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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형제들' 주원과 유이, 소외된 아이들의 사랑 본문

드라마를 보다

'오작교 형제들' 주원과 유이, 소외된 아이들의 사랑

빛무리~ 2011. 9. 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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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KBS 주말연속극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 보는 편인데, 최근 사소한 계기가 있어 '오작교 형제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초반에 흘러나온 스포일러를 들어 보니, 막장도 이런 저질 막장이 없겠다 싶어서 절대 안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시청한 느낌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고 보느냐에 따라서 이것은 가족드라마의 탈을 쓴 최악의 막장드라마일 수도 있고, 외로운 아이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겠더군요. 저는 후자 쪽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정의감에 넘치고 융통성 없는 열혈 형사 황태희(주원)와 철부지 된장 소공녀 백자은(유이)의 사랑 이야기로 말입니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로서 공중파 드라마의 첫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이의 연기는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각종 예능에서 유이를 볼 때마다 그리 재치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착하고 성실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비록 철은 없어도 속마음은 착하고 순수한 백자은의 캐릭터는 유이에게 맞춤옷처럼 잘 어울리는군요. 극중에서 자은이가 아무리 포악을 떨고 성질을 부려도 밉지 않은 것은, 캐릭터 자체가 가엾은 피해자여서이기도 하지만 유이의 순해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작교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황창식(백일섭) 일가는 겉보기엔 화목하고 멀쩡한 가족 같아 보이지만, 그 안쪽은 썩을대로 썩고 곪아 문드러진 막장 가족입니다. 우선 농장 주인이 엄연히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긴 채 10년 동안이나 자기가 주인인 척하고 살아온 황창식부터가 매우 가증스러운 인물이죠. 얼핏 보면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지만, 사실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구나 황창식은 언제나 사고만 저지르고 뒷수습은 마누라한테 맡기며 살아온, 지독한 민폐형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농장 주인은 황창식의 친구 백인호(이영하)라는 인물인데, 그는 배를 타고 나갔다가 먼 바다에서 실종되고 맙니다. 십중팔구는 죽었을 거라고 예측되는 상황이지요. 염치도 없는 황창식과 그 가족들은 쾌재를 부릅니다. 갈 곳조차 없던 어려운 시절에 무상으로 둥지를 제공해 주었던 고마운 친구이자 은인이 죽었다는데 실실 웃으며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백인호의 딸 백자은이 나타납니다. 자기 아버지가 농장을 맡길 때 황창식으로부터 받아 두었다는 각서를 들고 와서 농장을 되찾겠다고 하는 겁니다.

백인호가 남기고 간 나머지 재산은 아마도 새엄마(조미령)가 모두 가로챈 모양입니다. 당장 머물 곳도 없고 쓸 돈도 없다면서 농장을 팔아버리겠다는 백자은을, 황창식 일가는 살살 구슬러서 함께 살자고 합니다. 용돈과 학비까지 대어 줄 테니 외롭지 않게 같이 살면서 너희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자면서 말입니다. 그래 놓고 황창식의 아내 박복자(김자옥)은 오밤중에 몰래 자은의 가방에서 문제의 각서를 훔쳐냅니다. 각서를 잃어버린 백자은은 꼼짝없이 오작교 농장에서 빈손으로 쫓겨나고 말았지요. 부자 아버지 덕분에 사치스런 생활이 몸에 익어 있던 23살의 철부지 백자은은 삽시간에 불쌍한 소공녀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 집안 식구들은 배은망덕하게도 그녀의 아버지가 죽기를 바랬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백인호의 딸이 그 집의 셋째아들 황태희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원칙적으로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죠. 처음에는 그러한 설정마저도 막장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안에서 황태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은이와 마찬가지로 태희 역시 그 몰염치한 가족들의 희생양이었던 겁니다. 지금은 이 두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다른 듯 싶지만, 가만히 보면 곧이곧대로 융통성 없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꼭 빼닮아 있기도 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확실한 이 아이들이, 양심도 없는 황창식의 가족들과 얽혀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구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두 마리 백로처럼 애처로워 보입니다.

