었습니다. 임재범의 명곡 '고해'를 혹시 자기가 잘못 불러서 망칠까봐 염려된다는 이홍기에게 임재범은 말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안 돼! 음악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이야. 네 눈앞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다 해도 기죽을 필요가 없어. 그 사람도 너와 똑같이 음악하는 사람일 뿐이야" 이렇게 홍기를 격려한 뒤, 쟁쟁한 가수들 틈바구니에서 잔뜩 얼어 있는 이준혁에게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준혁이도 자신 있으면 '비상' 한 번 불러 봐!" 뜻밖의 제안에 당황하는 준혁을 보며 임재범은 다시 격려했습니다. "이건 창피한 게 아니야. 그대에게 그 곳은 스테이지가 아니라 경험의 장소이고 배움의 장소가 되는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그 말들은 이홍기와 이준혁만이 아니라,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임재범의 가르침 속에는 거침없는 자신감과 더불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UC 버클리라는 같은 장소에서 노래를 하겠지만, 누군가에게 그 곳은 가수 인생 최고의 행복한 공연을 펼치는 스테이지가 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곳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배움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반드시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규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각자 다른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주눅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재범은 그 자유로움으로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대선배 앞에서 바짝 긴장한 이홍기는 마음의 굴레에서 쉽게 자유로워지지 못했습니다. 그가 연습하는 소리를 들은 임재범은 말했습니다. "남들은 잘했다고 박수치지만, 내가 듣기엔 아니야. '이렇게 불렀다가 선배님한테 혼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노래 속에서 느껴져!" 선배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이홍기는 그야말로 일취월장을 했더군요. 버클리 강당에서 열창한 '고해'는 완전히 이홍기의 노래였습니다. 호흡 등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진심어린 감정이 그대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충분한 감동과 떨림이 있었습니다. 대성공입니다.

연기자 아닌 가수로서 첫 무대에 서는 이준혁은 긴장이 지나쳤습니다. 좀처럼 첫 박자를 치고 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전주만 서너 번 반복되다가 공연이 중단되는 실수까지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임재범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발짝 더 앞으로 나오도록 그를 이끌었습니다. 관중들로 하여금 '이준혁'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도록 유도한 것이지요. 한없이 움츠러들던 이준혁은 그렇게 임재범이 내밀어 준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아, '비상'의 노래 가사가 어쩌면 그렇게도 잘 어울릴까요? 이준혁이 노래하는 동안 임재범은 끊임없이 청중의 호응을 유도하며 격려했고, 이준혁의 힘찬 목소리에 청중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역시 대성공입니다.

후배들의 무대를 이처럼 성공적으로 이끌어 준 임재범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나서서 '데스페라도(Desperado)' 를 노래했습니다. 데스페라도를 단순하게 번역하면 '무법자'가 되겠으나, 반드시 그 의미라고만은 볼 수 없겠군요. 프랑스어로 해석해 보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병사)'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살아나가는 사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느낌이 그러니까요..ㅎㅎ

'데스페라도'를 부르기 전에 임재범은 이 노래가 자신의 인생과 흡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과 대비시켜 생각해 보니, 이 노래의 가사 또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오랫동안 방황했군요. 당신은 대하기 힘든 사람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자유, 자유라는 것은 그저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일 뿐...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겠다는 생각이 당신의 감옥입니다... 이제 그만 제 자리로 돌아와서 문을 열어요.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누군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마음을 열어요"

'데스페라도'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극도의 자유를 체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자유를 만끽해 본 사람이라야, '데스페라도'라는 노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람에 실려'를 여행하는 내내 임재범이 풍기던 자유로움의 기운은 더없이 강렬했지만, 그것은 젊은이의 객기어린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방황과 고독을 체험하며, 거칠기 짝이 없는 자유의 강을 힘겹게 건너 온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더없이 원숙하고 평화로운 자유였습니다. 그 따스한 자유로움에 깊이 빠져들 수 있어서, 노래를 듣는 동안 저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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