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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백동수'의 폭행 장면, 용납해선 안 되는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무사 백동수'의 폭행 장면, 용납해선 안 되는 이유

빛무리~ 2011. 9.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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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백동수'에서 흑사초롱의 살수 '인'(박철민)이 검선의 딸 황진주(윤소이)를 납치해서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 방송되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드라마를 안 본지가 오래 되었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폭행 장면에 대한 저 기사를 본 후로는 일찍부터 안 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만도 참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저런 장면까지 봐야 했다면 정말 끔찍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굳이 안 보는 드라마에 관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한 가지 신념을 주장하고 싶어서입니다. 여자를 납치해다가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무술을 익힌 남자가 저항할 힘도 없는 그녀의 뺨을 연거푸 때리고, 발로 수없이 퍽퍽 걷어차고, 심지어 몽둥이까지 가져다가 잔인하게 두들겨 패고, 그러다가 여자가 실신하니까 정신 차리게 해서 일으키고는 또 마구 때렸다는 내용은, 실제 그 장면을 안 보았는데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스크린도 아니고 브라운관에서 그 정도의 장면이 방송되었다는 것은, 당연히 비난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기사의 댓글들을 보니, 저와는 반대되는 의견이 상당히 많이 보이더군요. 요약하자면 그 장면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 못한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괜찮다는 의견이지요. 그 중에도 가장 섬뜩했던 것은 "납치범이 인질을 폭행하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 그런 당연한 장면도 방송을 못하게 하면 어쩌란 말이냐?" 뭐 이런 내용의 댓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현실이 아닌 드라마 속의 장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까요?

저는 아직도 작년 여름에 개봉관에서 보았던 '악마를 보았다'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데도 끝까지 참고 보았던 것이 후회될 지경입니다. 중간에 일어나서 나오고도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나름대로 강한 흡입력과 작품성을 지닌 영화였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도를 넘어선 잔인한 장면과 생생한 묘사들로 인해 받았던 충격은 저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물론 이 트라우마가 100% 그 영화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제 안에 숨죽이고 있던 공포스런 기억이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점차로 깨어나더니, 급기야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처럼 빛을 발하면서 저의 내면을 다시금 헤집어 놓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치유의 대책 없이 헤집어 놓는 기억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길 뿐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공포와 폭력의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여성이라면) 그 영화를 보면서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수시로 떠오르는 장면들 때문에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마를 보았다'가 연소자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하긴 그 정도 레벨의 영화라면 절대 TV에서 방송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아무리 '15세 이상 시청가'라고 표시를 해놓는다고 해서, 누가 그런 것을 철저하게 지키나요? 더구나 심야도 아니고 밤 10시 타임이라면 그야말로 황금시간대입니다. 공부하다 지친 청소년들과 좀 늦게 잠드는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과 한 자리에 모여서 과일을 깎아 먹으며 드라마를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 상황에서 '무사 백동수'에 나온 것과 같은 정도의 잔인한 폭행 장면이 정말 괜찮은 걸까요? 저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작품의 내용 전개를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 생생하고 세밀한 폭행 장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두 차례 때리는 시늉 정도 한 후에 피투성이 분장을 하고 나와서, 실감나는 표정과 대사 연기로 대신해도 충분했던 것입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잔인한 장면을 굳이 집어넣은 것은 자극적 설정을 통해 시선을 끌려는 의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는 전체적으로 끝없이 포진되어 있던 잔인한 장면들... 그 지나치게 생생한 묘사를 통해서 감독이 특별히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듯합니다. 말하자면 '악마를 보았다'에서 잔인한 장면들은 그 자체가 일부분의 주제를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아주 나쁜 영향을 받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모양이더군요. 그러므로 그 영화에 대한 찬반토론은 상당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사 백동수'라는 드라마에 있어서는 폭행 장면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2) 제가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서 경험했듯이, 영상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잔인한 장면이 주는 충격이란 생각보다 그 힘이 대단히 큰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충격과 상처를 받는 반면,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데, 너는 왜 유난스럽게 난리를 치냐?"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사람과 병약한 사람이 있듯이, 정신적 내면적으로도 강자와 약자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감수성 예민한 어린 나이에 도를 넘어선 잔인한 폭행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면, 이후 결코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3) 과도한 폭행 장면을 TV에서 허용하면 안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것입니다. 반복적으로 그런 장면을 시청하게 되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무디어지고 익숙해져' 버립니다. 처음에는 끔찍하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람들도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보다 보면 "별 거 아니네~" 라고 인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던 사람도 자꾸만 저런 것을 보게 되면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먹을 쓰고 몽둥이를 사용해서 타인을 때리는 것이 심지어는 평범한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인식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아직 튼튼한 가치관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들이고, 그 중에도 남자아이들입니다. 신체적으로 월등한 힘을 가진 남자가 여자를 잔인하게 구타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죠. 어른들은 소년들에게 그와 같은 인식을 굳건히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툭하면 TV에서 남자가 여자를 두들겨 패는 장면이 나온다고 가정해 볼까요? 그런 것을 보고 자라난 소년들이 과연 "절대로 여자를 때리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될까요? "까짓 거 좀 때리면 어때?" 이런 생각을 품게 될 가능성 높지 않을까요?

아무리 드라마 속의 장면이라 해도, 과도한 폭행이나 잔인함이나 선정성이 등장했을 때 비난받아야 마땅한 것은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은 드라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매체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어야 할 문제겠죠. 특히 다수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더욱 신중하게 고려하고 자제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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