황태희는 사실상 이 집의 친아들이 아니라 조카입니다. 황창식의 동생이었던 그의 생부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생모는 재혼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어린 태희는 백부 황창식의 집에 얹혀 살며 그의 셋째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할머니(김용림)로부터 귀염을 받았고 백부 내외도 그를 표나게 자기 자식들과 차별하지는 않았으나, 아무리 그래봐야 객식구는 객식구였습니다. 평소엔 모르다가도 중요한 순간이면 그 마음의 차이가 드러나곤 했지요. 현재 황태희는 둘째 황태범(류수영)과 더불어 집안의 둘밖에 없는 수입원으로서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 부모의 피를 받아 아들들도 염치가 없나 봅니다. 막내 황태필(연우진)은 툭하면 황태희의 명함을 위조해서 들고 다니며 가짜 형사 행세를 합니다. 얼굴 반반한 이 녀석은 말하자면 신세대 제비족이라고나 할 것입니다. 돈 좀 있어 보이는 여자들을 유혹하는데, 형사의 명함은 꽤나 유용한 도구거든요. 하지만 때때로 들통이라도 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직 형사인 황태희에게 돌아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하지만 황태필 이 못된 녀석은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습니다.

아무리 야단치고 타일러도 콧방귀만 뀔 뿐, 태희를 형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엄마 속 좀 그만 썩여드려!" 하고 태희가 타이르면 "오버하지 마! 우리 엄마지 너네 엄마야?" 라고 그악스럽게 대꾸합니다. 친동생이 아닌지라 두들겨 패지도 못하고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태희의 몫입니다. 

방송국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황태범은 한술 더 뜹니다. 그는 걸핏하면 특종 건수를 잡기 위해서 동생 태희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몰래 숨어들어 수사 기록을 훔쳐내곤 합니다.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극비 문서라 할 수 있는 수사 기록이 유출되고,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뉴스 보도가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되는 겁니다. 언제나 그런 비열한 수단으로 특종을 거머쥐는 황태범은 방송국 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기 기자입니다. 하지만 기밀 유출의 책임을 번번이 덮어쓸 수밖에 없었던 황태희는, 결국 직위해제라는 중징계를 받고 구석방에서 대기하는 신세가 됩니다. 정의로운 열혈 형사인 그에게 이런 치욕은 없습니다.

황태희는 분노에 이를 갈며 방송국으로 달려가 황태범의 멱살을 잡지만, 그래도 차마 형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습니다. 자기 때문에 동생이 직위해제까지 당했다는데도 황태범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금방 풀릴 거야" 하면서 실실 웃을 뿐입니다. 이에 황태희는 눈물이 그렁해져서 묻습니다. "내가 만약 태필이였어도... 형이 나한테 이랬을까?" 한 치 건너 두 치라는 말이 역시 맞는 걸까요? 친동생이었다면 황태범이 아무리 염치없는 놈이라도 그렇게는 안했을지 모르지요.

동생이란 녀석은 그의 이름을 사칭하여 제비짓이나 하고, 형이라는 인간은 그를 이용해 부당한 방법으로 특종을 올립니다. 만약 친구가 그랬다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나 그랬다면 충분히 절교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황태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올가미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그냥 참고 견뎌야 하는 겁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조금씩 소외당하고 이용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황태희와 백자은, 몰염치한 황씨 일가의 피해자인 두 아이가 만났습니다.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는지라 초반에는 옥신각신 싸우면서 원수처럼 지내겠지만, 점차로 자신들이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가를 깨달아 가면서, 천천히 사랑을 시작하겠지요. 예상컨대 이 아이들의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사랑은, 타락한 황씨 가족에게 유일한 구원의 빛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앞으로 기나긴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태희와 자은, 이 두 명의 예쁜 젊은이에게 행운이 있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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