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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故 김광석 콘서트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 故 김광석 콘서트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다

빛무리~ 2011. 10. 1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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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불후의 명곡2'가 故 김광석의 노래들로 꾸며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더 컸습니다. 제가 김광석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죠. 혹시 원곡의 느낌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훼손까지는 아니더라도 원곡의 감동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무대들을 보게 되면 저절로 실망과 허탈감이 밀려들까봐 염려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청한 결과는 대략 85% 가량의 감동이었습니다. 아주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라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죠.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에 잠길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노래를 즐기면서도 가수들의 콘서트장을 찾는 일은 거의 없는 저이지만, 김광석 콘서트에는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추모 공연에 갔었다는 게 아니라 그가 살아있을 때, 소극장에서 혼자 연주하고 노래하던 그 장소에 갔었습니다. 흑백사진처럼... 정말 오래된 기억이네요. 저와 제 친구는 다행히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조그만 소극장이 어찌나 꽉꽉 들어찼는지 계단이며 바닥에 주저앉아 관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광석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시끌시끌하던 소극장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어쩌면 스탭 한 명도 없이 자기 손으로 직접 마이크와 음향기기를 조절하면서 부시럭부시럭...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혼자 공연 준비를 하더군요. 그래봐야 지극히 간단한 작업이라서 금방 끝났습니다. 어차피 기타 한 대와 하모니카 하나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소극장 안에 울려퍼지던 그의 쓸쓸한 목소리...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사람이 많은지 적은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 눈앞에서 노래하는 그가 있었고, 그를 보면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첫 곡이 끝나고 나서 김광석이 머뭇거리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냥 몇 분 정도만 오실 줄 알고... 아무한테 도와달라고도 안 하고 저 혼자서 준비했는데... 끝나고 나면, 찾아와 주신 분들하고 맥주라도 한 잔 같이 할까 했는데... (여기서 와르르 웃음) ... 그런데 너무 많이 오셨네요..;;" 그 때는 설마 농담이겠지 했습니다. 그 때 벌써 김광석은 상당한 네임밸류를 갖춘 뮤지션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생각해 보니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광석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모르고 살았던 듯해요.

'불후의 명곡2 - 김광석' 편의 시작은 그의 친구였던 가수 박학기가 열어 주었습니다. 김광석과는 전혀 음색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김광석 노래의 느낌이 절묘하게 살아나더군요. 박학기의 '거리에서'를 듣는 순간부터, 김광석 특유의 쓸쓸한 감동이 생생하게 그대로 전해져 오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마친 후에도 박학기는 자문위원석에 앉아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떠나보낸 친구를 추억하며, 눈물 속에 웃음을 더해 주었습니다. 

경연에 참가한 가수들 중, 김광석 특집의 의미를 최고로 살려낸 가수는 단연 홍경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첫 순서로 등장하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불렀는데, 목소리와 분위기등 모두가 김광석의 느낌을 거의 그대로 뿜어내고 있더군요. 모창을 하거나 흉내를 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홍경민은 노래를 하기 전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광석이라는 사람의 노래에서 제가 느꼈던 감동을... 관객들에게 그 감동을 전달해 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최대한 김광석씨가 떠오를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수로서 너무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입니다" 홍경민의 그러한 마음은 노래를 통해서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그가 원했던 대로, 최대한 김광석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무대가 홍경민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강민경의 우승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홍경민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녀도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과잉으로 음정도 불안하고 가사도 틀리는 등, 노래 자체의 질만 놓고 보면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떨리는 노래 속에서 한 톨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졌거든요. 김광석 선배와 그의 노래를 너무나 좋아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할 때부터, 스물 두 살 강민경의 표정에는 설렘과 흠모의 감정이 듬뿍 묻어났습니다. 가수를 꿈꾸던 소녀시절,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순간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는 그녀... 저 역시 그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그녀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 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김광석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마지막 부분 가사입니다. 감정에 북받쳐 흐느끼다시피 하는 강민경의 목소리로 노래가 끝났을 때, 자문위원으로 자리했던 가수 한동준이 말했습니다. (그 역시 박학기와 더불어 김광석의 절친이었다더군요)

"김광석의 노래는 거의 다 그렇지만, 이 노래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광석이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녀와 단둘이 한 방에서 밤을 지새게 된 겁니다. 여학생은 잠들고, 광석이는 한쪽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답니다. 시간이 흘러서 어슴프레하니 동이 터 오고, 겨울이라 유리창에는 하얗게 성에가 끼었는데, 광석이는 그 위에 손가락으로 '널 사랑해' 썼다가, 여학생이 행여 잠 깨어 볼까봐 얼른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그랬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가슴이 아플까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회가 왔다면 자기 마음을 표현이라도 좀 해 볼 것이지... 심지어 그녀의 잠든 모습에 눈길조차 두지 못하고, 오히려 고개 돌려 창 밖만 내다보며 혼자서 꼬박 밤을 지새웠다니... 유리창 성에 위에 쓴 글씨조차 들킬까 두려워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니... 그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김광석의 마음은 지극한 외로움과 자괴감이었습니다. 아까도 콘서트 일화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평생 모르고 살았던 듯 싶습니다.

한동준은 또 말했습니다. "김광석은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키도 작았고 얼굴도 잘생기지 못했고, 실연도 많이 당했죠. 그런 상처받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니까, 자기가 아픈 만큼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 그랬었나... 하지만 얼마든지 자신을 더 귀하게 여겨도 좋았을 사람인데, 그토록 움츠린 채 살다 갔다는 사실은 역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니 '사랑했지만'의 가사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더군요.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우현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그 노래를 들으며 저는 중얼거렸습니다. "조금은 더 다가서도 괜찮았을 텐데... 가엾은 사람!"

이번 주에도 알리는 역시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었지만, 선곡 자체의 임팩트가 크지 않아서일까 제게는 큰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허각, 신용재, 임정희의 무대에서는 김광석의 특유의 정서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학기, 홍경민, 강민경의 무대를 통해서는 충분한 감동을 만끽할 수 있었지요. 누렇게 빛바랜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알싸한 그리움이 지금도 제 가슴에 끝없이 퍼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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