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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2' 순수청년 이성현의 자작 랩에 반하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위대한 탄생2' 순수청년 이성현의 자작 랩에 반하다

빛무리~ 2011. 10. 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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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무표정하고 웃음에 인색하던 근엄한 멘토 윤상이, 이번 주 방송에서는 웬일인지 박장대소하며 웃는 얼굴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참가자에게 먼저 성대모사 개인기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노래 '추억 속의 그대'를 부르며 가사를 엉망진창으로 틀려버린 참가자에게, 그래도 가능성을 인정한다며 너그럽게 왕관을 주기도 하더군요. 초반의 딱딱하고 뻣뻣하던 태도에 비하면 어느 새 많이 릴랙스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윤상뿐만 아니라 '위탄'의 멘토들은 방송에 별로 익숙치 않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음악 면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순수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멘토들이 점차로 방송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은,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변신보다도 더욱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윤상이 이선희에게 "누나~" 라고 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승환으로부터 "귀 얇고 팔 싸시다"는 독설(?)을 들었을 만큼, 이번 주에 이선희는 유난히 마음 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참가자의 애원에 못 이겨 몇 차례나 왕관을 주곤 했는데, 윤상도 은근히 그런 이선희를 놀리며(?)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1:1의 상황에서 참가자의 당락을 결정짓는 부담을 피하고 싶었던 이선희는 윤상의 심사평을 중간에 가로채며 "제가 먼저 할게요~" 라고 나섰는데, 그 때 윤상이 능글맞은 웃음으로 애교까지 부리면서 "누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토록 차갑고 근엄해 보이던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윤상을 좋아했었죠. 그의 음악도 좋았지만, 어딘가 시인 류시화를 닮은 듯한 외모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색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되어서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독설가 윤일상에게서도 굉장히 따뜻한 면을 발견할 수 있어 흐뭇했습니다. 21세의 참가자 박지혜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셔서 현재는 이모네 집에서 살고 있다 했습니다. 그녀의 노래 실력은 정말 훌륭했고, 이선희와 윤일상은 그녀의 노래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윤일상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힘내서... 잘 할 수 있죠? 약속~!" 박지혜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그와 허공을 가르며 약속을 나누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일을 겪어야만 했던 소녀에게, 아빠같은 마음으로 따스한 격려를 전해주는 윤일상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제가 '위탄2' 4회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은 22세의 힙합 청년 이성현의 자작 랩 무대였습니다. 처음에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자기 소개와 랩에 관한 설명이 어찌나 장황한지, 말이 너무 많아서 좀 비호감이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말부터 앞서는 사람치고 진짜 실력있는 사람은 거의 못 보았거든요. 그러나 막상 물 흐르듯 거침없이 흘러가는 자작 랩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말 많은 사람은 허울좋은 껍데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저의 편견일 뿐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윤일상의 심사평처럼, 그의 가사에는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개구리는 무슨 개구리, 그냥 개구리지
still 올챙이 without 뒷다리 (난 아직도 올챙이야, 뒷다리가 없어)
큰 사고는 안 쳐도 동전 한 푼이 아까운 시기에 엄마 돈 축내는 팔푼이
망나니 못난이 찌질이 쭈구리~ 이제 바꾸자, 내 꿈 똑바로 보자
솔직히 말해 나 같은 스타일 쌔고 쌨지, 그래서 달라질 거야
(중략)
엄마, 장남 한 번 믿어 봐, 곧 보여줄게, 큰 돈 벌어올게.
얼굴은 돼? 아니 / 키는? 팔십일 / 근데 얼굴이 좀 커. 허벅지도 굵고
노랜 잘 해? 아니 / 랩은? 못 해 / 춤은 좀 춰? 아니
옷은 잘 입어? 좋아는 해 / 돈은? 없어 / 몸은? 뱃살 조금
뭐야, 볼 것도 없는 게 큰 소리는? / 멋없으니까, 멋있어지고 싶어서
돈 없으니까, 돈 벌고 싶어서

오디션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자기를 과대포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합격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때로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실체를 알면서 의도적으로 그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자신의 실체를 깨닫지 못해서 자기가 정말 잘난 줄 알고 그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출연자들에게서 비슷한 모습들을 보아 왔는데, 이성현의 자작 랩은 정말 신선하고 특별했습니다. 그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대중 앞에서 기꺼이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객관적이고 냉정해서, 얼핏 잔인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텅 빈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성현의 랩에는 활력과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그 자신감은 아마도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결코 미래에 대한 확신이란 있을 수 없지요.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용감하게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 깨질 거라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두 팔로 바닥을 힘차게 짚고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셈이니까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이 노래의 가사가 이처럼 잘 어울리는 청년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또 하나 감동이었던 것은, 틈틈이 드러나는 그의 효심이었습니다. 그는 넉넉치 않은 집안의 장남으로서 항상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듯 싶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홀어머니가 아니실까 추측됨...) "큰 사고는 안 쳐도 동전 한 푼이 아까운 시기에 엄마 돈 축내는 팔푼이~ 망나니 못난이 찌질이 쭈구리~" 라고 노래하는 랩의 가사에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애정과 죄책감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현재 휴학중이라고 했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음악을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학업을 중단해야 할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도 자기 음악공부 한답시고 다 쓰고 집에는 별로 도움을 못 드렸던 모양이지요. 좀 더 잘난 아들이었다면 엄마를 호강시켜 드릴 수도 있을텐데, 장남이 이러고 있으니 어머니께 늘 죄송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겁니다. 엄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라고 합격 소감을 외치는 22살의 청년은 제가 보기엔 더없이 기특하고 듬직한 아들이었습니다.

물론 랩만 가지고 '위탄'의 상위권에 진입하기는 어렵겠지요. 만약 출중한 노래 실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이성현의 레이스는 여기가 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의 청년이라면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은인을 만나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지름길로 가게 될지, 멀리 돌아가게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의 앞날은 충분히 밝을 것을 저 또한 확신합니다.

이성현의 자작 랩은 오만하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자신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포장하지 않은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부족함을 인정하고 발전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랩이었습니다. 비록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나, 제가 들어 왔던 그 어떤 프로 래퍼의 것보다도 매력적이었어요. 그의 랩을 통해 저는 또 다른 신세계에 눈을 뜬 것처럼, 이제껏 알지 못했던 랩이라는 음악 장르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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